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샘 나들이
탑골샘 나들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3.28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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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산 쌀바위’와는 달리 ‘백운산 탑골샘’ 산행은 처음이어서 설Ž 토요일 아침부터 일찌감치 서둘렀으나 ‘정시 접선’ 목표는 어긋나고 말았다. ‘차(車) 신세’ 좀 지기로 한 이상옥 위원장(시의회 환경복지위원회)이 참을성 있게 기다려준 것이 고마웠다.

백운산 중턱 가파른 산길 어귀 포장도로에서 검은 승합차 1대와 마주쳤다. 초행길로 보이는 송철호 시장과 보좌진이었다. 우리 쪽 ‘길 박사’ 김성수 철새홍보관장의 길 안내가 숨통을 트이게 해주었다.

탑골샘 산행의 베이스캠프 격인 1차 목적지에 다다른 것은 오전 10시 무렵. 행사 시작까지는 아직 한 시간 여유는 있지 싶었다. ‘내와길 230-1’(울주군 두서면)이란 도로명주소 팻말과 ‘송 OO’란 집 주인 이름 팻말이 시야에 잡혔다. 이 집 주인은 신통하게도 송 시장과 본관이 같았고, 그런 연유로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허물없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정작 눈길을 끈 것은 ‘탑골공소 옛터’란 나무팻말. ‘공소(公所)’라면 본당(本堂)의 주임신부가 돌아가며 돌보는 ‘신부 없는’ 천주교공동체를 말한다. 올라오던 길목의 이정표가 문득 생각났다. ‘천주교 순례의 길’! 마침 이곳 출신으로 마을 사정을 잘 안다는 천주교 신도 권 아무개 씨(현대차 근무)가 공소 이야기를 제법 솔깃하게 들려준다.

“여섯 평짜리 탑골공소의 역사는 아주 오랜데 약 20년 전 태풍 때 허물어지고 말았지요. 본당에 여러 차례 얘기해도 재정 형편이 안 좋아선지 그만….” 결국 공소 건물은 없어지고 터만 남았다는 얘기였다.

이날 거동의 최종 목적지는 ‘가지산 쌀바위’와 함께 ‘태화강 발원지’로 알려진 백운산 자락의 탑골샘. 오전 11시부터 ‘제1회 태화강 발원제(發源際)’가 열리는 현장이다. 차를 타고 오다 송 씨네 집 아래에서 찍어두었던 ‘탑골과 탑곡(塔谷) 공소’ 안내판 글귀에 새삼 관심이 갔다.

“백운산에서 탑이 굴러내려 ‘탑골’이라는…상류에는 태화강의 발원지가 있다. 1801년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이 탑골에서 살기 시작했고, 공소는 그 뒤에 만들어졌다. 탑곡 교우촌(1839∼1983.3)은 경주, 밀양, 의성에서 피난 온 고령 박씨, 밀양 박씨, 반남 박씨 집안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였다. 이후 전성기에는 신자가 100명을 넘기도 하였다.…”

돌투성이의 오르막길은 숨이 차도록 가팔랐다. 30분만 더 올라가면 된다던 누군가의 말에 실망한 것은 당연지사. 몇 번이고 앉았다 걷기를 되풀이했다. 그러고 보니 산행과 담을 쌓은 지 수삼 년은 더 된다. 오직 ‘내 탓’일 뿐이다. 이노형 전 울산대 교수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중도 포기’가 분명했다. 바쁜 일정 때문에 먼저 내려오는 안수일 시의회 부의장의 모습은 용기를 되살리기도 했다.

초헌-아헌-종헌례와 축문 낭독이 끝나고 헌작(獻酌)과 음복(飮福)이 진행되는 즈음에야 현장에 도착했다. 더없이 기뻤다. 여기가 바로 ‘태화강의 시원(始元)’ 탑골샘 아닌가! 벅찬 감격의 기운이 대운산 허리를 휘감고 있었다.

김영우 ‘울산강살리기네트워크’ 공동대표가 지었다는 축문(祝文)을 훑어보았다. “유 단기 4354년 신축년 2월…”로 시작되는 글은 탑골샘으로 ‘홍익인간의 대업을 이루신 천신님’과 ‘백운산 삼강봉 낙동정맥을 관장하시는 산신님’, ‘태화강 백리 물길을 다스리는 용왕님’까지 불러내고 있었다.

오찬 도시락이 마련된 송씨네 집 앞마당. 송 시장과 사회자의 말에 우박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시장은 다음 행사 때의 지원을 고민해 보겠다고 했고, 주최 측은 주민들의 청이라며 ‘탑골 공중화장실’ 건립을 건의했다. 이 시간까지 비가 안 온 것은 하나의 축복이었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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