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종교인이 서로 존중하며 정의·평화·사랑 실천해야죠”
“모든 종교인이 서로 존중하며 정의·평화·사랑 실천해야죠”
  • 김정주
  • 승인 2021.03.31 23:27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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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규(안셀모) 한국천주교 부산교구 울산대리구장 신부
김영규(안셀모) 한국천주교 부산교구 울산대리구장 신부.
김영규(안셀모) 한국천주교 부산교구 울산대리구장 신부.

대만 輔仁大 유학… 부산가톨릭대 총장 역임

온화하고 인자하다. 성직자의 기품에 학자의 품격이 겹쳐진다. 그의 첫인상이다.

김영규(안셀모) 천주교 부산교구 울산대리구장 신부. 사제(司祭)나 수도자(修道者) 반열에 오르기 전의 개인사는 묻지 않는 게 예의라는 걸 모르고 대뜸 질문부터 던졌다. 돌아온 반응은 의외였다. 거부감이 없었다.

1961년, 부산 거제동 출신이라 했다. 집안 내력에도 물음표를 던졌다. 알고 보니 온통 가톨릭이다. “친가도 외가도 다 천주교 집안이지요.” 순명(順命)의 뿌리는 아주 깊었다. 천주교 혈통 4대째에 사촌 여제는 수녀(修女) 직에 몸을 담았다.

사제 서품은 광주가톨릭대의 문을 두드린(1981.1) 지 9년 만인 1990년 2월 3일에 받았다. 서품과 동시에 ‘부산 서면성당 보좌신부’ 직분이 주어졌고, 울산과의 연은 그 이듬해 시작된다. 언양성당의 보좌신부, 주임신부 직분을 연이어 맡은 것. 올해로 신부(神父)로 봉직한 지 어언 32년째다.

1994년부터는 전혀 새로운 경험이 그를 기다린다. 대만 보인대(輔仁大, Fu Jen Catholic University) ‘동양철학과’에 유학, 석·박사학위에 도전한 것. 석사학위 취득에서 박사학위 과정 수료까지, 그곳에 머문 기간은 햇수로 10년(1994.9~2004.12)이다. “동양철학은 ‘중국철학’을 말하지요. 유교, 불교도 공부했지만, 전공은 ‘도가(道家)’ 사상이었습니다.”

궁금증이 풀렸다. ‘대학자의 풍모’! 이 예사롭지 않은 이력은 나중에 그를 학문의 전당으로 끌어들이게 만든다. △부산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부산교구 학교법인 성모학원 상임이사, 더 나아가 △부산가톨릭대 총장 △한국가톨릭대 총장협의회 회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이사직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 ‘학(學)’자와 유관한 이 직함들은 2005년 1월∼2018년 12월 사이에 일어난 개인적 역사의 흔적들이기도 하다.

지난달 24일 저녁 ‘미얀마 민주회복 기원 미사’가 열린 남구 야음성당의 내부 모습. 사제·수도자 21명과 평신도 등 200여명이 자리를같이한 이날 미사는 안셀모 울산대리구장 신부가 집전했다.
지난달 24일 저녁 ‘미얀마 민주회복 기원 미사’가 열린 남구 야음성당의 내부 모습. 사제·수도자 21명과 평신도 등 200여명이 자리를같이한 이날 미사는 안셀모 울산대리구장 신부가 집전했다. 사진제공=천주교 부산교구 울산대리구청

 

‘김대건神父 탄생 200돌 禧年 순례성당’ 3곳

중구 성안(내약골 65-39)에 자리한 ‘한국천주교 부산교구 울산대리구청’을 찾은 것은 지지난 주말, 부활절(4월 4일)을 앞둔 시점인 데다 올해가 ‘한국 최초의 가톨릭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 200주년이라는 점이 마음을 흔들었다. 질문도 가닥이 잡혔다.

약수마을 ‘영성(靈性)의 집’을 개조해서 꾸민 소박한 대리구장 집무실. 격의 없는 대화는 한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안셀모 신부는 한국천주교회가 선포한 ‘성(聖)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禧年)’에 대한 설명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번 희년 기간은 2020년 11월 29일(대림 제1주일)~2021년 11월 27일(대림 제1주일 전날). ‘대림(待臨)’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일을 말한다.

“이번 희년은 한국 교회의 귀중한 유산인 순교영성(殉敎靈性), 곧 순교자들이 온 삶을 바쳐 지킨 신앙을 삶의 중심에 굳건히 세우고, 신앙이 주는 참 기쁨을 나누는 초대의 잔치입니다. 희년을 보내면서 코로나 시기의 신자 모두가 순교영성을 본받아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티아서 5장 6절)의 가치가 더욱 깊어지길 희망합니다.”

가톨릭 신도들이 희년을 맞아 교황이 제시한 조건을 지키면 ‘전대사(全大赦)’의 특전을 얻는다. ‘전대사’란 개신교 식 표현으로 ‘모든 죄의 사함 받음’이다. 앞서 유네스코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를 ‘2021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 기념하도록 했다.

희년 맞이 기념 신앙활동에는 ‘희년 기념성당 순례’가 있다. 부산교구가 정한 울산대리구의 ‘희년 순례성당’은 울산의 중심성지(中心聖地)라 일컫는 언양성당(1927~)과 순교자 3인을 기리는 병영성지(聖地)성당, 월평성당 세 곳이다. 특히 언양성당과 병영성지성당은 울산지역 천주교 역사, 천주교 박해사(迫害史)와 궤를 같이한다.

<언양성당 신앙전래 200년사> 펴내기도

“울산천주교사의 시작은 한국천주교사의 그것과 같다고 할 수 있지요.” 안셀모 신부의 말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사실 가톨릭 역사학자들은 한국천주교의 시작점을 청나라 사신의 일원인 이승훈(1756~1801)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은 ‘1784’년으로 본다. 천주교가 울산에 뿌리내린 해도 바로 그 무렵.

“명동성당 자리인 명례방(明禮坊)에 모여 종교집회를 하다가 정부 관리에게 들켜 체포되는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曹摘發事)’이 1785년에 일어납니다. 그 때문에 그 집 주인 김범우가 밀양에 귀양 와서 천주교를 전하고 그 신앙이 언양에까지 전해집니다.” (을사추조적발사건 때 양반은 다 풀려났으나 ‘중인·中人’ 신분인 김범우는 혹형·酷刑을 당한 뒤 경남 밀양 단장으로 유배된다.)

안셀모 신부는 그런 내용이 <언양성당 신앙전래 200년사>에도 기록돼 있다고 귀띔했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지다가 흠칫 놀랐다. ‘발행연도: 1993년, 발행인: 김영규 안셀모 신부….’ 엄청난 분량의 이 저술을 안셀모 신부가 언양성당 주임신부 때 해냈다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김범우 교우가 신앙을 전파하다가 묻힌 곳이 밀양인데, 산 하나만 넘으면 언양 아닙니까?” 안셀모 신부는 언양에서 천주교를 믿다가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순교한 ‘성(成)씨 3형제’ 얘기를 하면서 언양에는 김범우의 전교(傳敎) 이전부터 천주교 신도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안셀모 신부는 울산지역 공소(公所=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천주교 예배당) 역사도 훤히 꿰뚫고 있었다. 현재 남아있는 공소는 6곳 남짓. 모두 언양성당 신앙권에 속한 곳들이다. ‘부산·경남의 첫 공소’이자 한때 최양업 신부(1821~1840)가 다녀간 것으로 알려진 간월공소(1815~1860, 울주군 상북면 등억리)나 20년 전 태풍으로 허물어진 ‘탑곡공소’도 염두에 둔다면 울산과 조선 천주교의 박해사는 ‘불가분의 관계’일 것이다. 현재 울산대리구 소속 본당(本堂)은 병영성지성당을 합쳐 27곳을 헤아린다.

지난달 29일 낮 울산혈액원에서 ‘사랑의 헌혈 천사(1004) 릴레이 운동’에 동참한 신부와 평신도들이 ‘사랑의 하트’ 모양을 손가락으로만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천주교 부산교구 울산대리구청
지난달 29일 낮 울산혈액원에서 ‘사랑의 헌혈 천사(1004) 릴레이 운동’에 동참한 신부와 평신도들이 ‘사랑의 하트’ 모양을 손가락으로만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천주교 부산교구 울산대리구청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의료지원·헌혈 운동

안셀모 신부가 지향하는 대리구 사목(司牧)의 큰 틀은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회”. 이 목표를 겨냥한 2가지 사업이 있다. ‘빛·소금 의료지원 운동’과 ‘사랑의 헌혈 천사(1004) 릴레이 운동’이 그것. 극빈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의 의료지원을 위해 지난해 1월부터 시작한 ‘빛·소금~운동’ 덕분에 작년부터 올해 3월까지 460명이 의료혜택을 입었다. 이 운동에는 울산가톨릭의사회·가톨릭치과의사회, 울산시의사회 의료봉사단이 호흡을 같이하고 있다.

‘헌혈 천사 운동’은 대리구 설립 10주년인 지난해 지역사회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시작한 운동. 두 해 모두 코로나19 상황과 맞물리면서 헌혈량이 태부족이라는 소식을 듣고 교회가 직접 나서기로 했다. 코로나 기세가 여전한 올해는 일단 울산혈액원을 찾아가서 하는 방문헌혈로 취지를 이어가기로…. 지난달 29일의 헌혈 행사에는 대리구 신부 두 분과 평신도들도 마음을 보탰다.

다른 종교를 바라보는 시각이 궁금했다. 안셀모 신부는 ‘모든 종교는 기본적으로 세상의 평화를 위해 봉사하는 한 형제’라고 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모든 형제들’)을 인용했다. 3월 5~8일에 있었던 교황의 이라크 사목 방문 주제가 ‘너희는 모두 형제였다’는 점도 떠올렸다. 그러면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작년에는 가까운 백양사를 찾아가 주지 스님과 대화를 나눴지요.” 이 일은 박창현 울산대리구 평신도협의회 회장이 다리를 놓았다.

인터뷰는 이런 말로 매듭이 지어졌다. “타 종교인들의 정신적·도덕적 자산과 사회·문화적 가치를 존중하고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종교인들이 진심으로 대화하고 포용하면서 우리 세상, 우리 사회의 평화와 정의, 사랑의 실천을 위해 같이 노력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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