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에 드러누운 암각화
병상에 드러누운 암각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5.16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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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암각화가 지병을 앓은 지 오래다. 어찌 보면 학계에 보고된 50년 전부터 도지기 시작한 병이다. 그동안 약을 몇 첩이나 달여서 올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백약이 무효인지 차도는 없고 신음만 깊어갈 뿐이다.

최근에 다시 머리를 싸매고 병상에 드러누웠다. 1개월짜리 진찰을 위해서다. 흥미로운 건 ‘4·19’에 시작한 진찰이 ‘5·18’에 끝난다는 사실. 의료진은 충남 부여군에서 파견 나온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문화재관리팀.

그 때문에 암각화 바로 코앞에 ‘반구대암각화 조사용 비계’가 설치됐다. 울산시가 추진하는 ‘반구대암각화 보존환경 모니터링 스마트 관리체계 개발 사업’의 한 가닥이다. 현장을 며칠 전 다녀온 지인 A씨가 말했다. “와, 메주 곰팡이 안 있는교. 암각화 표면에 그런 기(것이) 더덕더덕 붙어있어서 사진도 찍어 놨는데, 사진 가지고는 잘 안 빌(보일) 겁니더.”

실제로 그랬다. 자세히 뚫어지게 봐도 보일 듯 말 듯 했다. 어떤 현상? 울산대 부설 ‘반구대암각화연구소‘에서 다년간 일한 B박사에게 전화로 물었다. 즉답이 돌아왔다. “시간이 지나면 암각화가 어떻게 변하는지 수치를 측정하려는 것으로 보이는데, 꼭 필요한 일입니다. 암각화 표면에 붙어있는 것은 이끼나 곰팡이 같은 지의류(地衣類)일 겁니다. 암각화 보존을 위해서는 반드시 걷어내야 하는 것들이죠.”

이번에는 B박사에게 A씨와 전통문화대 학술조사팀이 나눈 대화를 들려주었다. 암각화 표면을 말끔히 씻어내는 문제였다. A씨가 씻어낼 물로 ‘반구천 냇물’ 얘기를 했더니 조사팀은 ‘증류수’ 얘기를 하더라는 것.

B박사가 ‘노르웨이 사례’를 들며 ‘바위 표면 세척’에 대한 그 나름의 소견을 말했다. “학계에서는 해야 한다, 하면 안 된다, 두 가지 주장이 다 있습니다. 제 생각으론 새로운 대처방법이 나오기 전까지는 물이 아니라 알코올로 주기적으로 씻어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돌에 구멍이 생기면 지의류가 기생하기 때문에 알코올로 제거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2000년에 반구대암각화 실측조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는 B박사가 비장한 어조로 한마디 더 보탰다. “반구대암각화 정면 중심부의 주된 암각화 부분은 그런대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지만, 문제는 사진에도 잘 안 찍히는 왼쪽 모서리 부분입니다. 21점의 그림(고래, 불고기, 사람 등)이 새겨져 있는데 모서리 바위 전면을 곰팡이가 뒤덮고 있고, (빨리 걷어내지 않으면) 어쩌면 가장 먼저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참 중요한 그림인데….”

그의 도움말은 계속 이어졌다. “4월 중순부터 5월까지는 송홧가루와 갯버들 꽃가루 많이 날아들어서 먼지떨이 식 제거작업을 해주어야 합니다. 꽃가루들이 지의류 생장의 밑거름 구실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암각화 표면의 지의류 쪽으로 되돌아갔다. “물이끼가 말라 비틀어지면 이끼벌레가 생긴다며 이걸로 사기 치는 이들 제법 있어서 안타까웠습니다. 바위그림이 안 보일 수밖에 없는 걸 가지고 손을 대면 안 된다고 겁을 주다가 꺼내 든 것이 ‘토목 개념’ 도입 아니었습니까? 물길을 돌리면 된다, 생태 제방을 만들면 된다고 야단법석했는데…, 허허. 바위는 지의류만 제거만 해주어도 건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문가 행세하던 몇 사람의 장삿속이 지병을 악화시켰다는 것.

2018년에도 사흘씩 서너 번 실측조사에 나선 경험담도 말했다. 그때(2000년)나 그다음(2018년)이나 훼손 정도에 별 차이가 없더라는 것. “앞으론 2∼3년마다 한 번은 세척해 주는 게 좋을 겁니다. 암각화 밑부분의 풀이나 흙도 제거해주고…. 그리고 앞으로 탁본(拓本) 같은 건 절대 허용해선 안 됩니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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