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블록버스터를 찾아서-영화 ‘몬스터 헌터’
잃어버린 블록버스터를 찾아서-영화 ‘몬스터 헌터’
  • 이상길
  • 승인 2021.03.04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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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몬스터 헌터’ 한 장면.

1년 넘게 이어진 바이러스와의 전쟁으로 세상엔 자취를 감춰버린 것들이 제법 있다. 사람과 사람 간의 따뜻한 허그(Hug)가 사라졌고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 각종 운동경기나 공연, 행사 등도 사라졌는데 나 같은 영화광에겐 특히 상영관에서 ‘블록버스터’가 사라져 버린 게 가장 뼈아프다. 이미 제작이 완료된 블록버스터라도 투자 대비 발생할 수익을 걱정해 개봉을 연기하기 급급했으니 작년 한해 내가 영화관에서 본 영화는 열 손가락으로 세어도 충분히 남을 듯하다. 그랬다. 개인적으로는 바이러스보다 딱히 상영관에서 큰 스크린으로 볼 만한 작품이 거의 없어 극장을 찾지 않았었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지난해 극장가는 철 지난 명작들의 재상영이 주를 이뤘고, 그렇지 않으면 독립영화 등 드라마 위주의 잔잔하고 심오한 신작들이 대세였다.

물론 그런 작품들도 좋지만 사람이 어떻게 매일 공부만 하면서 살 수 있나. 때론 시끌벅적한 술자리나 모임도 필요한 법인데 극장가에선 블록버스터 무비가 그런 존재가 아닐까 싶다. 짜더러 심각하게 볼 필요 없이 가볍게 즐기며 눈 호강을 할 수 있는 블록버스터 무비는 나 같은 영화광들에겐 어려운 영화도 볼 수 있도록 만드는 휴식 같은 존재다.

해서 설 대목을 앞두고도 여전히 썰렁했던 극장가에서 폴 앤더슨 감독의 <몬스터 헌터>는 개봉 전부터 괜히 들뜨게 만들었다. 얼마 만에 거대한 스크린으로 만나는 블록버스터인가! 그것도 <레지던트 이블>시리즈를 만든 폴 앤더슨 감독이 아니던가. 이름 있는 블록버스터 감독들이 바이러스가 겁이 나 모조리 극장 개봉을 미루거나 넷플릭스 개봉으로 돌아선 마당에 홀로 바이러스와 정면승부를 벌이는 것 같아 멋져 보이기까지 했다. 공교롭게도 영화 역시 그런 내용이었는데 영화 속에서 온갖 괴수들에 맞서 싸우는 두 주인공들처럼 감독마저 전사처럼 느껴졌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꽤 오랜 만에 큰 스크린으로 만나서 그런지 비싼 CG(컴퓨터 그래픽)로 범벅이 된 영화 속 괴물들은 심지어 귀엽기까지 하더라. 전부 다 이 몹쓸 놈의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고 뭐겠는가. 어찌됐든 반가워서 신이 나는데도 몰입이 되지 않는 이상한 현상을 겪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건강도 건강이지만 바이러스에 의해 가장 심하게 공격을 받고 있는 건 헌법상에 보장된 우리들의 기본권(基本權)일지도 모른다’고.

최근 들어 건강권도 기본적인 인권(人權)의 하나로 인정하는 추세지만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헌법상에 보장된 자유권과 행복추구권까지 공격받고 있는 건 명명백백한 사실이다. 쉽게 말해 내가 자유롭게 활동하거나 장사 또는 사업을 통해 돈을 벌면서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건강권 수호를 위해 심하게 제한되고 있는 셈. 이걸 법학에서는 ‘기본권의 충돌’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걸 해결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익형량(利益衡量)의 이론이다. 그러니까 서로 충돌하는 기본권들의 무게를 잰 뒤 더 중요한 기본권을 우선하는 방법이다. 쉽게 말해 이익을 비교해 더 큰 쪽을 우선시하는 건데 과연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의 공격 속에서 건강권이 자유권이나 행복추구권보다 훨씬 더 무거운 걸까?

건강권이 지켜야 할 최고의 가치는 단연 생명수호다. 그런데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코로나19의 국내 치사율은 현재 1.7% 정도다. 2021년 3월 3일 현재까지 확진자수가 9만1천240명인 가운데 1천619명이 사망한 것. 국내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지난해 2월 20일 발생했으니 하루 평균 거의 4.2명 정도가 안타깝지만 세상을 뜬 셈이다. 그래도 주목해야 할 건 사망자 대부분이 기저질환 있는 고령의 환자들이라는 것. 관련해 하루 평균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수가 10명 정도라고 한다.

이제 전 세계 현황을 살펴보자. 역시나 2021년 3일 3일 현재까지 전 세계 확진자수는 1억1천529만6천631명으로 이 가운데 256만596명이 사망해 치사율은 2.2% 정도 된다. 국내 치사율과 큰 차이가 없다는 건 그 나라의 의료 수준과는 큰 관계가 없다는 뜻이 아닐까. 실제로 선진국들만 난리지 후진국에서 코로나19로 떼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은 잘 없다. 아무튼 전 세계 하루 평균 사망자수는 대략 6천700명 정도. 헌데 코로나19 이전에는 하루 평균 3만4천여명의 아이들이 배고픔으로 죽어나갔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는 이렇게 전 지구적으로 자유권과 행복추구권이 제한되진 않았다. 다들 어떻게 쟁취해낸 권리들인데.

꼴에 법학을 전공했다고 학교 다닐 때 배웠던 헌법 이론을 적용시켜 봤는데 솔직히 공감은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헌법에 규정된 청구인 조건을 만족시킨 누군가가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자신의 기본권을 침해받았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한다면 9명의 헌법재판관들은 판단을 내려야 하고, 그땐 아마 ‘기본권의 충돌’이 쟁점이 될 거라 감히 장담한다. 아님 말구. 그건 그렇고 <어벤져스> 후속편은 언제쯤 볼 수 있는 거냐구! 타노스(어벤져스의 악당)같은 바이러스 같으니라구. 2021년 2월10일 개봉. 러닝타임 103분. 취재1부 이상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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