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다리 갔다리’
‘왔다리 갔다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6.13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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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우연히 TV 재방송 프로그램에 눈길이 멈추는 순간 귀부터 의심해야 했다. ‘놀라운 토요일: 도플갱어 퀴즈-배우 편’에서 어느 남성 출연자가 무심코 뱉어낸 용어 때문이었다. 문제가 된 말은 ‘왔다리 갔다리’란 표현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포털사이트를 뒤져보았다. (‘포털사이트’를 대신할 마음에 드는 우리말은 아직 찾지 못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즐겨 찾는 ‘다음’(daum)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의 설명만 잔뜩 늘어놓았다. 비슷한 주제로 몇 해 전에 쓴 글도 있었던 터라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졌다. ‘그게 아닌데…’

혹시나 하고 이번에는 드물게 찾는 ‘네이버’(naver)를 뒤져보았다. 이제야 겨우 안면근육이 풀리기 시작했다. 찾던 대목을 드디어 만날 수 있었던 것. 금세 빨려 들어갔다. 서울시교육청 누리집의 친절한 안내 글 속으로…. “우리말인 줄 알았던 단어가 사실은 외래어라고요? 미처 알지 못했던 ‘일상 속 외래어’, 함께 알아보아요.”

내친김에 ‘외국어’와 ‘외래어’의 차이부터 짚고 넘어가자. ‘외국어’란 외국에서 들어온 말로 아직 국어로 뿌리내리지 못한 ‘밀크’, ‘무비’와 같은 낱말이라고 보면 되겠다. 또 ‘외래어’란 외국에서 들어와 한국어에 동화되어 우리말처럼 사용되는 ‘라디오’, ‘컴퓨터’와 같은 낱말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그렇다면 ‘왔다리 갔다리’는?

‘일본어에 어원을 둔 외래어.’ 바로 이 설명이 나를 매료시켰다. ‘왔다리 갔다리’란? “우리말 ‘왔다 갔다’를 뜻하는 일본어 ‘잇타리 킷타리(いったり きたり)’에서 차용된 외래어로,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한다는 말을 재미있게 표현해서 ‘왔다리 갔다리’라는 말을 사용하는데요. 이는 일본어로 왔다 갔다는 뜻의 ‘잇타리 킷타리’에 우리말인 ‘왔다 갔다’를 합쳐 만들어진 외래어입니다. 우리말로는 ‘왔다 갔다’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서울시교육청 누리집은 이밖에도 ‘땡땡이 무늬’와 ‘유도리’란 단어에 대한 설명도 이어갔다. ‘땡땡이 무늬’란 일본어로 ‘점으로 된 얼룩’을 뜻하는 ‘텐텐(てんてん)’에서 차용된 외래어이고, ‘유도리’는 일본어로 ‘여유’를 뜻하는 ‘유토리(ゆとり)’에서 차용된 외래어라는 것. 그러면서 땡땡이 무늬는 ‘물방울무늬’로, 유도리는 ‘융통성’으로 바꾸어 쓸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사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말 속에는 외국어, 외래어가 수두룩하다. 듣기 아름답고 하기 쉬운 우리말로 바꾸어 쓰려는 노력이 모자라기 때문일 것이다. 서글프지만 이런 현상은 연예인이나 식자층일수록 더 뚜렷한 경향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앞서 예로 든 ‘놀라운 토요일’만 해도 ‘크로켓 ROUND’란 자막 글을 끝날 때까지 띄워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차제에 ‘한글 도시 울산’을 부르짖는 중구청이 보도자료에 올리는 단어나 용어에 대해 한마디 안 할 수가 없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슷비슷한 느낌이 들지만, 특히 중구청은 꾸준히 다듬어 쓰고 가려 쓰기를 되풀이할 것을 감히 권한다.

중구청 보도자료에 자주 나타나 눈에 거슬리는 용어 가운데는 ‘노후된’(=老朽+된)이란 표현이 있다. 이 말은 국어사전, 인터넷 사전 어디에도 없다. 차라리 순우리말로 ‘낡은’이라고 적든지, ‘노후’란 말을 굳이 쓰고 싶다면 ‘노후화(老朽化)한’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춤법에도 맞을 것이지만 잘 고쳐지지 않아 안타깝다. 이 잘못을 바로잡으려면 자치단체의 장부터 ‘왔다 갔다’ 하는 일 없이 중심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한글 도시 중구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일 것이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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