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점심시간
조용한 점심시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4.01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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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점심시간이 되면 살아난다. 학교에서 주어지는 가장 긴 휴식 시간이기 때문이다.

밥을 빨리 먹고 축구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뛰어나가는 아이들, 교실에 앉아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는 아이들, 복도에서 장난치는 아이들, 따스한 봄날에 햇볕 잘 드는 벤치에 앉아 친구들과 대화하는 아이들….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아이들은 점심시간애 다른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같이 보내거나 때로는 혼자서 쉬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들이 모여 학교의 점심시간에는 생기가 넘친다. 하지만 학교의 점심시간이 활기찬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의 새내기 교사 시절에는 ‘연합고사’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고입선발고사’라는 것이 있었다. 시험문제는 아이들이 3년 동안 배운 테두리 안에서 출제했다. 학생들은 연합고사 시험성적에 따라 일반계고(인문계) 진학이 결정되었다. 그래서 그 시절에는 3학년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자습하는 일이 흔했다.

점심을 먹고 나면 학생들과 담임선생님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교실로 들어갔다. 자습하는 3학년 복도를 지나가면서 바라본 교실 안 풍경은 무척 어색해 보였고, 선생님과 아이들이 모두 조용히 앉아 있는 교실 옆 복도를 지나갈 때는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요즘 학교의 점심시간이 딱 그런 느낌이다. 아이들은 밥을 먹기 전 수업 시간에 교실이나 특별실에 비치된 체온계로 체온을 잰 다음 급식 순서를 기다린다. 급식소 앞 대기 시간을 줄이려고 학반별 순서대로 움직인다. 아직은 1학년과 2학년밖에 없어서 2학년이 5교시에 점심을 먹고 1학년이 6교시에 점심을 먹는다.

배식 차례를 기다리면서도 1미터 간격을 유지해야 하고, 배식 전에는 미리 준비해놓은 손 소독제로 반드시 손을 소독해야 한다. 대화는 금지되고 마스크는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늘 쓰고 있어야 한다. 식사가 끝나면 남은 음식(잔반·殘飯)을 처리하고 즉시 자기 반으로 돌아가 자습을 해야 한다.

코로나-19라는 강력한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인 탓에 아이들과 선생님들 모두 이를 지키려고 저마다 애를 쓴다. 아이들이 조용하게 제자리에 앉아 남은 점심시간을 보내는 교실 옆을 지나갈 때 제 자리를 지키는 아이들을 보고는 초임교사 시절, 그 교실의 모습이 생각났다.

코로나19 이후 학교의 역할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사상 초유의 원격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교는 아이들의 학력을 기르고 성장시키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기초 학력을 넘어 인간적 성장을 위한 삶의 지혜를 기르는 것은 단순하게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삶을 위한 교육을 받으면서 인간적으로 성숙해지기 위해 아이들은 실제적인 삶의 문제로 토론하고 탐구하는 가운데 교과 내용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 다른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생각을 교환한다. 또 자신과 생각이 다른 친구와 마주하면서 때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수용하는 가운데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이런 토론과 탐구가 진정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형성되어야 하며, 이는 상대에 대한 신뢰와 지적으로 안전한 교실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삼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점심시간은 단순히 노는 시간만은 아니다. 점심시간에 친구와 고민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며, 같이 놀면서 생기는 갈등을 해결하고, 갈등을 다루는 방법을 익히면서 놀이의 규칙도 지키게 된다. 코로나가 앗아간 예전의 생명력 넘치던 그 점심시간이 그리워진다.

정창규 고헌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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