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군 이름값, 영하 12.2℃
동장군 이름값, 영하 12.2℃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1.11 21: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장군(冬將軍)은 겨울추위를 장군에 비유한 말이다. 이름값의 값은 꼴값, 얼굴값, 밥값 등 접미사로 쓰이는데 의미는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 이름값은 이름에 걸맞은 행동을 했을 때 추켜세우는 말이다.

올해 들어 8일째 되던 2021년 1월 8일, 찬 기운의 파도가 전국으로 넘실거렸다. 수은주가 영하로 곤두박질쳤다. 울산기상대 기록은 영하 12.2℃였다. 울산 기온이 영하 12℃로 내려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 1월 16일은 영하 13.5℃, 2018년 1월 26일은 영하 12.4℃로 기록됐다.

그런데 이번 기온에 모두가 ‘매우 춥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이번 추위가 더 춥다고 느끼는 마음의 바탕에는 코로나19로 인한 국가·지역경제의 침체와 덩달아 가라앉은 사회적 분위기가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사람들의 정서와는 상관없이 올해 동장군은 이름값 하나는 톡톡히 해낸 셈이다. 그 덕분에 필자는 백로의 특이한 생태적 행동을 2011년에 이어 두 번째로 기록할 수 있었다.

백로는 기온이 영하 10℃ 아래로 급강하하면 삼호대숲 잠자리를 마다하고 강물에 발을 담그는 족욕(足浴)으로 추위를 이겨내는 습성이 있다. 그날 월동지(越冬地)로 떠나지 않고 남아있던 백로 40여 마리는 모두 하룻밤을 물에서 외박했다. 이날은 종일 강풍까지 몰아쳐 체감온도가 영하 20℃ 가까이 내려갔다고 전한다. 그날의 일상적 풍경을 적어본다.

지난밤 세찬 바람에 창문이 자주 흔들렸다. 시간 맞춰 울던 백봉도 십여 개월 세월에 지각하여 울었다. 냉방수행(冷房修行)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난방텐트 속을 빠져나왔다. 화장실을 찾는 인시(寅時)의 마당은 내린 눈으로 밝다 못해 차갑다. 수도꼭지도 변기도 간밤 추위의 횡포가 얼마나 심했는지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조류 조사 채비를 끝내고도 시계만 반복해서 쳐다보고 있다. 오늘은 집 밖으로 선뜻 나서기가 망설여지는 날이다.

공자의 삼계도(三計圖) 가운데 “일 년 농사는 이른 봄에 설계가 되어야 하고(一年之計在於春), 그날 계획은 닭 울 때 일어나야 이룰 수 있다(一日之計在於寅). 봄에 씨를 뿌리지 않았다면 가을걷이는 꿈도 꿀 수 없을 것이며(春若不耕 秋無所望), 닭 울음소리를 듣고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날 할 일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寅若不起 日無所辨)”라는 말씀을 되새겼다. 이윽고 눈발의 하얀 채찍질 속에 몸을 잔뜩 웅크려서 대문을 나섰다.

순간 골목을 돌아 낙엽을 빗질하던 매 발톱 같은 날카로운 바람이 나를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어 안기고 짐을 지웠다. 종종걸음으로 자동차 곁으로 다가서 리모컨 키를 눌렀다. 난감하다. 몇 번을 반복해서 눌렀지만 익히 듣던 척하던 풀림 소리는 나지 않는다. 두 손으로 비벼 겨우 문을 열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넘어야 할 장애물은 똬리를 틀고 기다리고 있었다. 키를 돌리자 구동모터는 시원찮은 오줌 줄기처럼 찔찔거렸다. 이윽고 눈길을 조심스럽게 출발했다. 거북이걸음으로 앞서 길을 떠나준 차량이 반가웠다. 꽁무니를 따라 조심스레 운전한 끝에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날도 삼호대숲을 거쳐 태화강국가정원의 정해진 코스를 조사하고 있었다. 국가정원의 동장군도 기다렸다는 듯 샛강의 앙상한 버들가지를 그냥 두지 않고 연신 매몰차게 채질하고 있었다. 먼저 만난 것은 뱁새였다. 뱁새는 잠자리에서 한참이나 수다를 떨었다. 그들의 수다는 먹이터로 가기에 앞서 일상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인 셈이다. 밀화부리를 만났다. 단풍 씨앗의 먹이가 줄어들자 다른 먹이터로 날아갔다.

수생식물원을 찾았으나 꽁꽁 언 얼음으로 터줏대감 쇠물닭은 보이지 않았다. 샛강을 찾았다. 갈대숲에 있던 고라니 한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하얀 콧김을 내뿜으며 달아났다. 꽃밭을 찾았다. 진주목걸이를 한 장끼는 연신 고개를 움츠렸다 펴기를 반복하며 꽃밭 이랑에 낮은 자세로 몸을 숨겼다.

버드나무에 모여 있던 까치 수십 마리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시끄럽게 지저귀고 있었다. 갈대에 걸린 검은 비닐봉지가 바람이 스칠 때마다 살아있는 듯 움직였다. 늙은 까치 몇 마리가 뭍으로 나온 복어처럼 가슴 깃을 부풀린 채 지켜보고 있었다. 다가가 비닐봉지를 집어채자 그제야 까치들은 지저귐을 멈추고 한두 마리씩 차례로 날아갔다. 이러한 집단행동은 본능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까치가 검은 비닐봉지를 검은 고양이로 여기고 주위의 동료들에게 경계의 소리를 냈던 것이다. 이때 늙은 까치의 행동을 지켜본 것은 이들이 겁쟁이가 아니라 경험자였기 때문이다.

오산교 입구에서 뒷모습으로 걷는 삵 한 마리가 시야에 잡혔다. 무심코 힐끗 뒤돌아보다가 인기척에 놀란 듯 재빨리 갈대숲으로 들어갔다. 한철 멋쟁이였던 팜파스그라스는 쑥대머리 청삽사리 모습으로 웅크리고 앉아 오산못을 지켜보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사군탄을 찾았다. 큰고니 한 쌍이 낙안소 쪽으로 자리를 옮겨 작은 모래톱에서 머물고 있었다. 이들은 한 다리로 지탱하며 큰 죽지에 머리를 파묻은 채 추위를 견뎌내고 있었다. 동장군이 3년 만에 이름값을 하던 날은 사람과 짐승 모두에게 무척이나 춥고 힘든 하루였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조류생태학 박사·철새홍보관 관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