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소와 칡소, 그리고 흑우
흰소와 칡소, 그리고 흑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1.10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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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辛丑年) 새해를 ‘흰소(白牛)의 해’라고 부른다. 유통업계에서는 벌써부터 장삿술(商術)을 발휘에 안달이 나 있다. ‘흰소’의 좋은 이미지를 마케팅 전략에 활용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 신제품 ‘화이트 카우 케이크’ 7종을 이미 출시한 ‘신세계푸드’가 선두주자.

‘흰소의 좋은 이미지’는 엄밀히 따져 흰소 특유의 것이 아닌, 소의 일반적 특성이다. 우직함과 근면함, ‘신성한 기운’, ‘풍요로운 삶’ 따위가 그것. 축산 전문가에 따르면 흰소는 돌연변이종이다. 동물 세계에서 이따금 나타나는 ‘알비노(albino·白色症) 현상’의 하나라는 것. (알비노 현상은 멜라닌 색소를 만들지 못해 피부나 모발이 하얗게 변하는 열성유전병을 말한다.)

흰소는 그래도 토종한우에 속하는 우리 고유종이다. 황소(黃牛)와 칡소, 흑우(黑牛=검은소)도 마찬가지. 그리고 일본에는 그들이 자랑하는 와규(和牛)란 개량종이 따로 있다. 이 과정에 슬픈 사연이 숨어있다. 윤주용 농학박사에 따르면, 우리의 국권을 가로챈 일제(日帝)는 강점기에 조선에서는 황소만 기르게 하고 일본에서는 ‘와규’ 사육을 장려하는 차별정책을 썼다. 1938년 일제가 ‘일본 소는 흑색, 한국 소는 적갈색을 표준으로 한다’는 한우표준법을 제정했던 것. 지금도 ‘검정소’ 하면 일본의 와규를 떠올리는 이가 많은 것도 이 때문.

그 후유증이 나타났다. 칡소와 흑우, 그리고 흰소가 도태의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조선시대 기록에도 나와 있던 이 토종한우들은 한동안 ‘멸종위기 희소한우’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여기서 잠시 한우품종의 하나인 ‘칡소’에 주목해 보자. 칡덩굴같이 짙은 갈색과 검은색 무늬를 가졌다 해서 이름이 붙여진 ‘칡소’는 다름 아닌 ‘얼룩소’의 딴이름이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로 시작되는 <얼룩송아지>(손대업 작곡)는 1948년 국정음악교과서 1학년용에 처음 실린 곡으로, ‘칡소’를 노래했다는 것이 윤 박사의 귀띔이다. 어디 그뿐인가. 시인 정지용이 1920년에 지은 시 <향수>에 나오는 ‘해설피 금빛 울음을 우는 얼룩배기 황소’도 실은 ‘칡소’ 그것이 아닌가.

‘흰소의 해’ 벽두부터 반가운 소식들이 들려온다. ‘멸종위기 희소한우’들의 잇단 복원 소식이다. 10년 전부터 복원 노력이 이어져온 칡소의 경우 약 한 달 전 송아지 5마리가 새로 태어나 증식(增殖)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 언론매체는 “속눈썹도 새하얀, 멸종위기 ‘백우’가 돌아왔다!”는 제목을 달기도 했다.

‘임금님 진상품’이었다는 ‘제주흑우’도 요즘 복원 노력이 한창이다. 2015년 12월, 제주대학교에 ‘제주흑우연구센터’가 설립된 것이 결정적 계기였고, 현재 제주도내 90여 농가에서 1천여 마리를 사육하는 중이다. 흰소의 해를 맞아 농촌진흥청이 흰소 증식에 나섰다는 소식도 더없이 밝은 뉴스다. 개체수가 적은 흰소를 집중 증식한 뒤, 칡소와 흑우 등 다른 품종의 증식 범위도 차츰 넓혀간다는 것.

한 가지 곁들일 얘깃거리도 있다. 1954년, 서양화가 이중섭이 소를 소재로 그린 유화의 제목도 ‘흰소(White Bull)’인 것. 현재 홍익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평소 소를 좋아했던 이중섭은 가끔 우직하고 성실한 소를 한국인의 성격에 빗대어 그렸다. 흰소는 백의민족이었던 한국을 의미하고, 말라서 피골이 상접한 모습은 6·25 직후 먹고살기 힘들었던 당시의 상황을 표현했다는 풀이도 있다.

전통적으로 ‘흰소’는 ‘신성한 기운을 가진 소’로 여겨져 왔다. 그 신성함의 복원 능력이 흰소의 해를 맞아 배가된다면…. 코로나19도 능히 물리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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