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가무(樂歌舞)와 각선삼(角扇衫)
악가무(樂歌舞)와 각선삼(角扇衫)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5.03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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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첫째 날과 둘째 날 밤에 비가 숨죽여 내렸다. 농부가 곤히 잠잘 때 소리 없이 내리는 밤비는 좋은 비다. 소리를 내며 내리는 낮비는 오만무례하게 구는 것 같아서 싫다. 밤비가 예쁘게도 아침 해가 뜰 무렵 멈췄다. 이러한 비를 시인 두보(杜甫)는 반가운 비 ‘희우(喜雨)’, 때맞추어 알맞게 오는 비 ‘호우(好雨)’라 표현했다. 호우는 또 소리 없이 만물을 촉촉이 적셔준다는 의미로 ‘윤물’이라 했다. 나는 아예 ‘윤물우(潤物雨)’라고 부른다. 〈봄밤에 내리는 기쁜 비·春夜喜雨-두보〉에서 찾을 수 있다.

해가 솟아서 우산을 접었다. 하늘이 맑게 개자 이리저리 제비들이 날았다. 열흘 전에 약속한 국악·무용 예술인들이 시간 맞추어 토굴을 찾아주었다. 한동안 도량에는 안부를 묻는 연자어(燕子語)가 난무했다. 자리를 잡아 따뜻한 오미자 한 잔씩을 마시며 반가움을 나누었다.

덕담을 청했다. “오늘이 좋은 날입니다. 각선삼이 모였습니다.” 순간 황조롱이를 본 노란 부리 제비 새끼처럼 말이 없다. “각선삼이 무엇입니까?” “악가무의 다른 표현입니다.”

악가무(樂歌舞)는 기악과 노래와 춤을 나타내는 한자어다. 드물게 각선삼(角扇衫)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악가무는 흔히 사용되는 말이지만 각선삼은 생소하다. 이 표현은 음악 이론에서는 찾을 수 없고 시에서나 쓰이는 말로 한문 시어(詩語)에서 찾을 수 있다. 이날의 방문이 뜻있고 흡족한 일로 여겨 각선삼을 풀어 본다.

먼저 악(樂)이다. 악은 풍류, 음악, 연주하다, 타다, 악기 등의 의미를 지닌 익숙하고 친숙한 단어다. 삼현육각(三絃六角)의 대표적 표현이지만 처음 접하거나 들으면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악기 연주자를 ‘풍각’ 혹은 ‘풍각쟁이’로 부른다. 줄여서 ‘각’으로도 부른다. 대중가요 〈오빠는 풍각쟁이〉에 나오는 ‘풍각’은 한자는 같아도 의미는 달라 보인다. 가사의 내용과 라임(rhym)으로 짐작하건대 연주자가 아니라 허풍쟁이, 거짓말쟁이와 같은 의미를 풍긴다. 다만 ‘-각’이 접미사로 붙는 다각(茶角), 총각(總角) 등에서 마중물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능엄경(楞嚴經)》에서 표현되는 승려 ‘가사각(袈娑角)’의 비유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다음은 소리인 ‘가(歌)’다. 가의 다른 표현은 부채를 의미하는 ‘선(扇)’이다. 이는 노래나 소리를 하는 사람이 손에 잡은 물건 즉 부채에서 연유한다. 노봉(老峰) 김극기(金克己)의 시(詩) 〈조전화앵(弔?花鶯)〉의 시어(詩語) ‘월투가를 부르며 흔들었던 부채는 하늘에 닿았는데(月偸歌扇當天)’에 등장하는 가선(歌扇)이며, 줄여서 ‘선’이라고 부른다. 소리하는 사람에게 부채의 용도는 가리키고,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이지만, 때로는 내용을 전달하는 도구로도 사용된다. 이러한 이유로 ‘선’은 소리꾼의 상징어가 되었다는 사실도 함께 알아두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춤을 의미하는 ‘무(舞)’다. 무희의 복식은 소매가 넓거나 길다. 이는 표현을 돋보이게 하는 게 목적이다. 사자성어 ‘장삼선무(長衫善舞)’가 무용인 복식의 특징을 잘 말해준다. 이런 이유로 무용인의 특징을 바탕으로 남들이 지어 부르는 표현이 ‘무삼(舞衫)’ 혹은 ‘삼(衫)’이다. 노봉의 같은 시에서 나오는 ‘운학무를 추던 소매는 땅에 끌리었고(雲學舞衫曳地)’라는 표현에서 무삼(舞衫)을 찾을 수 있다.

정리하면, 각(角)은 연주자 복식의 소맷자락, 선(扇)은 소리꾼의 지물(持物)인 부채, 삼(衫)은 춤꾼의 넓고 긴 무복(舞服)의 소맷자락을 의미한다. 악가무(樂歌舞)에 집착하지 말고 각선삼(角扇衫)도 함께 알아두기를 권한다. 그렇게 하면 예술, 특히 국악과 무용에 관한 대화의 폭이 한층 넓어지고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김성수 철새홍보관 관장·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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