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컬렉션 미술관으로 꾸밀 겁니다”
“세계 최고의 컬렉션 미술관으로 꾸밀 겁니다”
  • 김정주
  • 승인 2021.02.02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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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울산시립미술관 추진단장

 

시카고미술대학원 거쳐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4년

그의 자기소개서는 A4용지로 넉 장이 넘는다. ‘경력’ 난도 그렇지만 ‘전시 및 프로젝트 기획’ 난은 더하다. ‘국제 전시기획 20여 회를 비롯해 전시기획만 120여 회’라고 스스로 소개할 정도로 이 방면에서는 ‘대가’ 급으로 손꼽힌다.

서진석 울산시립미술관 추진단장(53). 경력에 대한 선입견과는 달리 나이는 아직 젊고 용모는 동안이다. 때도 묻은 것 같지 않다. 그런 그를 송철호 울산시장이 영입했다. 초대 울산시립미술관장으로 적격이란 판단이 작용했다. 지난해 7월 1일 임기를 시작했다.

경기도 경원대(현 가천대) 응용미술과를 나온(1900년 졸업) 그는 미국 시카고 미술대학원(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섬유와 조각을 전공하면서 석사학위에 도전, 거뜬히 MFA 학위를 거머쥔다(1994년). 그 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조각·조소·설치 분야의 작품활동을 하던 그에게 1999년은 중대한 고빗길로 기록된다. ‘대안공간 루프’를 설립, 2015년까지 대표직을 맡아 국내 신진작가들에게 세계를 보는 안목을 길러준 것. 여기서 눈도장을 받은 그는 그 뒤 4년간(2015∼2019)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관장직을 맡으며 내공의 깊이를 더해 나간다.

울산은 어떤 그림도 그릴 수 있는 백지 같아

그러다가 눈길을 돌린 곳이 올해 말 설립이 예정된 울산시립미술관. 그 나름의 잣대는 분명했다. 서 단장의 눈에 비친 울산시립미술관은 예술혼을 꿈틀거리게 하는 ‘한 장의 백지’와도 같았다. “국립미술관을 비롯해 기존의 다른 미술관들은 있는 것을 바꾸기도 힘든 게 현실입니다. 전시기획자로서 또 다른 기회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마음먹었습니다. 백지상태에서 출발하면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겠다고….”

‘흰색 도화지 위라야 모든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이런 일념으로 그는 울산시의 공모에 응했고, 심사위원들은 그런 그에게 낙점의 동그라미로 화답했다. ‘미래의 울산시립미술관’에 대한 블루칩 같은 청사진이 그들의 기대감을 채워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서진석 단장의 말 속에는 ‘동시대’나 ‘글로벌’이란 용어가 비교적 자주 등장한다. 사실 그는 시공을 꿰뚫어 보는 안목이 남달라 보인다. “동시대의 예술계가 터닝포인트(전환점)를 맞고 있다고 생각해요. 디카가 나오면서 코닥이 사라졌고. 핸드폰이 지고 스마트폰 시대가 찾아오면서 노키아도 망했잖아요. 미술계도 예외가 아니죠. 새로운 미술관을 선도하겠다는 흐름이 전 세계를 관통하고 있으니까요. 지금 세계의 미술계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돌입했다고나 할까요.”

지역작가 작품 환영, 잣대는 ‘작품성·투명성’

서 단장은 울산시립미술관을 ‘세계 최고의 컬렉션 미술관’으로 꾸미고 싶어 한다. ‘세계 4대 미술관’으로 불리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루브르 미술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따쥐 미술관에도 뒤지지 않는 컬렉션 미술관이 그가 그리는 시립미술관의 밑그림이다. 이를 위해 이미 제안위원 30명을 점찍어 두었다. 해외위원 10명, 지역 위원 2명에 나머지는 국내 다른 지역 인사들.

시립미술관 소장품의 소장 기준도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그는 ‘양’보다 ‘질’을 선호한다고 했다. 소장 작품이 세계사적·문화사적으로 가치가 있으면 언젠가는 국가적 자산이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미술작품 컬렉션에 따른 4개의 관점’을 제시한다. △미학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 △경제적 가치(가격) △정치적 가치가 그것. 이 가운데 미학적, 사회학적 가치를 우선적 가치로 여긴다고 했다.

한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국내 미술관들은 ‘컬렉션 미술관’ 브랜드와는 아직 거리가 있다. 그 빈틈을 울산시립미술관이 메우게 하겠다는 것이 서 단장의 당찬 포부다.

시립미술관에는 지역작가들의 작품도 얼마든지 받아들일 생각이다. 그래도 잣대는 있다. 전문성(작품성)과 투명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조건이다.

“세계적 스타작가 울산서 나오게 하는 게 꿈”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성경 문구는 서 단장에게도 딱 어울리는 금언이다. 시대적 흐름을 좇아 21세기엔 새로운 유형의 미술관이 탄생해야 한다는 신념도 바로 그런 바탕에서 샘솟는다. 울산시립미술관을 ‘21세기형 새로운 미술관’의 선두주자로 올려놓고 싶은 것이 허튼 꿈만은 아니다.

그래서 공을 들이고 인적 네트워크의 문을 자주 두들긴다. “사회적, 공공적 역할까지 떠맡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미술관이 나와야 하고. 여기에 맞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구매와 전시에 머물렀던 기존 미술관의 기능을 시류에 맞게 업그레이드시키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얘기로 들렸다.

서 단장은 지역 예술인에 대한 애정도 피력했다. ‘인큐베이션 교육’에 대한 구상도 ‘글로벌작품’이 울산에서 나오기를 바라는 희망의 흔적일 것이다. “세계적 스타작가가 울산에서 1명이라도 나오도록 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누군가의 작품이 미국 뉴욕의 현대미술관 ‘모마(MoMA= Museum of Modern Art)’의 컬렉션 대상에 올랐다고 상상해보십시오. 그 작가는 그 즉시 떠버리는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지역 예술인들이 애써 울산을 뜰 이유가 없어질 겁니다.” 자신감에 찬 그는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것으로 믿고 있었다.

중부도서관 자리에 ‘외솔한글관’ 입지 검토

말머리를 시립미술관의 준공·개관 시기와 사무국 쪽으로 돌렸다. 8월 내 준공이 목표지만 다소 차질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개관은 ‘12월 첫째 주’ 안으로 못 박았다고 했다. 현재의 공정은 63% 남짓.

울산시 사업소 개념의 시립미술관은 지상 2층(사무동), 지하 3층 규모로 지어지고 1과 2실로 편성된다. 근무 인원은 학예직과 행정관리직을 합쳐 26~27명 선이 될 전망이다.

막간에 흥미로운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시립박물관 근처 옛 중부도서관 자리에 들어설 미술전문 도서관 안에 ‘외솔한글관’(외솔전문도서관)을 들이려는 움직임이 한창 일고 있다는 것. “이상찬 시 문화체육국장의 제안을 박태완 중구청장이 받아들이고, 이를 박 청장이 시장에게 건의하는 모양새로 검토가 긍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올해로 미술계 입문 21년째라는 서진석 단장. 그는 ‘대안공간 루프’를 설립한 1999년을 미술계의 문을 두드린 시점으로 여긴다. 어쨌거나 그는 개척자 정신으로 남다른 삶을 살아온 것만은 분명하다.

50대 총각 “장가, 연이 안 닿아 못 간 거죠”

그의 인생 자체도 남다른 구석이 많다. 아직도 ‘50대 총각’ 신세라는 것도 그중의 하나. 그래도 할 말은 있다. “장가를 안 가려고 작심한 건 결코 아닙니다. 인연이 닿지 않았을 뿐이죠.”

서울이 고향, 경희고등학교(경희대 부속고)를 졸업하고 경원대에 진학했다.

그가 지어낸 용어에는 ‘메타 세계화’란 것도 있다. 그리스어 메타(meta-=‘넘어’, ‘초월하는’)를 활용한 ‘메타 세계화’를 그는 ‘양극화를 불러온 미국 주도의 세계화에 대립하는 개념의 세계화’로 정의한다. 그리고 그는 문화예술의 힘을 굳게 믿는다.

“요즘의 세계는 경제, 정치가 아니라 ‘문화를 기반으로 한 수평적 공존’이 화두이죠. 시장 중심의 사적 가치를 공적 가치로 돌리자는 것이 메타 세계화라 할 수 있죠.” 12월 첫 주 개관기념전의 주제어도 ‘메타 세계화’가 되지 않을까, 기대가 크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장태준 기자

 

울산시립미술관 조감도.
울산시립미술관 조감도.

 

지난해 7월 서진석 시립미술관추진단장이 송철호 울산시장으로부터 임용장을 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울산제일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7월 서진석 시립미술관추진단장이 송철호 울산시장으로부터 임용장을 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울산제일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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