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난 집에 부채질은 하지 말자
불난 집에 부채질은 하지 말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4.27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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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지방자치단체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일이다. 시민사회단체, 언론도 지자체의 행정을 감시는 해도 그 방향을 강제할 권한은 없다. 이 때문에 예산 의결권을 가진 지방의회가 잘못된 행정을 바로잡는 최후의 보루나 다름없다.

울산 동구의회는 동구청이 제출한 2021년 당초예산안과 2021년 제1회 추경예산안을 심사해 축제·행사성 예산을 삭감했다. △바다자원 체험지와 남진 바다물놀이장 조성(1억2천100만원), △슬도 수산생물체험장(슬도피아) 조성(3억9천800만원), △2022년 대왕암 해맞이 축제(7천만원) 등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이하 코로나) 사태가 오히려 확산하는 상황에 대면 행사를 강행하는 행정의 방향이 잘못됐다는 게 의회의 판단이다.

위기 상황에서는 위기 극복이 최우선의 길이다. 태풍·홍수와 같은 자연재해가 나면 공무원, 자원봉사자, 군병력 등이 총동원되어 복구에 나선다. 코로나라는 바이러스발 위기는 세계에서 매일 발생하는 자연재해와 같다. 다른 위기와는 달리 코로나 위기는 모든 사람이 영향을 받는다. 영향력이 매우 크다 보니 사람들의 삶과 경제 전반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친다.

특히 동구는 지난해 코로나가 다가오기 전 몇 년간은 조선업 불황으로 경기 침체를 겪고 있었다. 끝을 모르는 2개의 위기가 한꺼번에 닥친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래서 다른 지자체와는 차별화된 위기 극복 노력이 필요했고, 지금도 다르지 않다.

지금 동구가 해야 할 일은 코로나와 조선업 위기로 고통받는 지역 구석구석을 살피는 일이다. 손님이 뚝 끊긴 소상공인들, 일자리를 잃어 생활고에 시달리는 주민들을 위한 적극적인 예산 배정이 필요하다. 동구에 관광객을 유치하는 일보다 동구를 떠나는 주민을 막는 일이 최우선 목표가 되어야 한다. 동구의 미래를 위해 해양관광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데는 찬성이다. 하지만 전국의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관광도시를 꿈꾸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만큼, 치밀하고 지속가능한 계획 수립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현재 동구의 해양관광은 일시적이고 변수가 많다. 지난해 10억원의 예산으로 추진했던 슬도 수산생물체험장은 코로나 여파로 단 17일 운영으로 사업을 접었고, 재작년에는 1억3천여만원의 예산으로 남진 물놀이장을 개장했지만 잦은 태풍으로 단 13일 만에 문을 닫았다. 과연 이 사업들이 관광 활성화에 필요한 것인지 백지상태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

최신 관광 트렌드도 반영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초개인화 기술을 활용한 개인 맞춤형 관광상품 개발이 늘고 있고, 집이나 차로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서 휴가를 보내는 근거리 관광, 자연 또는 야외 관광이나 건강과 힐링을 추구하는 관광이 뜨고 있다. 대면 접촉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관광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관광도시로의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관광산업 계획을 차근차근 준비했다가 현재 건립 중인 대왕암공원 해상케이블카, 바다를 건너는 짚 와이어와 출렁다리가 완공되는 시점에 맞춰 본격적으로 육성해도 늦지 않다. 여행 트렌드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한다면 관광산업 후발주자라는 약점도 능히 극복할 수 있다.

코로나라는 불이 났다. 이 불은 고약해서 아주 작은 불씨만 있어도 다시 활활 타오른다. 행사와 축제를 강행하는 것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부채질에 주민들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것을 동구는 잊어서는 안 된다.

끝으로 의회의 예산삭감에 대해 특정 정당에서 의원들을 비난하는 현수막을 동구 곳곳에 걸고 있다. 어느 지자체든 의회와 집행기관의 견해가 다를 수 있다. 그렇다고 주민들을 선동해서 의회의 고유 권한을 부정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삼갈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

홍유준 울산 동구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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