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법당(好法堂)과 호수(好鬚)
호법당(好法堂)과 호수(好鬚)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4.19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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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好法堂(호법당)’은 ‘좋은 법당’, ‘잘 꾸며진 법당’으로 풀이된다. ‘호법당불무영험(好法堂佛無靈驗)’이란 원문에서 앞의 석 자를 따온 것이다. 원문에서는 앞말과 뒷말이 긍정과 부정으로 대비되고 있다. 즉 ‘법당은 좋다’는 의미와 ‘부처는 영험이 없다’는 의미로 대비되는 것이다.

사찰의 법당은 종교적 가르침의 대상을 모신 장소다. 경배 대상에 따라 대웅전, 미타전, 관음전 등으로 이름이 다르게 불린다. 법당의 이름에서 예배 대상을 알 수 있는 셈이다. 사찰에서는 법좌에 부처님을 모실 때 대부분 넓은 자리에 앉은 자세로 모신다. 어떤 사찰에서는 천정에 ‘닫집’이라는 지붕을 세우고 다양한 무늬와 조각으로 장식하여 공경 대상의 존엄을 강조한다. 닫집의 일반적 형태는 섬세하게 짜인 공포와 화려한 장식으로, 얼른 보아도 화려한 궁전을 연상시킨다.

먼저, 호법당 이야기는 동자가 대사의 등짝을 치면서 “법당은 호법당인데 불무영험이로다.”라고 했다는 ‘찬즙 대사와 동자’의 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시대의 호법당 이야기를 읽었다. “건축 불사보다 인재 불사가 더 중요한 시대입니다. 그러려면 부처님 가르침이 실생활과 동떨어진 게 아니라 생활 속에서 실천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관점에서 불교도 법당에 가만히 앉아서 인연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저 같은 젊은 스님들이 주축이 되어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한 거죠.” (2021.3.8. 서울경제)

충남 당진 영탑사(靈塔寺)에 올해로 법랍 20년 차인 주지 상준 스님이 있다. 그는 ‘호법당불무영험’이라는 사자후를 토하며 불교의 올바른 가르침을 착각한 시대적 행동을 장군 죽비로 등짝을 내리치듯 사정없이 내리쳤다.

다음, 한자 ‘好鬚(호수)’는 ‘잘 가꾸어진 수염’, ‘보기에 멋진 수염’으로 풀이된다. ‘호수무어(好鬚無語)’란 원문에서 앞의 두 글자를 따온 것이다. 호수무어는 ‘수염은 멋진데 말은 할 줄 모른다’고 빗대는 말이다. 장·단점을 전후로 비교하고 있다. 출처는 《당서(唐書)》 〈방현령전(房玄齡傳〉으로, 수염과 외모는 멋져도 능력은 별로라는 의미다. 겉모습만 번지르르할 뿐 능력은 없으면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고앉은 사람에 대한 은유적 비판이기도 하다. 어떤 일이든 전문성 없이 나서고 끼는 사람을 일컫기도 한다.

지난 4월 7일에 치러진 재·보궐선거 결과를 언론은 ‘참패’와 ‘승리’로 표현했다. 나훈아의 노래 ‘공(空)’의 가사 ‘살다 보면 알게 돼 일러주진 않아도…’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인생살이 경험으로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알게 된다. 자기중심의 백 마디 말보다 진실한 한마디가 믿음을 갖게 한다. 투표소를 찾아간 유권자는 거친 손가락을 천금 같은 믿음으로 힘주어 눌렀다. 유권자는 동민(洞民)이자 구민(區民)이며, 시민(市民)이자 국민(國民)이기 때문이었다. 국민의 경험은 기억으로 저장된다.

인도 델리에는 마하트마 간디 추모공원이 있다. 이곳에는 그가 생전에 죄와 악으로 생각한 일곱 가지가 돌에 새겨져 있다. 그중에는 ‘철학 없는 정치’와 ‘헌신 없는 종교’도 포함돼 있다. 출가자의 목적이 목탁이 아님을 성찰해야 하듯, 정치인의 목적 또한 자리행(自利行)보다 앞선 이타행(利他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리행, 요행, 다행은 4년이면 끝나지만, 이타행은 물가의 버드나무 같아서 그 소임과 자긍심은 지속적이다.

모두는 값진 경험을 했다. 이제 당선자는 유권자를 ‘질그릇 속에 담아둔 보배’같이 여기고, 자신이 ‘뚝배기보다 장맛’으로 인식되도록 시대적 삶의 동반자가 되기를 바란다.

김성수 철새홍보관 관장·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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