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蔚州)’의 별호 ‘학성(鶴城)’의 정체성
‘울주(蔚州)’의 별호 ‘학성(鶴城)’의 정체성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2.08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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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서 관찰되는 조류의 생태를 안내하다 보면 과거 울산의 지형환경을 곁들여 설명해야 할 때가 있다. 그중의 하나가 ‘학성(鶴城)’이다. 학성은 학(鶴)과 관계가 있다. 학성이 학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알고 보면 상고(上古)시대 울산의 자연환경을 이해할 수가 있어 관심 있는 분은 경청할 필요가 있다.

먼저 ‘울주(蔚州)’에의 접근이다. 홍영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는 〈고려 시대 울주의 행정영역과 역사고고 환경〉에서 “고려 태조는 울산의 토착 세력인 박윤웅의 공적을 기려 인근의 우풍현 동진현을 하곡현에 합하여 흥례부(興禮府)로 승격시키면서 ‘울주’라 불렀다”고 했다. 또한 『고려사』 병지(兵志)에는 “1011년(현종 2년) 청하·흥해·영일·울주·장기에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사』 에서 ‘울주’라는 지명이 나오는 것은 현종 2년의 이 기사가 가장 빠르다. “ 『고려사』 지리지에는 ‘고려초(高麗初)’로만 기록되어 있지만 ‘울주’라는 지명은 940년(태조 23년)∼1011년(현종 2년) 사이 어느 시점에 생겨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울주라는 지명이 고려 시대에 생겨났음을 알려주는 기록이다. 울주는 그동안 고려 성종(成宗, 재위: 981~997년) 때 별호로 ‘학성(鶴城)’이라 부른 것으로 알고 있지만 홍영의는 그 폭을 좀 더 넓혔다. 울주의 정체성은 필자가 ‘위회지상(蔚?之狀)’으로 풀이한 바 있어 생략한다(울산제일일보, 2020.11.30.).

‘별호(別號)’의 사전적 의미는 ‘본이름 외에 따로 지어 부르는 이름’이다. 지명에는 별호가 있고 사람에게는 별명이 있다. ‘별명’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생김새나 버릇, 성격 따위의 특징을 가지고 남들이 본명 대신에 지어 부르는 이름’이다. 따라서 별호나 별명은 특징을 도드라지게 하는, 중심이 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학성이 울주의 별호임을 앞에서 밝혔다. 그렇다면 학성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바탕은 울주이지만, 울주의 바탕은 무엇이고 울주의 ‘울(蔚)’은 어떤 의미일까? 필자는 조류생태학 연구를 통해 일관되게 지형환경적 측면에서 그 바탕이 습지임을 강조해 왔다. ‘우시산국’ 바탕 설과 차이가 있는 ‘위회지상(蔚?之狀)’ 바탕 설을 제시해온 것이다. 그렇다면, 그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가 있는가 하고 반문할 수 있다.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이 발간한 ‘동해안 하구습지 안내서’를 마중물로 소개한다.

2021년 1월 8일 국립생태원은 동해안 하구습지 77곳의 생태정보를 다룬 ‘동해안 하구습지 안내서’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안내서에는 하구습지별 유형, 면적, 동식물 정보, 사진 등 다양한 정보가 수록돼 있다. 안내서를 통해 하구습지의 이해와 보호 의식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하구습지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형성되는 것으로 환경 변화가 다양하고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여 보전 가치가 높은 지역이다.

2015년부터 국립생태원은 국내 하구습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발간된 안내서는 그간의 조사 결과와 국내 하구습지를 알리기 위해 편찬되었다고 했다. ‘동해안 하구습지’는 부산광역시 동래구부터 강원도 고성군까지 동해안에 있는 77곳의 하구습지를 가리킨다. 동해안 하구습지 77곳의 총수역은 247.4㎢이다. 이 가운데 가장 넓은 수역의 하구습지는 울산광역시 태화강 하구습지로 나타났다. 안내서를 통해 울산이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태화강 하구습지가 35㎢로 가장 넓은 수역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태화강 하구습지의 아주 오랜 옛날과 현재의 환경을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직도 동해안 하구습지 가운데 가장 넓은 수역이 태화강 하구습지라는 점에 필자는 주목한다. 이는 울산의 별호인 ‘학성’이 자연지형환경의 습지(濕地)이자 순지(蓴池)였다는 주장이 과학적 자료로 힘을 받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순지’는 미나리 같은 습지식물이 서식하는 지형환경을 말한다.) 따라서 거지벌(천전리, 조일리), 구량벌(차리, 삼정리), 굴아화(다운동, 중산동), 우화(于火), 화성(火城) 등 구릉과 평탄한 충적지를 찾은 학의 무리를 통해 ‘학성’이라는 이름을 지어 그 특징을 부각시켰다고 볼 수 있다.

포은의 유배지 요도(蓼島), KTX가 들어선 도호(都湖), 해연(蟹淵)의 삼호(三湖)와 같은 지명에서 과거의 울산이 넓은 순지였음을 알 수 있다. 학의 안정된 서식지는 습지와 순지이다. 학성은 ‘학성산의 형세가 학을 닮았다’는 풍수지리설적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순지를 찾아 날았던 학의 무리가 바탕이 된 지형환경적 토론의 과제일 뿐이다. 학성의 정체성 연구는 이미 오래전에 울산 향토사학계에서 다루었어야 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울산연구원 부설 ‘울산학연구센터’에 기대를 건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조류생태학박사·철새홍보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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