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아가고 싶은 선생님
닮아가고 싶은 선생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2.22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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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아가고 싶은 선생님을 알게 된 건, 서른이 되던 1999년이다. 큰딸에게 동화책을 좀 더 재미있게 읽어주고 싶어서 동화구연을 배우게 되었는데, 유난히 맑고 반짝반짝 빛나는 까만 눈동자를 지닌 분이었다. 여러 가지 목소리로 실감 나게 동화를 들려주시는 것이 참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그 모습을 색깔로 표현하면 ‘싱그러운 율마 잎사귀 같다’고 할까. 목소리만 들어도 금방 에너지가 충전되는 듯 밝고 긍정적인 기운을 주는 분이었다. 강의를 듣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선생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마냥 기쁘고 설레 둘째 아이를 가져 입덧이 심할 때도 결석하지 않았다.

한 번은 선생님과 어느 기관에 갔다가 청소하시는 미화원 아주머니와 마주치게 되었다. 보통은 ‘수고하시라’는 뜻으로 눈인사 정도로 그치지만, 선생님은 두 손을 가지런히 배꼽 위에 올리고 인사하셨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아! 인사는 저렇게 진심을 다해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쇠붙이가 자석에 끌리듯 그 마음 향기에 점점 빠져들었다.

외동딸로 태어나 언니가 없어 늘 아쉬웠던 나에게 선생님은 친언니 같은 존재였다. 남편과 사소한 갈등이 생기거나 아이들을 키우면서 힘들고 고민이 생길 때마다 마음 편히 상담할 수 있었고, 힘든 시기도 지혜로운 선생님 덕분에 잘 넘길 수 있었다.

언젠가 내가 바위에서 미끄러져 일주일간 입원했을 때도 천사 같은 선생님은 자주 찾아와 기도해 주셨다. 주사를 맞을 때마다 살을 도려내듯 아팠지만 그 정성으로 더 빨리 나을 수 있었다. 또 평생 잊지 못할 일로, 친정엄마가 양산에 있는 병원에서 수술 후 입원 중이었는데, 병문안을 와서 발까지 어루만지며 쾌유를 빌어주신 일도 있었다. 그때 받은 감동의 물결은 아직도 친정엄마와 내 가슴속에 일렁이고 있다.

그런데 울산역이 생길 즈음, 부군의 직장 문제로 서울로 이사를 가시게 되었다. 좋은 일이니 축하해 드려야 마땅한데, 헤어져야 한다는 아쉬움에 가슴이 아려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결혼해서 울산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친정도 시댁도 먼 거리에 있었고, 아는 사람도 몇 분 없던 터에 선생님을 알게 된 건 큰 축복이었다. 온돌방 같은 따스한 정을 내주시던 선생님을 많이 의지하고 좋아했었다.

그래도 부군이 퇴직하면 울산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셨고, 지금은 오리들이 노니는 평화로운 동천강을 자주 거닐며 그 언약을 지키면서 살고 계신다. 그 사이 사위도 생겼고 토끼 같은 손자도 태어나 얼굴에 함박웃음이 떠날 날이 없다. 통화할 때면 손자 커가는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시는데, 행복 바이러스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몇 해 전 색동회 월례회 날 후배 한 명이 수줍은 미소로 다가오더니 “OOO 이사님이시죠?” 하고 물어 왔다. 순간 착각한 후배가 은근히 고맙고, 가슴이 마구 뛰었다. 내 인생의 멘토인 선생님을 20년 넘게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다니며 그분의 모습을 닮아가려고 노력 중인데, 짧은 순간이지만 이미지가 비슷하게 보였다니 기뻐서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어머나! 제가 OOO 이사님을 닮았다면 큰 영광이죠. 저는 13기 천애란이랍니다.”

그 사람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이 읽은 책, 만나는 사람, 그리고 가본 곳’이라고 괴테는 말했다. 29살까지 친정엄마가 나를 키워 주셨다면 그 이후로는 엄마보다 더 자주 만난 선생님이 내 마음의 키를 시나브로 자라게 해 주셨다. 참말로 닮아가고 싶은 선생님이다.

천애란 사단법인 색동회 울산지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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