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오고 있다-애니메이션 ‘바다가 들린다’
여름이 오고 있다-애니메이션 ‘바다가 들린다’
  • 이상길
  • 승인 2021.04.15 2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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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바다가 들린다’ 한 장면.
애니메이션 ‘바다가 들린다’ 한 장면.

 

스포일러가 있는 글입니다.

소녀가 전학을 왔을 때 소년의 친구는 몹시 들떠 있었다. 오죽하면 아르바이트 중인 소년을 다급하게 불러냈을까. 동경에서 전학을 온 소녀의 이름은 리카코(사카모토 요코). 예뻤다. 그리고 소년의 이름은 타쿠(노비타 노부오)였고, 친구는 마츠노(세키 토시히코)였다. 고등학생인 둘은 절친이었고 수도 동경에선 한참 떨어진 고치현이라는 작은 해안도시에 살고 있었다.

처음엔 소년의 친구가 소녀와 친했었다. 반장인 그 친구는 소녀를 잘 챙겼는데 그게 소녀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걸 소년은 얼마 뒤 알게 됐다. 근데 이상하게도 화가 났다.

그랬거나 말거나 이 소녀, 좀 이상했다. 예쁜데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해서 전학 오자마자 화제의 중심에 섰지만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였던 것. 더 이상한 건 잘해주는 쪽은 반장인 소년의 친구였는데 자꾸만 소년에게 말을 걸어왔다. 급기야 하와이로 수학여행을 와서는 돈 잃어버렸다며 느닷없이 소년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처음으로 건 말이 돈 빌려달라니. 근데 소년은 그걸 또 빌려준다.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이.

그러다 소년은 소녀가 어딘지 모르게 슬퍼보였던 이유까지 알게 된다. 얼마 전 부모가 이혼을 했었고, 그래서 엄마를 따라 엄마의 고향인 고치현으로 전학을 오게 된 것. 그리고 소년에게서 돈을 빌린 건 연휴 때 아빠가 있는 동경으로 갈 비행기 티켓값이었단 것도 알게 됐다.

헌데 여차저차해서 소년은 소녀의 동경행 비행기에 같이 오르게 된다. 얼떨결에 끌려가다시피 했는데 같이 가준다고 기뻐하는 소녀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외로워보였다. 동경에 도착한 뒤 소녀의 아빠가 잡아준 호텔방에 앉은 소년. 그런데 갑자기 벨이 울린다. 문을 열었더니 울고 있는 소녀가 서 있었고, 느닷없이 방안으로 들어와 소년에게 안겼다. 보고 싶어 기껏 찾아 왔더니 애인이 생겨버린 아빠는 변해있었고, 더 이상 자기편이 아니더란 것. 그리고는 아빠가 잡아 준 방이니 자기도 여기서 자겠다고 한다. 이제 열일곱의 소년에겐 영화 같은 일이었고, 그날 밤 소년은 소녀를 재운 뒤 자신은 화장실 욕조에서 잠을 청했다.

황금연휴가 끝나고 다시 학교에 간 소년. 그런데 학교엔 자신이 소녀와 동경 여행을 다녀왔다는 소문이 쫙 퍼져 있었다. 소녀가 직접 다른 친구들에게 말을 했던 것. 소년은 또 절친 마츠노가 소녀에게 고백을 했다가 “고치 사는 남자는 다 소름끼친다”며 퇴짜를 맞았다는 이야기도 듣게 된다. 그 말에 그렇지 않아도 동경여행 후 자신에게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소녀가 얄미웠던 소년은 폭발하고 만다. 자신도 결국 소름끼치는 존재에 불과했으니. 소녀를 찾아간 소년,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넌 최악”이라고 퍼붓고, 그 말에 화가 난 소녀는 소년을 향해 불꽃 싸다구를 날린다. 소년도 질새라 분노의 싸다구를 날리게 되고 그런 소년을 향해 소녀는 이렇게 말한다. “친구는 알뜰히도 챙기네. 이제 이걸로 된 거지?”

마침내 소년과 소녀, 그리고 소년의 친구는 졸업을 하면서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동경에 있는 대학을 다니게 된 타쿠는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와 동창회에 참석하게 된다. 그리고 리카코는 오지 않은 그 모임에서 그는 전혀 뜻밖의 이야기를 듣는다. 고치 대학에 다니는 줄 알았던 리카코가 엄마 몰래 동경에 있는 대학에도 지원해 지금 다니고 있고, 그 이유가 동경에서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는 바로 “욕조에서 자는 사람”이었다고.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타쿠는 멀리 고치성을 바라보며 그 시절 리카코가 자신에게 했던 말들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왜 그땐 몰랐을까? 사랑인 걸..’

사실 타쿠가 그 시절 리카코에게 적극적이지 못했던 건 절친 마츠노에 대한 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배려 때문에 그는 졸업 전 리카코에게서 “바보!”라는 소리와 함께 따귀를 한 대 더 맞았었고, 마츠노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넌 바보야!”라는 말과 함께 분노의 주먹을 한 대 맞게 된다. 그 시절 마츠노는 절친 타쿠도 리카코를, 또 그런 타쿠를 리카코도 좋아했다는 걸 알았으니까.

얼마 후 동경 어느 지하철역에서 타쿠와 리카코는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리카코는 어엿한 숙녀가 돼 있었고, 그런 리카코를 보면서 타쿠는 이렇게 생각한다. ‘역시 난 그녀를 늘 좋아했었어.’ 젊음이 좋은 건 차고 채여도 뜨거운 여름은 다시 오기 때문. 그렇게 어느새 바다가 들리고 여름은 오고 있었다. 그 남자와 그 여자, 이제 연애를 시작한다. 19 93년 5월 5일 개봉. 러닝타임 90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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