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의미, 시업식
아주 특별한 의미, 시업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3.09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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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아, 교육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나요?” “아니요!”

질문한 내가 무안하게 3학년인 우리 반 아이들은 멀뚱멀뚱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갑자기 당혹스러운 나는 머릿속이 하얘진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지?’

3월 2일 시업식 날이었다. 일찌감치 학교에 도착한 나는 주차장에서 교육청 공보팀장님을 만났다. ‘아! 오늘 교육감님이 우리 학교를 방문하시는 날이구나!’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어떻게 조정될지, 우리 지역에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진 않았는지, 봄방학 동안 하루하루를 노심초사하며 기다린 개학 날이었다. 우리 반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게 기적 같았다. 작년엔 사상 초유의 휴업령을 겪고 한바탕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른 터에 당연한 개학 날이 당연하지가 않았다.

올해 시업식 날은 등굣길 교문에서부터 특별한 모습이 선보였다. 평소엔 등굣길 학생 맞이로 교장 선생님만 서 계셨던 교문에 교육감님도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는 400명 이하의 소규모로 전체 등교수업이 가능했다. 드디어, 방송조회로 시업식이 시작되었다. 교육감님을 비추랴, 교장 선생님을 비추랴, 카메라 담당 방송부원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서툴러서 ‘No’가 아니라 서툴지만 ‘Yes’일 수밖에 없는 우리 방송부원들이 ‘파이팅’하는 순간들이었다.

교육감님의 말씀이 시작되었다. “여러분들, 작년에 코로나로 고생 많았죠?” TV라는 매체를 중간에 두고 대화가 오고 가기란 쉽지 않은데, 우리 반 아이들의 눈에는 레이저, 마스크 속의 아지랑이가 피어 나오려는 듯 움틀 하는 그때였다. 일제히 “예에!” 힘든 마음을 가득 담은 우렁찬 목소리가 마스크를 뚫고 나와 교실에 한가득 울려 퍼지자, 복도에서는 교육감님의 행보를 따라 동행하셨던 분들의 너털웃음 소리가 들렸다.

‘누가 한 번 물어봐 주었을까? 아이들의 힘든 이 마음을!’ 마치, 몽글몽글 터질 듯 말 듯 농한 고름에 침을 가져댄 순간이었다. 역시, ‘아이들이 뭘 알까?’ 싶어도 알 건 다 알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우리 반 교실 뒤로 살짝 등장하신 교육감님은 새내기 선생님의 인사말을 함께 시청하신 후, 아이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셨다. 그러고 보니, 시업식 날 역대 교육감들이 학교 현장에 직접 다녀갈 일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올해, 이렇게 특별한 시업식이 연출된 것은 전 세계적으로 감염병 위기 단계이기 때문이겠지.

“얘들아, 어제 9시 울산 뉴스에 우리 학교가 나왔더라!” “네! 봤어요! 엄마가 이야기해 주셨어요” “그럼, 못 본 친구들을 위해 한 번 볼까요?” “미란이다!” “숙모다! 우리 동생이에요!”

아이들은 새 학년 첫날의 빛나는 추억 속에 흠뻑 빠져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심금을 울린 한마디는 “나는 안 나왔다!”던 최규의 말이었다. 나는 애써 최규의 말을 외면하려는 나 자신을 돌이켜 세웠다. “그래, 선생님도 너무 아쉬웠어요, 하지만.” 학급 앨범에 올리면서도 ‘학부모님들은 자기 자녀 보기를 원하실 텐데, 그래도 자녀가 소속한 반이니 잘 봐주시겠지.’ 하는 바람도 있었다. 당신의 자녀가 나오지 않았지만, 응원을 보내주신 학부모님들의 따뜻한 마음을 ‘좋아요’ 클릭으로 알아차리게 된다.

‘OO신문사 기자님은 이런 아이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였을까?’ 우리 반 아이들이 모두 나온 사진을 메인 장면으로 보도해주셨다. 가히, 이 사진은 정말 개학식 날 선생님과 학생들의 첫 만남을 고이 어루만져주는 손길임이 틀림없었다. 마음으로 찍지 않고는 이런 사진이 나올 수가 없어. 나는 사진 아래 적힌 깨알 같은 기자분의 이름 석 자를 발견하고, 언젠가 한 번 만나면 따뜻한 차 한잔 대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른 스크랩하여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역시, 아이들은 좋아했다. “야아! 우리 반 모두 나왔다!”

시업식 당일 오후 4시경, 울산시교육청 초등교육과 팀장님이 전화를 주셨다. “오늘, 고생 많았습니다.” 이 인사말에 나는 ‘바쁨’을 잠시 내려놓고 ‘쉼’을 느꼈다. 생활 방역에 원격수업 콘텐츠 제작과 줌 화상 수업으로 고군분투하던 우리 동료 교사들이 떠올랐다. 장학사와 교사의 ’사’자가 다르다고 하는데, 자신이 수행하는 업무를 ‘業’이 아닌 사람들의 의미 있는 만남으로 따뜻함을 전해준 팀장님을 비롯하여 시업식 날 우리 학교를 방문해 주신 교육청, 방송국, 신문사 관계자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일상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기적이었다. 특별한 의미를 가득 안겨준 올해 시업식 날의 추억을 가슴 한쪽에 고이 간직하며,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아이들과 하루를 맞이한다.

안현정 울산 중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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