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ase fire! cease fire!!-영화 ‘칠드런 오브 맨’
cease fire! cease fire!!-영화 ‘칠드런 오브 맨’
  • 이상길
  • 승인 2021.05.27 19: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칠드런 오브 맨’ 한 장면.
영화 ‘칠드런 오브 맨’ 한 장면.

 

내가 영화라는 매체를 좋아하는 건 그것이 주는 재미와 감동 때문이지만 영화가 지닌 예언가적 재능에 깊이 매료되는 경우도 적잖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위대해지기까지 하는데 인간의 상상력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는 가끔 인류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기도 한다. 일례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8년작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화상전화’의 경우 개봉 후 꽤 오랫동안 “어떻게 저런 게 있을 수 있냐”는 세간의 핀잔을 받아야만 했었다. 하지만 지금 화상전화는 일상화가 돼버렸다.

영화의 예언가적 재능은 미래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에서 특히 빛이 난다. 그러니까 영화는 기계문명의 발달로 갈수록 매몰되어가는 인간성 문제나 인류의 종말에 대해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경고성 메시지를 던져왔는데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칠드런 오브 맨>도 그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영화는 종말의 이유가 조금 독특하다. 개인적으로 재난영화의 최고봉으로 꼽는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투모로우>같은 작품이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가 종말의 원인이라면 <칠드런 오브 맨>은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이유없이 지구상의 모든 여자들이 아기를 갖지 못하게 되면서 종말로 치닫게 되는 이야기다.

그런 어느 날 주인공 테오(클라이브 오웬)는 기적적으로 임신을 하게 된 흑인 여자 키(클레어 홈 애쉬티)를 알게 되고, 이후 영화는 인류의 마지막 희망인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테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사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칠드런 오브 맨>을 통해 인류의 어리석음을 꼬집고 있는데 그건 영화의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두드러진다. 세상이 그 지경인데도 인간들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여전히 싸움을 벌이고 있었고, 군병력과 무장단체 간 시가전이 벌어진 그 곳엔 테오와 키, 그리고 막 태어난 새 생명이 있었다. 그렇게 서로를 죽여가며 미친듯이 싸워댔던 그들 앞에 잠시 뒤 막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지게 되는데 십수년 만에 처음으로 보게 된 새 생명의 모습과 그 울음소리에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하나둘씩 전투를 멈추기 시작한다. 적은 사라지고 오로지 ‘인류’라는 공통된 단어만이 선명해지는 그 순간, 병사 중 하나가 모두를 향해 이렇게 외친다. “cease fire! cease fire!!(사격중지! 사격중지!!)”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대사의 울림이 유독 큰 건 인간이라는 종족 자체가 ‘멈춤의 미덕’을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구상의 다른 동식물들이 모두 대를 이어서도 태곳적 생활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인간만은 다르다. 오로지 전진(발전)과 속도에 집착해왔다. 그렇다면 그 대가는 무얼까? 날로 늘어나는 편리함 속에서도 학자들은 이런 식이라면 지구 평균온도 상승으로 100년 후엔 대멸종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19세기 후반 본격적인 산업혁명 전까지 지구 평균온도가 1도 오르는데 1만년이 걸렸지만 산업혁명 이후에는 불과 100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4도가 오르면 대멸종하게 되는데 그 재앙의 시작이 바로 1.5도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제 0.5도만 더 오르면 작년 여름 역대 최장의 장마를 겪었듯 본격화되는데 그걸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은 고작 10년. 다시 말해 10년 안에 멈추지 않으면 우린 모두 대멸종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고 한다. 대멸종이라니? 그게 말이 되냐고? 나도 믿고 싶지 않지만 학자들에 따르면 45억년 된 지구에서 이미 5차례나 대멸종이 있었고 가장 최근이 바로 6500만년전 소행성에 의한 공룡의 멸종이라고 한다. 정말이지 이젠 내 새끼만 잘 키운다고 될 일이 아니다. 또 세계 각국이 괜히 서둘러 탄소중립선언에 동참하고 친환경적인 수소차나 LNG선박으로 교체를 하려 드는 게 아니다.

때문에 ‘바바라 막스 허버드’ 같은 미래학자는 멈춤을 실천해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어서 빨리 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슬기슬기 인간)에서 호모 유니버살리스(우주적 인간)로 진화를 해야 한다고 했다. 호모 유니버살리스? 쉽게 말해 자신을 위해선 지나치게 똑똑해 지상에서 산과 바다, 빌딩과 자동차만 바라보는 인간이 아니라 전체를 위해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볼 줄도 아는 인간을 말한다. 바바라도 말했다. ‘우주적 인간’이란 모든 생명체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서로 협력하며 전체에 봉사할 준비가 되어 있는 새로운 인류라고.

그랬거나 말거나 이 영화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예언도 하나 등장한다. 2006년에 제작된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2027년인데 주인공 테오의 조력자인 제스퍼(마이클 케인)는 2008년 발생한 판데믹(pandemic) 때 자신의 아기를 저 세상으로 보냈다고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대략 54분쯤 ‘판데믹’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자막이 이렇게 뜬다. “2008년 독감이 전 세계를 휩쓸면서 딜런은 죽고 말았소.”

2016년 9월22일 개봉. 러닝타임 109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