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폭력은 없다
사소한 폭력은 없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2.2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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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전, <빅 리틀 라이즈, BIG LITTLE LIES>라는 미국 드라마를 봤다. 원작인 소설을 텔레비전 드라마로 만든 작품이다. 제목답게 드라마는 아이러니한 사건의 연속이다. 또한, 등장인물과 캐릭터가 다양하다. 해안가 마을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과 사고, 갈등이 주를 이룬다. 드라마 속 갈등에 불을 붙이는 것은 ‘폭력’이다. 폭력은 정도에 따라, 혹은 상대에 따라 다양한 민낯을 드러내기 마련, 드라마 속 인물은 저마다 폭력에 대한 기억으로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하고 저 스스로 갈등의 소용돌이에 갇히기도 한다. 가해자이든 피해자이든 어떤 누구도 결코 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많다.

처음부터 이 드라마를 보면서 폭력을 떠올린 것은 아니다. 회를 거듭함에 따라 자연스레 다가온 낱말이 ‘폭력’이었다. 등장인물 곳곳에 도사린 폭력은 죽음의 진실을 덮고, 내면의 폭력을 드러내며 관계를 끊기도 하고 그 크기를 점점 키우면서 여러 사람의 삶을 바꾼다. 폭력을 당한 여러 인물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혹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실질적으로 알려주고 일러주는 이는 정신과 상담의사나 변호사, 혹은 친구들이지만 결국 해결의 실마리를 선택하는 것은 당사자의 몫이다.

글을 읽을 때도 그렇고 드라마를 볼 때도 그렇고 ‘주제’, 즉 글쓴이가 염두에 둔 주된 생각이 무엇인지 살핀다. 쉽게 드러나기도 하지만 끝까지 읽거나 봐야 아는 경우도 생긴다. 거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혹은 대단히 위대한 인물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주제가 분명한 이야기는 역시 큰 울림을 준다. 드라마에도 나타나듯 사소한 폭력은 없다.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한다. 또한, 폭력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지위를 이용한 폭력에서 물리적 폭력까지 다양하다. 시간이 흘러도 피해자가 존재하는 한 폭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 형태로 우리 곁에 머문다.

요즘 학교폭력 사건으로 시끄럽다. 운동선수에서 시작한 폭력 사건은 점점 여러 분야로 번지는 중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는 출연자의 과거에서도 나오고 유명 연예인의 과거에서도 어김없이 나온다. 연이어 터지는 학교폭력 사건은 아직도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민주화가 덜 되었다는 반증이다. 4월에 치르는 보궐 선거 역시 폭력, 그것도 성폭력의 결과라 유권자로서 더욱 참담한 심정이다. 폭력이 드러나면 당사자는 대개 부인하거나 사과한다. 사과의 방법과 절차는 또 다른 가해가 되어 피해자를 괴롭힌다. 일회성 사과와 회피성 대처는 아문 상처를 후벼 파기도 한다. 때로는 법적 절차에 폭력 사건을 맡기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 간에 일어난 폭력의 실체를 법적으로 밝히는 일은 지난하고 어려운 일이다. 상식적으로 자명한 폭력 사건도 때로 법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어이없는 판결을 받기도 하니 말이다. 당사자만 아픈 상처로 남는 폭력은 더는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경계해야 할 것이 공권력의 폭력이다. 개인과 공공의 영역을 보호하는 공권력. 그 공권력이 폭력화되었을 때 인권은 말할 것도 없고 수많은 이들이 다친다. 최후까지 미뤄져야 마땅한 것이 공권력의 폭력이라 생각한다.

사람 사이에 다툼이 없을 수 없다. 그 싸움의 끝이 폭력으로만 마무리된다면 점점 더 살기 힘든 세상이 될 것이다. 다툼을 이해로, 싸움을 설득으로 마무리하는 일은 너나 할 것 없이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할 때 생길 것이다. 서로의 간격을 넓혀야 건강하게 사는 세상, 폭력과 거리두기는 늘 행해야 할 삶의 지침은 아닐는지. 수년, 수십 년이 지나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이들이 없기를, 특히 ‘학폭’이라는 낱말 자체가 없어지는 날을 꿈꾼다.

박기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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