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격(格)
제격(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04.26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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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물에는 그것에 맞는 격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사람이 가지는 격을 인격(人格) 혹은 품격(品格) 이라하는데 행동에 따라 격이 높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낮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격이라는 것이 꼭 높고 낮음의 정도만 나타내는 것은 아니고, 타인과 어울리지 않는 것도 격이 맞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격에 맞지 않게 가볍게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인해 상대방이 불쾌해 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정신적인 피해를 주기도 한다.

나의 친구 아무개는 자신이 돈을 좀 넉넉하게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은근히 자랑한다. 친구들과 정기적인 모임이 있을 때면 농담을 하는듯하면서 친구들에게 자신이 가진 재산 얘기를 하여 상대를 주눅 들게 한다. 그 친구는 격이 높지 않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여유로움을 가진 자는 더욱 아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이익만 된다고 생각하면 상대가 어떻게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금세 친해지기도 한다. 그는 돈을 위해서라면 남들이 손가락질 하는 사람과도 제휴를 하고, 양심도 속이고 절친했던 친구와도 등을 져 버린다. 이런 사람은 격을 갖추지 못한 대표적인 경우다.

대인관계에 있어 자신의 자리와 자존심을 품위 있게 지켜야 함을 말해 주는 좋은 말이 있다. 조선 중기의 문인 신흠(申欽)선생은 이렇게 시로 읊었다.

‘동천년로항장곡(桐千年老恒藏曲)’

오동나무는 천 년을 늙어도 항상 아름다운 가락을 지니고,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매화는 일생동안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행동을 아무렇게나 해서는 아니 되고, 보잘 것 없이 보여도 갖출 것은 모두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또한 겉모습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도 된다. 그리고 당장에 힘들고 생활이 어렵다 할지라도 포기하고 근본을 져 버려서는 아니 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오동나무는 좋은 가락을 내는 악기의 재료가 되어야 제격이라는 뜻이고, 매화는 그 향기만으로 품격을 지키고 있다는 말이 된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동안 어찌 이토록 바르게만 살 수 있겠냐만 노력은 해야 할 것이다.

많이 가진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거나 업신여기는 것보다 도와주는 것이 제격일 것이고, 지식을 많이 쌓은 사람은 배우지 못한 사람을 무시하기보다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것이 격에 맞다. 힘이 센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보호해 주고 보살펴 주는 것이 아름다운 일로 보일 것이다.

음식에도 격이 있고 어울림이 있다. 돼지국밥에는 반드시 새우젓을 넣어 먹어야 궁합이 맞고 제 맛이 난다고 한다. 새우젓을 삼계탕이나 쇠고기 국밥에 넣어 먹는다면 격이 맞지 않아 오히려 맛을 떨어뜨리는 결과가 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이치에 맞게 돌아가야 함을 말해 주고 있다.

옷차림에도 격은 있다. 정신이 나간 사람이 아니라면 잠옷 차림으로 시내를 활보하지 않을 것이고, 한 여름에 겨울용 외투를 입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제 격이라는 것은 합리성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요즈음, 일부 공무원들의 격에 맞지 않는 행동은 심히 유감스럽다. 장애인들에게 지급되어야 할 지원금을 부당한 방법으로 유용을 했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지원금을 받아야 할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가상으로 만들어 지급하였다고 한다. 그 돈으로 자신의 재산을 불리기 위해 저축을 하고, 부동산을 사 들이는 등의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썼다고 하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물론 공무원들이 꼭 가난하게 살아야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공무원들은 청렴한 것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걸맞은 격을 갖춘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을 때 인생의 향기는 저절로 묻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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