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생각해, 그럼 존재해-애니메이션 ‘코코’
기억하고 생각해, 그럼 존재해-애니메이션 ‘코코’
  • 이상길
  • 승인 2021.05.06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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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코코'의 한 장면.
애니메이션 '코코'의 한 장면.

 

세상엔 눈에 보이진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도 많다. 사랑이 대표적인데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좀처럼 존재여부를 알기가 어렵다. 또 표현되더라도 그걸 입증하는 건 쉽지 않다. 해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콘택트>라는 영화에서도 신의 존재를 입증해보라는 우주과학자 앨리(조디 포스터)에게 신학자인 팔머(매튜 맥커너히)는 이렇게 되묻는다. “(돌아가신)아버지를 사랑했나요? 그럼 그것도 입증해 봐요.”

사랑처럼 일상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 말고 미시세계로 들어가면 더 많다. 원자나 전자, 혹은 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나 세균 같은 미생물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육안으로 확인하긴 어렵다. 심지어 우리 몸을 구성하는 호르몬이나 비타민 같은 각종 영양소들도 눈에 보이진 않지만 존재한다. 때문에 <코코>에서 주인공 미구엘(안소니 곤잘레스)은 사후세계를 처음 접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비타민처럼 정말 존재하는구나.”

그렇다. 사후세계의 존재도 비슷하게 생각해볼 수 있다. 현실에서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많은 것들이 존재할 수 있는 만큼 어쩌면 사후세계라는 것도 보이지는 않지만 혹 존재하는 건 아닐까?

실제로 멕시코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있는데 그 나라에선 매년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가 ‘죽은 자의 날’이라는 명절로 지정돼 있다. 죽음의 가치를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멕시코인들은 세상을 떠난 이들이 1년에 한 번 가족과 벗을 만나러 세상에 내려온다고 믿고 있다. 때문에 그 기간 동안 멕시코 전역의 공원과 건물, 가정에는 제단이 차려져 죽은 자들을 기리게 된다. 뭐 우리나라에서 명절 때마다 치르는 제사와 비슷한 거라 보면 된다. <코코>는 그런 멕시코를 배경으로 우연히 죽은 자들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 꼬마 미구엘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얼핏보면 죽음이란 것도 삶의 연장선일 뿐이라며 죽음에 대해 친근하게 접근하고 있는 듯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사실은 ‘존재’에 대해 아주 깊은 철학적 사유를 전하고 있다. 픽사 작품들이 원래 그렇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아무튼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건 해마다 열리는 죽은 자의 날에 죽은 자가 가족을 만날 수 있는 조건. 그 조건이란 살아있는 가족들이 자신의 사진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가족들이 차린 제단에 자신의 사진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런데 오래 전 가족들로부터 버림을 받은 헥터(가엘 가르시아 베르날)는 그렇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사후세계에서조차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처럼 떠돌이 영혼 취급을 받았다. 다만 딸이 아직 자신을 기억하고 있어 겨우 존재할 수는 있었다. 제단에 사진도 없는 체 만약 딸이 죽어서 자신에 대한 기억까지 사라지면 헥터는 어떻게 될까? 사진이라는 증거도 없고, 아무도 기억하는 이가 없으면 뻔하지 않나. 바로 무(無)가 된다. 존재가 사라지게 된다는 뜻. 실제로 극중에서 헥터의 친구는 그렇게 사후세계에서마저 사라져 갔다.

일찍이 철학자들은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이 세계 자체가 진짜 존재하는지를 의심했었다. 허나 설령 한낮 꿈에 불과하더라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언대로 생각하는 나는 분명 존재하지 않을까. 그만큼 생각이나 마음이 하는 일들은 어마어마하게 큰일이다. 몸이 힘든 건 참아도 마음이 힘든 건 못 견디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니겠는가. 심지어 마음이나 생각은 존재마저도 규정지을 수 있다고 보는데 <코코>와 실제 멕시코 사람들이 사후세계를 인정하는 대전제가 바로 그것이었다. 산 자들이 기억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어서도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그건 사랑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잘 만나다 헤어졌을 때 사라지는 건 뜨거움이지 사랑이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헤어져서도 여전히 그나 그녀를 생각할 테고, 생각하고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한 사랑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건 사랑을 시작할 때도 비슷해서 그나 그녀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순간 사랑이란 존재는 이미 시작되지 않을까. 김춘수의 ‘꽃’이란 시에서도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욕심과 욕망으로 가득 차 환경파괴나 일삼는 바이러스 같은 종족이지만 사실 이런 지성 때문에 인간은 이 우주에서 꼭 필요한 존재다. 그렇잖은가. 이 우주가, 혹은 대자연이 아무리 아름다운들 그 아름다움을 알아봐주는 인간이 없다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2018년 1월11일 개봉. 러닝타임 104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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