“쉬지 말고 연습해라”
“쉬지 말고 연습해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6.14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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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0일 저녁 7시, 울산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 무용인 김미자(이하 ‘김 씨’)가 〈이척 춤-脈(맥)을 잇다. ‘그리움’〉을 공연했다. 김 씨는 이척 선생의 제자로 울산무용협회 지회장을 역임한 울산의 무용계의 대들보이다. 김 씨는 스승의 대를 이어 현재 울산무용협회 고문직을 맡아 무용발전에 힘쓰고 있다.

이척 선생을 ‘스승’이라고 말하는 무용인은 더러 있다. 하지만 김 씨는 고인의 생전과 사후를 가리지 않고 스승을 위하고 향하는 마음이 한결같아서 움직임이 없는 주춧돌의 느낌을 준다. 이러한 모습을 십여 년간 꾸준히 곁에서 보아왔기에 동료 무용인으로서 진심으로 존경한다.

이척 선생이 영면(永眠)하신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열두 해째다. 추모 공연은 삼년상 탈상이 지난 2012년부터 시작됐다. 매년 반복되는 행사에 의미가 축소될 법도 하지만, 울산무용의 초석을 놓으신 스승의 개척자적 실천은 제자는 물론 울산무용인의 자긍심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해마다 열리는 김 씨의 공연은 관 속 스승의 키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이번 행사도 작년처럼 코로나19 영향으로 많은 사람이 동참하지 못한 점이다.

이척(李拓·1930~2009) 선생은 서울 만리동에서 이정순과 오복순의 4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64년 울산에 정착했고, 1967년 울산 최초의 무용학원 〈이척 무용학원〉을 열었다.

“춤은 인류역 사와 함께 시작된 가장 오래된 예술입니다. 위대한 몸짓이죠. 사실 급변하는 시대에 전통과 명분을 지켜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제자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땀을 흘려라. 쉬지 말고 연습해라’ ‘반성하라’ ‘겸손하라’ ‘낙서는 중요하다‘ ’자기 생각은 항상 노트에 써라’…. 생전에 항상 제자들에게 반복하신 말씀이다.

김 씨는 스승에 대한 그리움이 지극하다. 스승을 생각하는 김 씨의 속마음을 건드려봤다. 고개를 들어 멀리 허공에 시선을 둔다. 이윽고 “스승의 빈자리는 산속의 옹달샘 같아서 퍼내도 다시 고이는 그리움입니다”, “생전에는 몰랐습니다. 때가 되면 사라지는 스승이 아니라 항상 제자 곁에 남아 보살펴주실 스승으로만 여겼습니다.” 창문 너머에 시선을 두고는 “나이 들수록 스승의 존재가 아쉽습니다. 이번 행사의 제목도 그래서 ‘그리움’으로 정했습니다.” 더 물어본다면 실례가 될 것 같아 “그리움의 발돋움을 문학적으로 표현하면 교족(翹足) 혹은 교기(翹企)라고 합니다.”라고 슬쩍 말을 돌렸다. 마치 학이 한 다리로 서 있는 부동자세로 오랫동안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고도 일러 주었다.

이번 추모 공연에 이척 선생의 부산 무용인 친구 부운(浮雲) 김진홍(金眞弘·1935~) 선생이 참여했다. 구십을 바라보는 기력이 쇠한 연세인데도 마다하지 않고 수희동참(隨喜同參=좋은 일을 따라 같이 참여함) 하셨다고 했다. 선생은 고(故) 박병천(朴秉千·1933~2007) 선생의 시나위 구음을 깔고 지전 춤으로 망축(亡祝=죽은 사람을 위한 축원)을 했다. 부운 선생은 선친과 함께 운학(雲鶴) 이동안(李東安, 1906~1995) 선생으로부터 춤을 배운 인연이다.

『우리 전통 예인 백 사람』(이규원, 1995)의 이동안 편에서는 제자 계보에 대해 “김백봉(金白峰, 경희대 무용과 교수), 김백초(金白初, 재미 무용가), 최경애(崔京愛), 김덕명(金德明, 부산대 무용과 강사, 경남 제3호 무형문화재), 김진홍(金眞弘, 부산 무용가), 문일지(文一枝, 국립국악원 무용단 상임 안무자), 배정애(裵貞愛, 선화예고 교사), 정승희(상명여대 무용과 교수), 오은희(吳銀姬, 서울예전 무용과 교수), 박정임 씨 등 무용계의 거목들이 대부분 제자다.”라고 하여 선친과 함께 이름을 나란히 하고 있다. 선친께서는 선생을 각별히 대해주셨고, 필자에게도 말씀하신 기억이 새롭다. 뵐 때마다 예를 다해 인사드린다. 건강하시길 기원한다.

김성수 철새홍보관 관장·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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