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록의 향연
연초록의 향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05.04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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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신록이 한창이다. 꽃보다 더 아름다운 잎새들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초록이 짙어 여름이 될 것이다. 꽃이 필 때 그 꽃을 꼭 보아야 하는 것처럼 이 연초록도 놓칠 수 없는 절정의 시간들이다. 신록의 계절이 해마다 있었음에도 어느 해엔 그걸 못 느끼고 지나는 때도 많았다. 참으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계절이 어김없이 시간보다 빨리 흐르고 있으니…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분별을 하며 살아간다. 나의 젊은 시절은 好(호) 不好(불호)가 분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가변적이었다. 좋으면 참 좋았고, 싫은 것은 참 싫었다. 그런데 그것들이 나의 미숙함이나 오해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마음을 늘 열어 놓으려했고 실제로도 열려있었다. 그러니 첫인상이 별로 좋지 않았던 사람도 몇 번 부딪치면서 좋아지는 경우가 많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좋고, 싫음은 불분명해졌다. 좋게 말하면 세상에 이해 못할 사람과 상황이 없어져가는 성숙이라 볼 수 있는데 어쩔 땐 줏대 없는 나에게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런데도 희미하게나마 싫고 좋음의 경계가 있으면 그 경계는 쉬이 무너지지 않은 견고한 城이 되는 경우가 많다. 마음이 자꾸 닫힌다는 것이리라. 그래서 나이 들어 벗을 만드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 인가보다.

그래서 오랫동안 세월을 함께 보낸 벗이 참으로 귀하고, 그 벗을 함께 누려야 함은 내가 이 시기에 신록을 놓치지 않고 보려함이나 다를 바 없다. 4월말 올해 들어서 벌써 세 번째 여행을 했다. 여행에선 장소도 중요하고 시기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사람이다 우린 다섯 명이니 승용차 한 대면 되고, 모두 여성이니 큰 방 하나면 된다. 둘이면 집중도가 너무 높아 피곤한 부분도 있고 넷이면 자연스럽게 둘씩 짝을 지으니 공통화재에서 벗어 나기도 한다.

그러니 셋이나 다섯이 좋은 것 같다. 다섯을 넘으면 집중도가 떨어진다. 같은 대학, 같은 과 친구니 시간도 비슷하게 낼 수가 있다.

이번 여행엔 내가 운전을 했다. 짐을 싣기 좋았으니 시집을 준비해 갔다.

어느 신문사에서 연재한 한국인 애송시 100편을 상, 하 권으로 모아둔 책인데, 확실한 안줏감이었다. 시 한편에 술도 한 순배씩 돌았고 적당한 취기와 얼굴이 불그스름하게 피어 올랐고, 책들도 한권씩 손에 들고 있으니 그 모습이 한 편의 그림으로 썩 괜찮았다. 우리들은 직접 시를 쓰는 재주도 없고 악기를 다루는 재주가 없으니 조선후기의 연암선생을 중심으로 모였던 백탑청연의 흉내를 낼 수는 없었지만 그것으로도 행복했다.

“어이,, ○○야! 이 시 읽을 때 니 생각 나더라. 니가 한번 읽어봐라“

“○○야! 이 시는 니가 읽어야 맛이 날 것 같다. 니가 이 시 좋다고 했쟎아”

그러면 그 녀석들은 목소리를 다듬어 자기 목소리가 그 시에 가장 맞는 냥, 띄엄띄엄 낭랑하게 읽어 가는데, 나 혼자 눈으로 읽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었다.

소리 내어 시를 읽는 것은 몸으로 시를 읽는 것이었다. 우린 스스로에게 감동하였다.

우리 모습이 바로 시였다. 이것이 나와 내 벗의 또 다른 역사가 될 것이고, 훗날 또 다른 우리들의 이야기꺼리가 될 것이다. 한 친구가 메일을 보내왔다. 어제는 천상병의 ‘귀천’을 오늘은 김춘수의 ‘꽃’을 출근길 지하철에서 외우며 가고 있다고. 예전에도 아는 시였지만 새롭게 다가온다고. 그래서 출근길이 시가 있는 문화적인 시간이 되었다고.

옆에 남편은 나의 외유를 지원하면서 나를 놀린다.

“가리 늦게 불붙은 우정이 불잉걸-불이 이글이글하게 핀 숯덩이-인걸”

난 요즘 인간을 두 종류로 나누어 분별 한다. 시를 읽는 인간과 시를 읽지 않는 인간으로. 시를 읽는다는 것은 아름다움을 탐색하고 그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므로 훨씬 풍성하고 깊이있게 살 아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이렇게 나누고 싶다. 나이 들어가면서 벗을 귀하게 옆에 두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시간은 연초록의 계절만큼이나 빨리 지나가버린다. 오늘 벗에게 시집 한 권이어도 좋고 편지에 시를 한편 보내면 더욱 좋은 시간일 듯.

/ 장금란 신정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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