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한지’의 재발견
‘전통 한지’의 재발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5.0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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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필자도 초대받은 어느 단체대화방이 이틀 연일 뜨겁게 달아올랐다. 한동안 불붙었던 ‘이건희 컬렉션 울산 유치’ 논쟁이 좀 식는가 보다 했더니 또 다른 주제가 대화방을 달구었던 것. 군불 지피는 일은 ‘문화예술계의 매치메이커(match maker)’로 통하는 김언배 울산대 교수(섬유디자인 전공)가 맡고 있었다.

처음의 화제는 울산의 국보 두 암각화(반구대·천전리) 문양에 옻칠을 입힌 예술작품을 어떻게 하면 울산시민들이 더 가까이서 볼 수 있게 하느냐는 쪽이었다. 그러나 똑 부러진 결론은 내지 못했다. 그 대신 훌륭한 대안들이 대박 쪼개지듯 다량 쏟아져 나온 것은 예상 밖의 수확이었다. 그다음 대화는 자연스레 ‘전통 한지’ 쪽으로 옮겨 갔다.

전통 한지라면 흐뭇한 일화가 숨어 있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된 오래된 책상이 있다. 바이에른 왕국의 왕 막시밀리안 2세가 쓰던 책상인데, 놀랍게도 이 손잡이엔 한국의 한지가 숨어 있다. 2017년, 이 책상의 중앙서랍 손잡이를 복원하는 데 한지가 쓰였기 때문이다. 한지가 문화재 복원 재료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다.” (출처= ‘스브스 뉴스’)

이 말은 옻칠 암각화 작품을 몸소 제작한 통도사 방장 성파스님도 꺼낸 적이 있다. 루브르박물관이 한·중·일 3국의 전통 종이 재질을 비교·분석한 끝에 우리 전통 한지에 최고점수를 주었다는 것. 올봄 성파스님이 서운암 토굴(거처) 가까이에 해묵은 감나무를 지게차로 밀어내고 닥나무 1천600그루를 심은 뜻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전통 한지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날 미래의 한류, K-문화예술의 전령사가 될 거라는 기대에 토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난달 29일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등재추진단’ 발대식에는 성파스님도 초청됐으나 참석하지 못했다. 그다음 날이 코로나 백신을 맞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발대식 날에는 이어령·유인촌 전 장관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저명인사들이 수두룩했다. 이날 추진단장으로 추대된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도 그런 VIP 중의 한 분. 영축총림 통도사를 비롯한 7개 한국 전통 사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일등공신 역할을 한 분이다. 이 단장은 그보다 닷새 전 통도사 장경각 앞에서 진행된 옻칠 암각화 수중전시 개막식에서 성파스님의 소개를 받은 즉시 전통 한지의 유네스코 등재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친 바 있다.

그런 자신감은 이배용 단장의 연합뉴스 인터뷰 글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탈리아 국립기록유산 보존복원 중앙연구소는 전주 한지의 인증 시험을 거쳐 보존·복원 용지로서 합격 판정을 내렸다. 이는 2016년과 2018년 경남 의령 공방이 만든 한지에 이어 세 번째다. 문화재 복원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이탈리아의 인증을 받으면 사실상 세계적으로 그 품질의 우수성을 공인받은 것이다. 최근 문경 한지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기사 제목은 <전통 한지 유네스코 등재 타당성, 차고 넘친다>였다.

성파스님의 토굴(거처) 문지방 안팎에는 서너 가지 크기의 전통 한지가 가지런히 놓여 눈썰미 있는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처음엔 24m 길이로 하려다가 내친김에 100m짜리도 만들어 보았지.” 성파스님이 필자에게 들려준 뒷얘기다. 혹자는 이 전통 한지가 ‘전주 제지’에서 만든 기계식 한지로 잘못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석태 ‘레오디자인’ 대표(전 울산대 교수)의 전언은 전혀 딴판이다. 24m짜리는 서운암 경내 작업공간에서, 100m짜리는 장경각 앞마당 비닐하우스 안에서 스님 특유의 독창적 기법으로 만들었다는 것.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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