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흔들 손가락이 없어”-영화 ‘차인표’
“이제 흔들 손가락이 없어”-영화 ‘차인표’
  • 이상길
  • 승인 2021.01.21 2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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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차인표'의 한 장면.
영화 '차인표'의 한 장면.

 

내게 1994년은 조금 특별하다. 아니 동시대를 살았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 오죽하면 <응답하라1994>라는 드라마까지 만들어졌을까. 그 드라마에도 잘 나오지만 역대급의 무더위가 찾아왔던 그해 여름, 거리 곳곳엔 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과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이 울려 퍼졌고, 심은하의 신들린 연기변신이 놀라웠던 공포 드라마

무더위를 잠시 잊게 해줬다. 참, 그해 여름 김일성도 죽었다. 또 대학교 2학년이었던 난 그해 말 입대를 했었다.

드라마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그해 여름엔 <느낌>이라는 드라마도 방영돼 큰 인기를 끌었었다. 손지창과 김민종, 이정재, 우희진, 류시원, 이본 등 당대 최고의 하이틴 스타들이 총출동해 젊음의 계절인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궜다. 하지만 그해 가장 빛이 났던 드라마는 심은하의 도, 또 청춘스타들이 왕창 출연했던 <느낌>도 아니었다. 바로 여름이 막 시작될 때 쯤 ‘차인표 신드롬’을 일으키며 안방극장을 점령했던 <사랑을 그대 품 안에>였다.

사실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차인표 신드롬’은 조금 독특했다. 그 전부터 꾸준히 활동을 하며 내공을 쌓아온 배우가 작품을 잘 만나 뜬 것도 아니고, 이제 막 데뷔한 배우의 첫 주연작이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든 전대미문의 사건이었기 때문. 당시 차인표 신드롬은 세 가지 아이템으로 쉽게 요약이 된다. 바로 바이크와 섹소폰, 그리고 손가락이었다. 모두 극중 강풍호(차인표) 이사가 타고, 불고, 흔들었던 것들인데 특히 손가락이 요물이었다. 검지손가락을 앞으로 내세워 좌우로 살짝 흔드는 거였는데 마치 최면이라도 걸린 듯 수많은 여심들이 녹아내렸다. 그리고 최근에 개봉한 영화 <차인표>는 바로 그 ‘손가락’에 대한 이야기다.

제목부터 독특한 이 영화는 배우 차인표의 ‘현실 반, 가상 반’ 이야기다. 그러니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차인표는 배우로서 실제 차인표이고, 그가 처한 처지도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한때 손가락 하나로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슈퍼스타였지만 지금은 연기 4대 천왕에 끼고 싶어도 낄 수가 없는 열정만 가득한 몸짱 배우인 것. 이건 현실에서도 비슷하지 않나. 다만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가상인데 아웃도어 광고 촬영을 위해 산행을 했던 차인표가 우연히 들어간 한 폐교 체육관이 붕괴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체육관 세면실에서 씻고 있었던 그는 발가벗은 채로 건물이 붕괴되면서 꼼짝없이 갇히게 되고, 언론에 노출됐을 경우의 이미지를 걱정해 그의 오랜 매니저인 아람(조달환)에게 몰래 구출해줄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건물 붕괴로 사람들이 몰려든 상황에서 그건 쉽지 않은 일이었고, 그 때문에 이후 차인표와 매니저인 아람의 고군분투기가 코믹하게 그려진다. 아. 맞다. 이 영화, 코미디 영화다. 개인적으로는 이병헌 감독의 <극한직업>만큼 웃겼다.

그런데 가상의 이야기라지만 <사랑을 그대 품 안에> 이후 배우 차인표의 실제 삶을 되돌아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다시 말해 영화 <차인표>는 차인표라는 배우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이야기인데 그건 곧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손가락에서 시작돼 손가락으로 끝이 난다.

사실 차인표라는 배우를 논할 땐 ‘진정성’을 빼고 이야기할 순 없다. 그건 <사랑을 그대 품 안에>로 막 떴을 때부터 도드라졌는데 실제로 드라마가 끝나고 얼마 뒤 그는 극중에서 진주 역을 맡은 신애라와 결혼을 선언한다. 아니, 뜨자마자 결혼이라니! 그렇게 그는 수많은 여심을 뒤로 한 채 오직 사랑하는 여자를 위한 길을 선택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얼마 뒤에는 미국 영주권을 포기하고 입대를 결정하게 된다. 이제 막 시작인데 입대라니! 하지만 연기 공백이 불가피한 입대는 그에게 치명타였고, 제대하자마자 출연한 <별은 내 가슴에>라는 드라마에서 극중 강민 역의 안재욱에게 자리를 내주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영화 <차인표>에서도 그냥 대충 찍으면 될 아웃도어 광고를 진정성을 위해 산행을 하다 봉변을 당하는데 붕괴된 건물더미에 갇혀 손가락을 다친 그는 아내 신애라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제 흔들 손가락이 없어.”

사실 인표형은 나랑 나름 인연이 있다. 1994년 그해 겨울, 논산훈련소에서 같이 신병훈련을 받았던 것. 내가 11월28일 입대였고, 인표형이 일주일 뒤인 12월 5일이었다. 그때 멀리서 훈련받는 모습을 잠시 보면서 ‘저 형 참 멋있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10여년 뒤에는 선행천사가 되어서 브라운관에 나타나더라. 그리고 이번 영화 <차인표>를 통해서는 배우로써 모든 걸 내려놓는 모습에 다시 한 번 멋있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해서 영화를 보다 이제 흔들 손가락이 없다는 그의 눈물 젖은 대사에 괜히 이런 말을 해주고 싶더라. “흔들 손가락이 없음 어때? 형은 사람이 진짜인데.” 2021년 1월 1일 개봉. 러닝타임 106분. < 이상길 취재1부 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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