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도 그냥 기분, 때문에 많은 것들이 있다 -영화 ‘원더우먼1984’
행복도 그냥 기분, 때문에 많은 것들이 있다 -영화 ‘원더우먼1984’
  • 이상길
  • 승인 2021.01.14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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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원더우먼1984' 한 장면.
영화 '원더우먼1984' 한 장면.

 

DC의 슈퍼히어로 무비를 마블의 슈퍼히어로 무비 보듯 하면 절대 안 된다. 왜냐? 그럼 충분히 즐길 수가 없거든. 2008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 이후 DC는 슈퍼히어로 무비를 철학의 경지로 끌어 올렸고 그게 스스로도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는지 이후의 작품들도 대부분 철학 코드를 집어넣어 마블과의 차별화를 시도하게 됐다.

최근 개봉한 <원더우먼1984>도 마찬가지인데 비록 악평이 쏟아지고 있지만 영화 속에 담겨진 철학적인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면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그 만큼 이 영화는 대충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 우리들 삶과 직결된 깊은 철학적 사유를 토대로 만들어졌는데 지금부터 그 길로 당신을 인도해드릴까 한다.

아시다시피 제우스의 딸로 불멸의 존재인 원더우먼의 본명은 다이애나(갤 가돗)다. 그러니까 그녀도 한 명의 여자라는 것. 그리고 그런 그녀가 평생을 두고 사랑한 남자가 있었으니 바로 스티브(크리스 파인)였다. 하지만 슬프게도 스티브는 2017년 5월에 개봉한 <원더우먼>에서 세상을 파괴하려는 무리에 맞서 원더우먼과 함께 싸우다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때가 대략 2차 세계대전 말이었다. 그리고 속편인 <원더우먼1984>는 제목처럼 1984년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데 늙지 않는 존재인 다이애나는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스티브가 죽고 난 후 40여년 넘게 그를 그리워하며 살고 있었다. 실제로 영화 초반 다이애나의 표정은 여전히 상실감에 젖어 있다. 마치 스티브가 없는 세상에선 다시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은 표정이다.

그런 어느 날 마법의 돌이 나타난다. 고고학적 유물로 누구라도 이 돌을 갖고 소원을 빌면 바램이 이뤄진다. 고고학자로 살아가는 다이애나는 동료인 바바라(크리스틴 위그)를 통해 그 돌을 알게 되는데 그게 그런 돌인지도 모르고 간절히 바래왔던 자신의 소원을 무의식적으로 내뱉는다. 그건 바로 스티브와 다시 함께하는 것이었고, 그 일로 죽은 스티브는 살아나게 된다. 그런데 그 돌의 정체를 알고 노리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석유재벌을 꿈꾸는 맥스 로드(페드로 파스칼)였고, 그는 돌을 가진 뒤 자신이 돌과 하나가 되는 소원을 빈다. 이후 그는 사람들의 소원을 마구 들어주면서 세상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린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소원이나 바램이 다 이뤄지면 질서가 무너지는 건 당연한 일. 게다가 소원이나 바램을 이루려면 저주받은 그 돌(맥스 로드)에게 저마다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빼앗겨야 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분명 황당무계한 이야기지만 사실 영화 속 마법의 돌은 현실에서 누구나 하나쯤은 반드시 지니고 살아가는 ‘간절히 원하는 것’이 함축된 아이템이다. 보통 소원이나 바램이라 하지만 혹자는 그걸 꿈이나 목표라고도 부른다. 말하고 듣기엔 아름답기 그지없는 단어들이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마음속에 그런 것들이 생겨버리면 이젠 행복이라는 것도 그것들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니까 소원이나 바램, 혹은 꿈이나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쉽게 행복해지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건 마치 원래는 일상 구석구석이 행복했던 어떤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난 후에는 그 사람으로 인한 행복이 아니고서는 행복을 쉽게 못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바로 스티브가 다시 살아나기 전의 다이애나가 그랬다. 또 성공을 간절히 원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역시 상황은 비슷하지 않을까. 원래 성공하려면 남들보다 목적지에 빨리 도달해야 하고 그러려면 아름다운 주변 풍경은 포기해야 한다. 그렇게 우린 모두 간절히 원하는 것을 위해 이런 저런 대가를 치르면서 살아간다.

허나 따지고 보면 행복이라는 것도 그냥 ‘기분’일 뿐이다. 무슨 말이냐면 재산이 1조가 넘는 사람이 느끼는 행복감과 흐린 날씨가 갑자기 맑게 개였을 때 느끼는 행복감이 다르지 않다는 것. 이 말인 즉은 가진 게 많다고 그 행복감이 영원하진 않고, 가진 게 없다고 행복감을 못 느끼는 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죽을 고생을 해서 성공한 사람들에겐 다소 억울할 수 있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성공이라는 것도 결국은 행복해지기 위함이니 어쩌면 진정 성공한 삶이란 것도 그 기분 좋음을 자주, 혹은 많이 느끼며 사는 사람이 아닐까. 관련해 세상엔 어려운 기분 좋음도 많지만 쉬운 기분 좋음이 훨씬 많다. 하지만 원하는 것에 집착하며 살다보면 그것 말고는 행복해질 일이 잘 없고, 똑같이 주어진 시간 속에서 결국은 그만큼 손해 보는 게 된다. <원더우먼1984>에서 뜬금없이 ‘소원’이 악의 세력으로 등장하는 이유다.

다이애나도 이 같은 삶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데 소원성취로 미쳐 날뛰는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선 돌을 없애야 했고, 그러면 스티브도 다시 사라질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며 눈물 흘리는 다이애나에게 스티브는 “밖으로 나가 부디 이 멋진 세상을 즐겨라”고 말한다. 마침내 스티브를 놓아준 뒤 모든 혼란을 바로 잡은 다이애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위 사진처럼 세상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많은 것들, 너무 많은 (행복한) 것들이 있다.” 2020년 12월23일 개봉. 러닝타임

< 이상길 취재1부 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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