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반구대암각화’
‘2003년 반구대암각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6.0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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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를 정리하다 우연히 마주친 게 있었다. 85쪽 분량의 <반구대암각화 관련 글·자료 모음집>과 <울산 반구대암각화는 보존돼야 한다>는 제목의 성명서였다. 전자는 2003년 7월, 후자는 2003년 8월 27일 기록이 선명했다.

2003년이라면 18년 전 얘기다. 6장짜리 성명서에 시선이 머물렀다. 한국암각화학회 임세권 회장(안동대 사학과), 역사학회 이태진 회장(서울대 국사학과), 한국미술사학회 변영섭 회장(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3인이 대표 서명자로 이름을 올렸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뒷장이었다. 이들 3인을 합쳐 서명한 단체·개인이 179인에 이른 것. 그중에는 유홍준(명지대 대학원 문화예술대학 학장), 염무웅(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김열규(계명대 석좌교수) 제씨의 이름도 눈에 띄었다.

“오늘날은 문화를 통해 한 민족의 정체성을 판단하고 그 국가의 힘과 미래를 가늠한다”로 시작되는 성명서는 다음 3가지를 ‘울산광역시장에게 강력히 요구’했다. 첫째, 울산시가 추진하는 반구대암각화 주변 도로 확장과 대규모 주차장 조성공사 및 테마파크·위락시설 건립을 결사반대한다. 울산시는 관광개발 위주의 계획(안)을 백지화하고, 암각화와 주변 경관이 훼손되지 않는 새로운 문화공원 조성사업(안)을 마련하라.

둘째,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암각화는 동일한 선사시대 문화유산으로, 울산 태화강 상류 대곡천을 끼고 불과 1.5km의 거리에 근접해 있다. 두 암각화가 위치한 계곡과 하천·산세 등 자연환경과 함께 사적으로 지정되고 환경보존특구로 보호받아야 함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문화관광부 장관은 이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 셋째, 반구대암각화를 비롯한 울산지역의 선사 유적은 지방자치단체에[서 개발을 결정할 수 있는 문화재가 아니다. 민족적이며 세계적인 이러한 유적의 개발에는 관련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한 가운데 개방적이고 공정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문화관광부 장관과 문화재청장은 반구대 선사유적공원 개발의 권한을 울산시에 일임하지 말고, 암각화 관련 학회와 지역 문화·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가칭 ‘울산 선사공원 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라.

사족 삼아 말하자면, 솔직히 그 무렵의 울산시장이 누구인지는 별로 관심이 없다. 다만 179인의 목소리가 반구대 허공에 허무하게 메아리친 사실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그리고, 매사가 대개 그렇지만, ‘결사반대(決死反對)’를 다짐한 분치고 누구도 그 말에 책임진 이가 없다는 사실이 그저 서글플 뿐이다.

편집·발행 주체가 불분명한 <글·자료 모음집>은 △암각화 소개자료 △반구대암각화 개발 관련 자료 △관련 글 모음(기사와 성명서, 강연자료와 칼럼)의 세 갈래로 나뉜다. ‘울산 문화유산 해설’ 집필자로는 전호태 울산대 교수가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 서석’이란 주제로 참여했다. 기자로는 <울산 반구대 ‘개발’보다 ‘보존’ 말할 때>란 제목의 르포 기사를 문화일보에 실은(2003.5.12.) 도올 김용옥이, 언론인으로는 <아! 반구대>라는 칼럼을 신문에 올린(2001.7.31) 김규태 국제신문 논설고문이 인상에 남는다.

짐작컨대, 글·자료 모음집의 편집·발행 주체는 ‘반구대 사랑 시민연대’(대표 이재호)란 단체가 아니었을까. 이 단체는 제5차 성명서에서 이렇게 외쳤다. “… 그래도 울산시에서는 ∼라고 속이고 있다. 반구대 주변에 난개발이 없어야 한다.… 우리 모두 자연과 문화, 인간이 살아 숨 쉬는 감동의 반구대를 만들어 가자.”(2003.6.26)

이 절규는 지금도 유효하다.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채찍질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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