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걸이에 담긴 따뜻한 마음
교복 걸이에 담긴 따뜻한 마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3.18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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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여러 선생님 중에서도 ‘학·주’라는 줄임말의 ‘학생주임’은 우리 학교에서 제일 엄한 선생님이었다. 주로 학생들의 교복과 머리, 용모가 학칙을 위반한 건 아닌지 호랑이 눈으로 살피면서 교내·외 생활지도도 담당했다. 학생들의 눈에 ‘군기 담당’으로 비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무섭기만 하던 학생주임에 대한 생각이 최근 확 달라지는 계기가 있었다.

얼마 전 개학을 앞둔 어느 학교에서 망가진 ‘교복걸이’를 고쳐달라는 부탁이 왔다. 교복걸이는 졸업생이 물려준 교복을 걸어두는 도구였고, 이 학교에서는 선배의 교복을 후배에게 물려주는 전통이 있었다. 개학일이 가까워서 곧바로 달려갔다. 그런데 교복걸이의 재질이 용접이 잘 안 되는 금속이어서 난감했다. 용접시공이 어려울 것 같아서 비싸지 않고 튼튼한 옷걸이를 사시라고 권하고는 돌아왔다. 며칠이 안 지나 이번에는 새로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

내친김에 내구성이 강한 교복걸이를 만들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자재선택, 시공방법을 꼼꼼하게 구상했다. 솔직히 다른 공사에 비하면 단순한 일이었지만, 왠지 신경은 더 쓰였다. 담당 선생님과 전화로 직접 대화를 나누었다. ‘안전생활지도부장’이라는 다소 생소한 직책이었고, 학창시절의 학생주임 선생님과 비슷한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분의 요청은 단순했다. 겉모양은 개의치 말고 무조건 튼튼하게만 만들어 달라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모양새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결국, 재질은 스테인리스로 하고 두께와 지름은 교복이 한꺼번에 많이 걸려도 견딜 수 있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직원에게 도안을 대충 그려주며 되도록 빨리 만들어보라고 재촉했다. 교복걸이는 그날 오전부터 늦은 저녁까지 작업한 덕분에 드디어 완성됐고, 바로 다음 날 아침에 갖다 드릴 수 있었다.

그런데 눈치를 보아하니, ‘교복걸이 중간에 지지대를 하나쯤 더 넣었으면’ 하는 것이 부장 선생님의 의중 같았다. 내 생각은 ‘이만하면 충분히 견고하다’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사용자의 만족도를 생각해서 곧장 재시공에 들어갔다. 걸이 하나를 풀어 다른 걸이의 지지대로 삼아야 해서 작업은 그리 만만찮았지만, 그날 작업을 매듭짓고 다음 날 아침에 갖다 드렸고, 부장 선생님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감사의 말을 건넸다.

그 사이 우리 직원이 부장 선생님과 마음 편히 얘기를 나누면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귀띔해준 말이 있었다. 그 전의 교복걸이가 외주제작이나 구매한 물품이 아니라 그 선생님이 손수 제작한 작품으로, 직접 자재를 사고 용접기와 공구를 빌려서 만들었다고 했다. 본인의 전공 분야도 아닌데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을 ‘내 자식’처럼 여기지 않으면 실천하기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아침 등교 시간, 교문에서 하는 학생지도 활동도 다른 선생님에게 맡기지 않고 본인 스스로 솔선수범을 보인다는 귀띔이었다. 학생들에게는 이 선생님이 엄하게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분은 선생님이기 이전에 학생들을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아버지같이 따뜻하고 속 깊은 정을 품고 있었다.

건설업에 종사하면서 많은 분을 만난다. 그중에서도 인품이 훌륭한 분을 만나면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애쓴다. 이번에도 훌륭한 분을 만나 많은 것을 배웠다. 멘토로서 청소년들을 마주할 때 지녀야 할 덕목까지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김정숙 청소년 진로 멘토, 배광건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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