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콕 생활이 많아지면서 언제부턴가 나무와 하늘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하루를 아주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피하고 싶어 한다. 왜 이런 시련이 찾아왔는지에 대한 성찰보다는, 당장 닥친 시련 때문에 힘겨워하고 스스로 무너지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먼 훗날이 되면 “그날의 시련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라고 말한다. 시련이 닥쳤을 때는 그 의미를 모르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야 시련이 준 참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먼 훗날이 되어서야 시련의 의미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이 시련이 내 삶의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의 눈을 떠야 한다. 먼 훗날이 아니라 지금 당장.
돌아보니, 삶 자체가 하나의 레시피다. 인생도 요리처럼 한 번에 한 가지씩 해나가면 된다. “이번 일을 잘 처리해야 하는데, 이거 하다가 망하면 어떡하지?”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냥 자연스러운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하나둘씩 새로운 경험을 더해가며 해결해 나가면 된다. 때로는 내 의지와 상관없는 삶이 펼쳐지기 마련인데, 이럴 때일수록 믿음을 버려선 안 된다.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내 앞에 나타나리란 믿음이 중요하다. 이렇게 됐을 때 깜짝 놀랄만한 인생이 탄생하게 된다.
과거엔 사소한 일로도 상처를 받았다. 아는 사람이 지나치면서 인사하지 않을 수도 있고 아주 친하다고 여겼던 사람이 뒷담화를 날릴 수도 있다. 때론 날 싫어할 수도, 내가 최선을 다했음을 못 알아줄 수도, 게다가 오히려 비웃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애(自己愛)적인 존재이기에. 하지만 거기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으로 인해 조금 더 인간다워질 수 있다면, 아픈 상처는 치유되고 사랑도 굳건해지지 않을까. 힘들면 잠시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자. 고민해도 달라질 게 없다면 딱 오늘까지만 고민하고 내일은 내일의 삶을 살자.
사람에게는 누구나 정해진 인연의 시간이 있다. 아무리 끊으려 해도 이어지고, 아무리 이어가려 애를 써도 이내 끊어진다. 그렇기에 인연의 시간을 무시하고 억지로 이어가려 한다면 그 순간부터 인연은 악연이 되기 십상이다. 인연과 악연을 결정짓는 건 우리가 선택하는 타이밍이다. 그래서 항상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행복이 오고 위로도 받고 해답을 찾게 되는 것은 아닌지. 종종 인생은 전혀 기대하지 않는 곳에서 풀리는 것 같다. 요즘도 좋은 인연들이 속속 곁에 나타나니 모든 게 감사할 따름이다.
어두운 새벽 뒤에 밝은 아침이 다가오듯, 추운 겨울을 이겨내야 봄이 찾아오듯, 전 세계인을 혼돈 속에 빠뜨린 코로나 또한 지나가리라. 좇아가지 않아도 가는 게 시간이고, 밀어내지 않아도 만나는 게 세월 아니던가. 더디게 간다고 혼낼 사람 없으니 오늘도 천천히 오손도손 산책하듯 걷고 싶다. 늘 떨리는 마음으로 대하는 새벽 운동길에서, 계절의 변화를 바라보며 구름 흐르는 사연도 귀담아들으면서 너그럽게 오목조목 걷고 싶다. 많은 것, 너무 큰 것에 욕심내지 말고 내게 주어진 하루만큼만 소중히 여기고, 이쁘게 채워가는 오늘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 봄의 길목에서, 푸르름으로 늘 촉촉한 마음이기를 기도한다.
이동구 본보 독자위원장·RUPI사업단장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