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에 동네 책방까지 걷는 이유
‘불금’에 동네 책방까지 걷는 이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5.10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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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즐겁게 만나는 ‘불타는 금요일’이 있다. ‘불금’으로 짧게 줄여 불러보기로 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웬 ‘불금’이냐고? 이 말은 중장년에겐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 같은 시절이라고 하면 몇십 년 전쯤으로 돌아가야 어울리는 말이 될 거다. 젊은 시절 이 같은 시간이 없었다면 범인(凡人)이라 말할 수 있겠나. 나 역시 아내를 처음 만나 그런 추억이 있었으니 말이다.

어느 세대보다 치열하게 살고 있는 20∼30대가, 이상과 현실의 괴리,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불금’ 같은 날에 몸부림치는 것이다.

불타는 추억이 없는 사람도 있을까?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법한 개인적인 축제다. 그것이 바로 인생이고 삶이니까. 삶에서 그런 것이 응당 있게 마련이라 단정 지어도 될 것 같다. 삶의 희로애락 생사고락을 광의로 생각한다면 어느 누구에게나 다 적용될 수 있는 말이 아니겠나?

다가올 미래, 살 수 있는 여명(餘命)을 한번 가정해 본다. 많아야 30년, 아니면 20년, 재수 없으면 10년으로 줄어들 수 있을 테다. 자연의 섭리대로 되는 신성한 수명이지만 지금 같은 마음이라면 20년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왜냐 하면 100세가 넘은 김형석 교수도, 90 중반쯤에 있는 김동길 교수도 건강히 활동하고 계시니까. 그런데 조건이 좀 따른다. 치아가 튼튼하고 오장육부도 건실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에게 다른 조건 하나를 더 붙이라고 한다면, 매일 일정한 ‘나만의 길’을 걷는다고 하는 요건이다. 그 길이란, 걸어서 최소한 40분 정도 걸리는 아늑한 ‘동네 책방’까지의 거리다. 책방의 실내는 뻥 뚫려 있어 공기도 잘 흐른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기는 아무래도 밀집, 밀접, 밀폐라는 삼밀(三密)이 최대의 적이 아닌가. 그래서 걱정이 되지 않아 좋고, 오고 가는 길 또한 아름다워서 좋다.

먼저 나의 잔디 언덕을 한 바퀴 휭하니 돌고 속보로 시작한다. 잔디 위에 초딩 꼬맹이들이 내다버린 돌멩이나 아이스크림 종잇조각 같은 쓰레기를 하나하나 치운다. 그다음, 단지 내 호젓한 보도 길을 지나면서 목, 어깨, 허리 등 관절을 풀면서 걷는다.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을 만나면 제자리에서 몸을 흔들어야 한다. 옆 행인들은 미동도 없이 빨간 등만 우두커니 쳐다본다. 좀 움직여요! 여보게들! 오장에 호되게 자극이 갔는지 해우소에 들락날락한다. 안성맞춤의 생리운동이고 전신요법인 셈이다.

목적지 동네 책방은, 서양식 건물 안 오밀조밀한 복합매장에 있다. 시네마 관뿐 아니라 음식점, 미용센터, 가구점, 프랜차이즈 상점 등 외국의 어느 쇼핑센터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코로나 때문인지 한낮이 되어도 고객들의 왕래는 드물다.

이 동네 책방의 주인은 알고 보니 소설을 쓰는 문학도다. 옛날 몇 권의 소설책을 출판했다고 하는데 별 재미를 못 본 듯하다. 커피를 주문하면 냅다 로스팅하여 손수 갖다 주는 색다른 서비스를 하니 상석에 앉아있는 기분이다. 서가 한쪽 구석엔 라디오 전용의 멋진 음향기기가 놓여있다. 진공관같이 생긴 것이 여러 개 꽂혀 있어 제법 고풍스럽고 웅장하다. 새로운 장르의 재즈음악은 정말 매력적이지만 독서하기에 그리 맞지 않은 소리여서 주인 몰래 줄여버리기도 한다.

버터 향 짙게 풍기는 베이커리점 하나가 옆에 바싹 붙어있다. 앉아있는 빵식가들의 모습은 프랑스의 어느 고즈넉한 고포 같기도 하다.

모두들 이렇게 여유롭고 행복한 나라에 오래 살았으면 한다. 탐관오리들이 들끓는, 공정과 정의가 무너진 나라엔 이제 살고 싶지 않다. 민주주의에서 무기란, 국민들의 투표 한 장으로 대신한다. 지난 보궐선거에서 우리는 분명 보고 확인했다. 정의로운 나라, 다시 한번 도약하고 희망에 찬 대한민국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김원호 울산대 명예교수, 에세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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