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부처님은
나에게 부처님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5.16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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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에 관한 글을 청탁받았을 때 나는 조금 주저했다.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뜻을 글로 나타내 볼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다. 내 부모님이 내 부모인 것이 당연하듯 부처님도 내겐 당연한 부처님이시기 때문이다.

나에게 부처님은 언제나 내 곁에 계시는 분이고, 나를 예뻐해 주는 삼촌에게 마구 매달리는 철부지 조카 같은 심정으로 내 안에 모신 분이다. 그분께 나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떼를 쓰기도 하고, 때론 삐지고 서운해하기도 하고, 때론 깊은 말씀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대상이다.

부처님과의 만남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한복을 단정히 입고, 허리에 끈 하나 질끈 묶고, 목에 하얀 손수건 두르고, 쌀 주머니를 이고 집을 나서는 길에서부터 이루어졌다. 어머니는 늘 그 차림으로 십 리 밖에 떨어진 절에 다녀왔다. 그런 날은 손수건에서 사탕이나 엿 같은 것이 꼭 하나씩 나왔다. 나는 그렇게 부처님과 달콤하게 친해졌다. 특히 초파일 날 절에 다녀온 어머니가 보따리에서 꺼내주던 백설기 한 조각도 그렇다. 떡에 붙은 한지를 조심스레 떼어내고, 부처님 앞에 놓였던 떡이라고 식구들 입에 한 조각씩 넣어주던 그 떡이 부처님의 가피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자랐다.

내게는 외롭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힘을 주는 친구가 있다. 그것은 변치 않는 책이다. 그중에서 유난히 만해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에 실린 시들에 끌렸다. 젊은 시절에는 ‘님의 침묵’ 속에 든 ‘님’을 남녀의 사랑에 관한 시로 해석했던 때도 있었다. 시의 뜻을 깊이 이해하거나 불교적 사유를 이해한 것도 아니면서 소리 내어 읽다 보면, 그 속으로 빠져드는 편안함이 있었다. ‘님만 님이 아니라, 그리운 것은 다 님이다’ 이런 절창을 외면서 청춘을 보냈다.

시인의 길을 걸으면서 나의 정신세계가 불교 쪽으로 경도되는 것은 어쩌지 못한다. 다양성을 추구해야 할 시인으로서 한 쪽으로만 치우치는 사유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을 숱하게 받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인연 따라 온 것이려니 생각하고 포기한 부분이 많다. 이제는 물 흐르듯이 시가 나를 친구로 받아주어서 손잡고 편하게 갈 뿐이다.

그래 그런가, 비유와 상징으로 이루어진 부처님 말씀을 문학을 통해서 만나면 그리 편하고 좋을 수가 없다. 요즘에는 만해 스님의 시 ‘알 수 없어요’를 통해 우주 만물의 근원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을 들여다본다.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됩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곰곰 생각해본다.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뜻은 무엇일까? 부처님께서는 우리 중생이 사는 이 세상을 고통의 바다로 보셨고,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이른바 ‘중생제도’를 위해 오셨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도엄 보윤 스님께서 주신 유인물에서 관세음보살님이 부처님께 올린 말씀을 통해 고통을 본다. 관세음보살께서 “혜광 삼매에 들어보니 이 세상은 오직 인연법뿐이었나이다. 인연은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인연으로부터 생기는 고통에서 멀어졌나이다.” 세상은 끝없는 인연으로 이어져 있으니 그 인연을 관조해보면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말씀이다. 실체가 없는 고통을 안고 힘들어할 필요가 없으니 고통을 여의는 것, 이것이 부처님께서 중생을 고통의 바다에서 제도하시는 뜻이란다. 그러나 나 같은 사부대중이 별 노력 없이 어찌 감히 혜광 삼매의 경지를 입에 담을 수 있으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십악을 삼가고 십선을 행할 것을 나 자신과 약속하고, 8정도의 뜻을 새기며 노력해 보는 정도일 것이다.

빈자의 한 등같이 어렵사리 내 마음의 불을 밝힌다면 어둠은, 고통은 절로 물러난다는 그 말씀을 믿는다. 이것이 늘 내게 평안함을 주시는 부처님의 뜻을 받드는 첩경이라 생각한다.

지금 세계가 처한 코로나 19를 위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하루빨리 이 고통을 벗어나 활짝 웃게 하기 위해 함께 동참하는 마음의 등불을 밝혀야겠다.

심수향 시인

△ 심수향 : 시인. 울산 출생/ 2003년 <시사사> 신인상/ 2005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중심』 『살짝 스쳐가는 잠깐』/ 한국시협, 숙명문인회, 펜문학, 울산불교문인협회 회원/ ‘봄시‘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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