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와 점수
평가와 점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2.1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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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월이다. 학교에서 2월은 다음 학년도를 준비하는 달이다. 업무 분장이 이루어지고 담당 학년이 결정된다. 어느 학년 수업을 할지 결정이 되면 어떻게 수업을 할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생각보다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내 수업의 목적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교과 내용을 잘 이해시킬 수 있는지 등을 연구한다. 하지만 그중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가이다. 평가를 통해 앞의 고민들을 제대로 반영하여 수업이 이루어졌는지, 학생들은 교육 목표에 도달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평가 내용을 피드백하여 수업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

이처럼 평가는 무척 중요하다. 심지어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수업 방법이 결정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객관식 5지 선다형으로 출제된다. 이 경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문제풀이 능력이 향상되어야 한다. 당연히 수업은 문제를 잘 풀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학교에서의 평가는 지필평가와 수행평가로 구분된다. 지필평가는 흔히 학창 시절에 경험했던 객관식 5지 선다형 시험문제이다. 학생들은 교사가 시험을 통해 묻는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된 5개의 보기 중에서 선택한다. 지필평가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100점 만점으로 출제되고 결과가 점수로 표시된다. 수행평가는 교과 담당 교사가 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과제 수행 과정 및 결과를 직접 관찰하고, 그 관찰 결과를 전문적으로 판단하는 평가 방법이다. 예를 들면 수업 시간에 이루어지는 실험이나 실습, 관찰, 토론, 프로젝트가 있다. 학생의 성취를 양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수행평가도 중학교 1학년 자유학기제를 제외하고는 객관적인 점수로 환산되어 표시된다. 문제는 학생들의 성적표에 찍힌 교과의 점수가 학생들이 그 교과의 목표에 얼마만큼 도달했는지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가이다. 그리고 그것이 과연 얼마만큼 교육적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숫자가 제일 중요하다. 각 평가에는 전체 성적에 반영하는 비율이 정해져 있다. 이 비율이 높은 평가일수록 학생들의 성적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수행 평가는 대체로 학기 말에 점수로 환산되지만, 지필고사는 시험이 끝난 즉시 학생들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점수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는 지필평가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다. 가끔 지필고사보다 수행평가의 비중이 더 높은 경우에도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이루어지는 수행평가보다 지필고사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 웃지 못할 장면이 벌어지기도 한다.

지금 학생들이 배우는 2015 교육과정은 역량 중심 교육과정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단순하게 지식을 암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실제 상황에 적합한 지식을 창출하는 능력이 더 중요한 것이다. 즉 무엇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할 수 있는지와 같은 방법적 지식이 더욱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학생들이 지식을 소유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접하는 상황이나 의미 있는 순간에 지식을 활용하고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역량 중심 교육과정이다.

학생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선다형 문제를 몇 문제나 맞혔는지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학생의 성장은 각자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알 수 있다. 교육을 통해 자신의 목표가 올바른지 검토하고 이를 달성하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구체적인 삶에서 마주하는 문제 상황에서 더 나은 판단과 선택을 하고 실천을 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교육은 철길 모델보다는 항해 모델에 가깝다. 철길은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한 가지 길밖에 없다. 그 길을 가는 기차들은 출발점부터 목표지점까지 일직선상으로 비교된다. 단 하나의 목표지점과 얼마나 가까운지가 객관적으로 비교되는 것이다. 학생들이 추구하는 각자의 목표를 제각각의 속도로 추구해가는 것이다. 아이들은 비틀거리지만 목표를 향해 조금씩 전진해간다. 수업과 평가는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계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는 것이다.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우지 않고 어떻게 어느 정도로 잘하고 있는가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떻게 피드백을 해주어야 할까? 100점짜리 학생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성장을 촉진하는 평가를 하기 위해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설문지를 읽으며 반성하지만 교직 생활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답을 찾지는 못했다. 이 문제에 대한 하나의 완벽한 답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교사의 수업에 대한 철학과 연구,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조금씩 개선해 나가는 과정이 바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정창규 고헌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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