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어울려 꽃피우기
함께 어울려 꽃피우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1.20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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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울산북구건강가정다문화지원센터에서 이주여성들을 대상으로 한글을 가르치는 강의에 참여했다. 여러 가지 목소리와 표정을 이용해 재미있고 감동 있게 들려주는 동화구연과 그림책 실감나게 읽어주기, 동시 낭송을 통해 한글을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지도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수강생 중에는 한 시간 넘는 거리를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녀는 열정도 대단했다. 내가 동화를 들려주면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크고 착한 눈을 껌뻑이며 집중을 했다.

유난히 그림솜씨가 돋보이는 사람도 많았다. 동시 낭송을 감상하고 나면 단어 하나하나씩 따라서 읽은 후 필사를 한다.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정성스럽게 쓰는 사람들의 손길은 연둣빛 새싹이 돋아난 봄길 같다. 특히 필사 후 자신의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할 때는 우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표정 하나하나 섬세하게 표현하는데 혼자 보기에 아까운 그림들도 많았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지 30여년이 된 사람도 있었다. 식당에서 그릇 씻는 일, 목욕탕에서 세신하는 일, 시장에서 장사하는 일 등 생계를 위해 그 많은 일을 해내면서 힘들어도 잘 견뎌냈다고 했다. 한 번은 그녀가 가슴으로 낳아서 키운 아들이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고 했다. “엄마, 우리 안 버리고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 힘들었던 순간들이 보람으로 다가오더라는 그녀의 말을 듣는 우리들은, 눈가에 무언가 촉촉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한국에서 살고 있는 많은 이주여성들에게 반짝반짝 별 같은 사람일 것이다. 고된 시집살이를 하는 이들에게 분명 위로와 희망이 되고 있을 것이다.

특히 그녀는 강의기간 내내 결석을 한 번도 하지 않는 모범과 열정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발표회를 앞둔 어느 날 화장실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허리를 다쳐서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다. 다쳤다는 말을 듣고 나는 시집을 들고 병문안을 갔다. 그 아픈 몸으로도 그녀는 봄에 핀 목련처럼 활짝 웃고 있었다. 발표회 날, 그녀의 활약을 내심 기대했던 나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수강생들에게 발표회 날에 각자가 무대에서 낭송할 동시와 구연할 동화를 미리 녹음해주면서 집에서 연습을 하라고 당부했다. 발표회가 다가올수록 나는 ‘수강생들이 잘해야 할 텐데 어떡하지?’ 하는 마음에 긴장의 끈을 늦출 수가 없었다.

드디어 발표회 날, 그동안 수강생들이 필사해 놓은 동시를 코팅해서 전시를 했다. 자신이 맡은 동화와 동시를 연습할 때보다 더 재미있고 자신 있게 해주었다. 나는 ‘휴!’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2019년엔 수강생이 울산 어머니동화구연대회에서 입상할 정도로 실력을 갖추게 된 이도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대회에 한 명도 출전하지 못했던 일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수업을 다 끝내고 6개월 동안 출석을 잘한 수강생 5명에게 제주의 향기를 담은 귤을 한 박스씩 선물로 보냈다. 함께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꼭 안아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해주지를 못해 안타까웠다. 그래도 모두 탈 없이 수업을 마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동화 구연과 시 낭송에 입문한 지 20년이 훨씬 더 넘었다. 그동안 유아부터 어르신까지 많은 사람을 지도해 왔지만 이주여성들과의 만남은 특별한 것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중간에 수업을 중단하는 일도 있었다. 수업하는 내내 코와 입을 가린 마스크 때문에 그녀들의 미소를 눈으로만 본 것이 아쉽긴 하지만, 눈빛만 봐도 어떤 생각으로 나를 보고 있는지 그 느낌이 와 닿는 듯했다. 눈은 참으로 많은 말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감동과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나의 인생목표는 죽을 때까지 걸어 다니고, 재미있게 살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삶이다.

내가 들려주는 동화와 동시를 통해 그녀들이 위안을 받고, 가족과 이웃과 소통을 잘할 수 있도록 이끌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뛴다. 이건 기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동안 수업을 할 수 있도록 수고해주신 울산북구건강가정다문화지원센터 센터장님과 담당선생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이러다가/ 우리 동네 사람들 속에/ 어울리지 못하면 어쩌나?/ 그래도 할머닌/ 걱정 말래.//

아까시나무도/ 달맞이꽃도/ 개망초도// 다 다른/ 먼 곳에서 왔지만/ 해마다 어울려 꽃피운다고.// (중략)” 정진숙 시인은 ‘걱정 마’라는 동시에서 그렇게 노래했다.

멀리 타국에서 남편 한 명을 믿고 한국으로 시집와서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이주여성들을 위해 우리들이 각자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수강생들이 마지막 수업 날에 써준 진심어린 편지를 읽으면서 행복한 고민에 젖어본다.

천애란 사단법인 색동회 울산지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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