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완벽한 타인’ - 인간, 완벽하게 불완전한
영화 ‘완벽한 타인’ - 인간, 완벽하게 불완전한
  • 이상길
  • 승인 2021.05.13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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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완벽한 타인’ 한 장면.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뒤 네 명의 친구들이 집들이를 겸해 부부동반 모임을 갖는다. 석호(조진웅)와 예진(김지수) 부부의 집들이였고, 누가 봐도 잉꼬부부인 준모(이서진)와 세경(송하윤), 또 누가 봐도 권태기를 겪고 있는 태수(유해진)와 수현(염정아) 부부가 참석했다. 다만 영배(윤경호)는 아직 미혼으로 혼자다. 그래도 영배에겐 민서라는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몸이 안 좋아 함께 못 왔다. 참 석호는 의사였고, 태수는 변호사, 준모는 제법 큰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사업가였다. 반면 영배는 지금 백수다.

그런데 오붓하게 식사를 하던 중 갑자기 석호의 처인 예진이 뜬금없이 게임을 하자고 제안한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다들 핸드폰을 식탁에 올려놓은 뒤 핸드폰으로 오는 모든 내용을 서로 공유하자는 것. 다들 “난 비밀이 없다”며 자신 있어 하자 오기가 발동한 거였다. 예진의 제안에 처음에는 모두 정색하며 안 하려 하지만 “뭐 찔리는 거 있냐”는 질문에 결국 아닌척하면서 다들 핸드폰을 식탁에 올려놓는다. 자. 이제부터 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2003년에 개봉한 영화 중에 ‘라스트 폰트리에’ 감독의 <도그빌>이라는 작품이 있다. 록키 산맥에 자리한 도그빌이라는 마을에 어느 날 그레이스(니콜 키드만)라는 미모의 여자가 숨어들어오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쫓기듯 마을에 온 그레이스를 경계하지만 점점 마음을 열어가며 따뜻하게 대해줬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경찰이 마을에 들이닥치면서 모든 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경찰에 의해 마을 곳곳에 그레이스의 현상 포스터가 나붙게 되는데 처음에는 소박하고 착해보였던 마을 사람들은 그레이스를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변해갔고, 숨겨준다는 대가로 그녀에게 견딜 수 없는 노동과 성적 학대를 가하기 시작한다. 그건 그레이스를 보고 첫눈에 반해 그녀에게 유독 친절했던 톰(폴 베타니)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는 대상으로 그녀를 취급했던 것. 하지만 그런 그레이스에게는 사실 엄청난 비밀이 있었고 ‘개들이 사는 마을’이라는 뜻의 도그빌(DogVille) 주민들은 그 비밀로 인해 아주 작살이 나게 된다.

헌데 이 <도그빌>이라는 영화는 형식이 매우 독특하다. 분명 영화는 맞는데 영화 속 배경은 연극무대란 것. 다시 말해 연극을 영화로 찍은 셈이다. 근데 무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연극과는 조금 다른데 연극에서는 각 장면에 맞춰 커튼도 쳐지면서 세트가 계속 바뀌는데 이 영화는 모든 세트가 애초에 다 차려진 상태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세트와 세트 사이에는 바닥에 그어진 선 하나로 구분지어질 뿐이다. 그러니까 벽이 없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마을 사람 가운데 한 명이 그레이스를 겁탈할 때 누군가는 밭에서 경작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들은 그레이스가 겁탈당하고 있는 걸 볼 수가 없다. 아니 모른 척 한다. 선만 그어져 있을 뿐 벽이 없어 훤히 보이는데도. 다만 관객들만이 그런 생경한 풍경을 한꺼번에 다 볼 수가 있다. 결국 이런 설정은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벽을 비웃고 있는 셈. 그러니까 자신을 가려 타인은 보지 못하게 하는 벽이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인간의 이중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완벽한 타인> 역시 남들은 함부로 볼 수가 없는 핸드폰을 통해 마찬가지로 인간의 이중성을 꼬집고 있다.

사실 그렇다. 근본적으로 이성과 본능이 동시에 탑재된 인간은 누구라도 이중적일 수밖에 없다. 남들 앞에선 이성적인 척, 고상한 인간인척 하지만 남들이 안 볼 때, 혹은 모를 거라 생각하면 조잡하거나 혹은 추악한 본능이 튀어 나온다. 남들 보는데서 배설을 하거나 코를 파거나 혹은 자위를 할 순 없잖은가. 그래서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다만 <완벽한 타인>이나 <도그빌>은 극단적인 상황을 통해 그걸 인정하지 않고 소위 ‘아닌 척’하는 인간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다. 그러니까 본능을 지닌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배설도 하고, 남을 속이거나 욕도 하고, 가끔은 이성도 밝히기 마련인데 자신은 아니라는 걸 타인에게 알리고 싶어 한다. 허나 그건 되레 스스로에게 ‘완벽한 타인’이 되는 게 아닐까.

누가 뭐라 해도 인간은 행복의 노예다. 또 대다수 인간들이 쾌락이라 쓰고는 그걸 행복이라 읽는다. 철학의 한 사조인 ‘쾌락주의’에 따르면 쾌락에는 육체적인 것도 있지만 정신적인 것도 있다. 결국 쾌락은 행복과 동일어인 셈. 그리고 그런 행복은 이성보다는 본능이 충족됐을 때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법이다. 바로 인간이 완벽하게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해서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인간은 다들 잡놈일수 밖에 없지 않을까. <도그빌>까진 아니더라도 적어도 <완벽한 타인>에 나오는 인간 군상들처럼.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다. 신이 아니잖아. 그리고 그걸 가슴깊이 새길 때 우린 서로를 진정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세상도 좀더 뽀송뽀송해지면서. 하긴, 잡놈이든 뭐든 우주에서 보면 다 아무 것도 아니니까.

2018년 10월 31일. 러닝타임 115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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