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없어도 괜찮아, 매 순간을 소중히!-영화 ‘소울’
꿈이 없어도 괜찮아, 매 순간을 소중히!-영화 ‘소울’
  • 이상길
  • 승인 2021.02.04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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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울’의 한 장면.
영화 ‘소울’의 한 장면.

 

꿈이나 목표가 무지하게 중요했던 시절이 있었다. 대략 중학교를 다니던 때부터 20대 중반까지였다. 짐작되시겠지만 그 시절 꿈이나 목표라는 건 늘 1등이나 성공, 혹은 출세라는 단어들로 점철됐었다.

하긴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중학생이 되니 월말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면 늘 전교등수가 교실 뒷벽 작은 벽보판에 붙었었는데 달랑 종이 한 장이었지만 그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그 시절의 행복이란 게 주로 그 종이 한 장에 그려진 숫자에 따라 좌우됐으니까. 당연히 고등학교 땐 더했다. 인생의 성패가 어느 대학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정해진다고 일찍부터 세뇌를 받았고, 그 가르침을 철썩 같이 믿었던 탓에 죽을 똥 살 똥 공부에 매진해 나름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더랬다. 합격증을 받기 위해 버스를 타고 앞으로 다니게 될 학교로 향할 때의 그 행복감이란. 그 험한 입시지옥을 견뎌냈던 만큼 내 인생은 이제 좋은 일만 남았을 거라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실제로 그 후로 1,2년은 좋았다.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며 사는 것 같이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제대를 하고 나니 중학교 때부터 강요를 받았던 1등이나 성공, 출세와의 진검승부가 기다리고 있었고 난 보기 좋게 패하고 말았다. 고시를 접고 나니 이번 생은 망했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 왜? 꿈이나 목표가 사라졌으니까. 그 기분이란 마치 가슴 속 ‘불꽃’이 꺼져버린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게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대신 ‘자유’를 얻었기 때문. 원래 꿈이나 목표를 갖는다는 건 스스로를 구속하는 일이기도 하다. 또 불꽃이 사라진 가슴으로 사는 것도 익숙해지니 나름 괜찮더라. 아무튼 이후로 휩쓸리듯 사회로 나가 직장생활을 했었고, 적성에 맞지 않아 때려 친 뒤 돈에 욕심이 생겨 장사에 뛰어들었다가 쫄딱 말아먹었다. 결국 만신창이가 되어서 붙들리듯 다시 고향으로 내려오고 말았더랬다. 대략 2005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런데 그때부터였다. 내게 이상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한 게.

우선은 고향 울산에 바다가 있다는 걸 처음 인식하게 됐다. 물론 알고는 있었지만 고향을 떠나기 전에는 전혀 찾질 않았던 것. 하지만 다시 내려와서는 뻔질나게 가게 됐는데 요즘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래 맞다. 바다라고 썼지만 ‘여유’라 읽으면 된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따뜻한 봄 햇살이 내리쬐던 4월의 어느 날이었다. 버스를 타고 어디를 가고 있었는데 때마침 녹음이 짙은 구간을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멍하니 바깥 풍경을 바라보다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행복해지는 것이었다. 그 때 그 행복감이란 ‘..해서 행복하다’가 아니었다. 그냥 행복했다. 그랬더니 바깥 풍경 속 나무도, 풀도, 햇살도, 심지어 버스 안 풍경까지 다 예뻐 보였다. 더 놀라운 건 그 행복감이란 게 오래 전 대학 합격증을 받으러 갈 때 느꼈던 그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는 것. 아마도 그때 깨달았던 거 같다. 행복도 그냥 ‘기분’이라는 걸.

부끄러운 개인사지만 픽사의 새 애니메이션 영화인 <소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꼭 필요했던 이야기임을 미리 밝혀둔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꿈만을 좇아 살았던 주인공 조(제이미 폭스)가 화창한 가을 햇살 사이로 떨어지는 나뭇잎에 깨달음을 얻어 행복을 느끼는 장면은 나의 그것과 완전 판박이였다. 마침내 조는 이렇게 말한다. “이젠 매 순간순간을 즐길 거야.”

나름 거창하게 썼지만 사실 나의 깨달음은 나이가 들면 누구든 알게 되는 삶의 진리 같은 거다. 굳이 말하자면 나이를 먹는다는 건 죽음과 점점 더 가까워지는 거고, 성공이나 출세처럼 어려운 행복보다는 쉬운 행복을 자주 찾으려는 일종의 본능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뭐. 그랬거나 말거나 지금은 고인이 된 가수 신해철도 생전에 한 강의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일단 인생의 가장 깊숙한 비밀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성공은 운입니다. 다들 인간이 태어났을 때 저마다 소명을 갖고 태어난다잖아?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쓰임새 있고 뭐 이런 거. 또 거기에 부응하기 위해 자기 안의 무언 가를 끌어내야 한다고 애를 쓰죠. 하지만 그런 거 없어! 태어난 게 목적이야. 목적을 다 했어! 그럼 지금 살고 있는 우리 시간은 뭐나고? 신(神)이 우릴 예뻐해서, 우리한테 윙크를 하면서 보내 준 ‘보너스 게임’이야. 니 맘대로 하고 싶은 걸 하라는.” 참, <소울>은 귀엽게 생긴 영혼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 사람이 태어나기까지가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를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2021년 1월20일 개봉. 러닝타임 107분.

< 이상길 취재1부 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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