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지명'과 민긍기 선생
'울산의 지명'과 민긍기 선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3.07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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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대 명예교수(국어국문학 전공)이자 국가지명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민긍기(68) 선생을 알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울산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처음 접종하던 날(2월 26일 오전) 남구보건소에 들른 것이 계기가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접종 현장’에는 취재진 외에 저명인사 몇 분도 눈에 띄었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았다. 평소 면식이 있는 박병석 시의회 의장의 수행비서였다. 그는 의장의 뜻이라며 동승을 청했다. 전할 게 있다고도 했다. 접견실에서 받아쥔 것은 한 권의 두툼한 책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책의 집필에 쓰인 글자 수는 5천 장이나 됐고, 페이지 수만 690쪽을 헤아렸다.

‘도서출판 누리’에서 펴낸 이 묵직한 저서의 이름은 <울산의 지명>이었고, 저자의 이름은 ‘閔肯基’였다. 고마우면서도 궁금증이 생겼다. 이 저서가 어떻게 박 의장의 손을 거쳐 나한테까지 들어오게 됐을까? 지은이는 울산과 어떤 인연이 있을까? 수소문 끝에 전화번호를 알게 됐고,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다리를 놓아준 이는 박 의장이 현대차 노조 위원장이던 시절 인연이 깊다는 모 국회의원의 수석보좌관 조 아무개 씨였다.

민 선생은 이날 오전 내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조 보좌관은 민 선생이 원래 그런 분이며, 그래서 얻은 별명이 ‘공중전화’라고도 했다. 통화는 단념하고, 기대도 접기로 했다. 그러던 중 이날 오후 5시 20분쯤 전화가 걸려왔다. 민 선생이었고, 6시간 48분 만의 답신이었다. 둘 사이의 통화는 자그마치 25분 49초를 끌었다. 그의 이실직고는 흥미를 배가시켰다.

알고 보니 민 선생은 ‘서울 영등포갑’ 출신 김영주 국회의원(66)의 부군이었고, 아내 자랑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학생(서울 무학여고) 때는 70년대 국가대표였던 ‘전설의 가드’ 강현숙 선수와 단짝을 이루며 한창 잘 나가던 농구선수였다고 했다. 소개팅으로 만났고, 열애 끝에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얘기도 싫지는 않았다.

어떤 사이일까? 호기심이 인터넷 바다로 끌어들였다. ‘부부의 출판기념회’ 소식이 시야에 잡혔다. ‘2013년 9월 9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2층 대회의실.’ 다음은 초대의 글 일부다. “영등포갑 김영주 국회의원과 창원대 민긍기 교수는 부부입니다. 두 분이 “영등포의 정치와 문화 이야기” 책을 냈습니다. 정치 이야기는 김영주 의원이, 문화 이야기는 민긍기 교수가…”

몇 줄을 더 보탠다. “창원대 국문학과 교수인 남편은 고전을 전공했다. 그동안 자신의 전공을 살려 <역주 창원부읍지>를 집필했고, 경상남도 문화재위원을 맡아 관련 분야 활동도 해왔다. 그런 남편에게 영등포의 뿌리 연구도 좀 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래서 나온 저서가 <영등포의 역사와 지명 이야기>였다는 것. 이밖에도 그는 <창원도호부권역 지명연구>, <김해의 지명>, <역주 김해읍지>, <역주 시흥현읍지>도 펴낸 바 있다.

민 선생은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여기서 문학박사 학위도 취득한 연세인이다. 그런 그가 <울산의 지명>을 펴낸 까닭은? 단순한 학문적 열정 때문에? 아니면 ‘창원대 재직 38년’이란 이력이? 책 뒤표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울산호적대장>과 <언양호적대장>을 만나게 된 것은 나에게 크나큰 행운이었다. (이 두 권은) 그 자체로도 엄청난 문화재이지만… ‘지명이 문화재’라는 평소의 내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자료였다.”

민 선생이 7일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김보은 기자가 쓴 <울산의 지명>에 관한 기사를 오늘에야 읽었습니다.… 코로나가 좀 풀리면 울산에 한 번 내려가겠습니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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