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학심(老鶴心), 늙은 학의 마음
노학심(老鶴心), 늙은 학의 마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6.07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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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체는 늙음을 맞이한다. 늙음에는 미학(美學)과 추학(醜學)이 함께한다. 늙음의 삶에는 두 개의 시간이 존재한다. 하나는 ‘크로노스(Chronos)’ 즉 절대적 시간이다.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Kairos) 즉 상대적 시간이다. 크로노스(Chronos)는 생노병사(生老病死) 중의 늙음이지만, 카이로스(Kairos)는 가치이며 아름다운 늙음이다. 다시 말하면, 늙음은 절대적 시간이 만든 미학으로 신체적 늙음을 말하기도 한다. 반면 지적으로 늙었다는 말은 상대적으로 노숙(老熟)함을 말한다. 세월의 시간을 크로노스로 보낸 자는 아직도 노추(老醜), 노욕(老慾), 노욕(老欲)의 존재이지만, 카이로스로 보낸 자는 존경과 공경의 대상이다.

서예인들이 즐겨 쓰는 글귀에 <노학만리심(老鶴萬里心)>이라는 글귀가 있다. 두 가지 관점으로 해석된다. 하나는 늙은 학이 명정심(明淨心)의 경험으로 만 리 바깥을 두루 보살핀다는 긍정적인 해석이다. 다른 하나는 비록 나이 든 늙은 학이지만 아직도 만 리 밖을 날아갈 수 있는 씩씩한 기상과 진취적인 정신으로 해석된다.

학은 매년 10월 중순쯤이면 북쪽 번식지를 떠나 약 2천500㎞를 날아 남쪽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를 찾는다. 그곳은 자연이 훼손되지 않아 학이 반드시 찾는 곳이다. 모래톱과 여울이 적당히 어우러진 환경은 학의 먹이터이자 휴식 장소이다. 모래톱이 낮의 쉼터라면 여울은 밤의 잠자리이다. 물이 흐르는 여울의 물은 얼지 않기 때문이다. 다슬기와 작은 물고기를 간식으로 먹는 학은 무논만 고집하지도 않는다. 논에서 떨어진 낱알을 찾고, 밭에서 곤충을 찾으며, 두엄을 헤쳐 먹이를 찾기도 한다. 여울에서 목욕하고 모래톱에서 몸단장한다. 갈대숲으로 몸을 숨기는 학은 자존심도 강해 드러나기를 싫어한다.

학은 안정성을 확보해야 잠자리를 선택하는 아주 예민한 새다. 여울은 학에게는 꼭 필요한 안식처이자 자신을 다른 동물로부터 지켜주는 방어막이다. 얼지 않은 여울을 찾아 주로 잠자리로 이용한다. 몸에 온도가 내려가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서이다.

‘노학만리심’의 긍정적 접근은, 늙은 말의 지혜 즉 노마식도(老馬識途=‘늙은 말이 길을 안다’)라는 의미의 노학(老鶴)이다. 부정적 접근은, 임금의 측근에서 해독을 끼치는 간신으로 비유되는 노서(老鼠=늙은 쥐)이다. 노학은 노거수(老巨樹)나 노과(老瓜)처럼 드러나지 않기에 필요한 사람들이 풀숲을 헤쳐서라도 찾지만, 노서는 산초(山貂), 족제비, 담비같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기에 모두가 피한다. 줄광대 재담에 살판과 죽을 판을 잽이와 이야기한다. 몸의 균형을 잡아 줄을 잘 타면 살판이지만 균형을 못 잡아 줄에서 떨어지면 죽을 판이라는 말이다. 노학의 긍정적 접근과 부정적 접근에서 얻게 되는 결론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야운(野雲) 스님이 지은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자주 나는 새는 그물에 걸리기 쉽고, 짐승의 가벼운 걸음걸이는 화살 맞을 위험이 있다. (數飛之鳥忽有羅網之殃 輕步之獸非無傷箭之禍)”

수행자의 행동을 경계하는 적절한 비유로 생각된다. 어디 수행자에게만 한정되겠는가? 인생살이에서 모두가 곱씹어 실천할 유익한 말이다.

‘해활빙어약(海闊憑魚躍) 천고임조비(天高任鳥飛)’라는 비유의 말도 있다. 넓은 바다 위를 튀어 오르는 물고기와 높은 하늘을 맘껏 날아다니는 새라는 의미이다. 나섬과 멈춤을 아는 자만이 자제할 수 있다. 나섬의 일상은 자주 나는 새와 가벼운 짐승의 발걸음 즉 무분별한 행동으로 고난의 연속이다. 반면 멈춤의 일상은 해활(海闊)과 천고(天高)의 때가 되면 맘껏 튀어 오르고 날 수 있음을 알며 준비하는 사람이다.

유월이다. 서둘러 곳곳에서 거미 노학만리심을 내세워 해활과 천고에 삭비지조(數飛之鳥)와 경보지수(輕步之獸)의 군(群)으로 날고 걸을 채비를 하는 것 같다.

김성수 철새홍보관 관장·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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