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새해 첫날의 동선(動線)
2021년 새해 첫날의 동선(動線)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1.04 21: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21년 1월 1일 새벽 3시, 2G 휴대전화 알람은 어김없이 울렸다. 눈은 감은 채 손으로 더듬어 폴더를 폈다 접는다. 그 후 5분 간격으로 세 번이나 더 울린다. 그렇게 설정해 두었었다. 잠에서 미처 깨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대비한 나름의 방책이다.

그 후 휴대전화기의 휴식시간대인 오전 3시부터 6시까지는 필자에게도 대자유(大自由)의 시간대다. 찾아볼 자료를 찾고, 써야할 글을 쓴다. 3시간은 흐르는 물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오전 4시 39분경, 백봉 오골계가 첫울음으로 신축년 새벽을 알린다.

매일 떼까마귀가 삼호대숲 잠자리에서 날아 나오는 시각에 맞추어 토굴을 나서지만, 새해 첫날은 한곳을 더 들려야 해서 여섯 시가 채 못 된 시각, 서둘러 관찰 장소로 향한다. 지난해(2020년) 12월 29일 오전 10시경부터 태화강 사군탄에 자리를 잡고 사는 큰고니 부부의 안위가 걱정되어 이를 확인하고 싶어서다. 걱정되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 10월 25일, 큰고니 한 마리가 같은 장소로 찾아왔다가 버려진 낚싯줄에 걸리는 사고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방문을 열었다. 찬 새벽공기가 바람과 함께 눌러쓴 방한모자 틈새를 용케 비집고 들어와 사정없이 스며든다. 어쩔 수 없다. 두 손은 습관적으로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진 장화를 힘겹게 당겨 신는다. 찬 기온은 자동차 시동마저 시원찮게 만든다. 울산기상대는 새해 첫날의 최저기온을 영하 7.2℃로 기록했다.

오전 6시 10분경, 마음을 졸여가며 굴화지역 징검다리가 있는 사군탄을 살폈다. 다행히 새해를 맞이하는 큰고니 부부를 어렵사리 확인했다. 안도의 한숨을 뒤로하며 일상의 조류 관찰 장소로 향했다.

오전 6시 30분경, 일상의 관찰 장소에 도착했다. 차창을 열자마자 삼호대숲에서 떼까마귀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떼까마귀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작은 소리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행동을 매일 반복한다. 이러한 행동은 수리부엉이, 너구리와 같은 포식자를 방어하는 방법이다.

현장에서 하는 첫 번째 관찰은 소리를 듣고 확인하는 청음(聽音) 조사다. 이윽고 떼까마귀가 무리 지어 날아서 나오기 시작했다. 시각은 오전 6시 58분. 야장(野帳)에 기록했다. 참고로 2010~2020년 새해 첫날, 떼까마귀의 이소(離巢) 시각을 소개한다.

자필기록에 근거한 이소 시각은 2010년 6시 58분(34분전, 최저기온 ?6.6℃), 2011년 6시 58분(34분전, ?7.8℃), 2012년 7시 4분(28분전, ?2.3℃, 비 0.2㎜), 2013년 6시 58분(34분전, ?7.3℃), 2014년 6시 58분(34분전, 0.9℃), 2015년 6시 54분(38분전, ?4.9℃), 2016년 6시 53분(39분전, ?1.6℃), 2017년 6시 58분(34분전, 2.1℃), 2018년 6시 53분(39분전, ?0.4℃), 2019년 6시 51분(41분전, ?2.5℃), 2020년 6시 55분(37분전, ?3.9℃) 등이다.

새해 첫날 ‘떼까마귀 해맞이’를 나온 한 가족과 만났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떼까마귀 군무를 관찰하게 된 동기를 알게 됐다. 이야기의 실마리는 십여 개월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이분은 지난해 2월 14일(금), 송철호 울산시장 주관으로 시청 간부공무원, 산하기관장, 관내 유관기관장들과 함께 떼까마귀 군무를 체험했다. 참가자들은 오전 6시 30분까지 모였다가 떼까마귀 생태에 대한 필자의 간단한 설명을 10분 남짓 들었다. 이날의 떼까마귀 군무는 오전 6시 43분경 시작됐다. 울산의 새로운 생태관광자원으로 떠오른 떼까마귀의 군무를 참가자 모두 눈으로 확인했다. 송 시장이 특별히 관심을 두고 시청 공무원과 산하단체 직원, 관내 관계기관 직원 등이 차례로 현장을 찾아 떼까마귀의 군무를 체험하도록 독려했다. 그러나 이 행사는 아쉽게도, 갑작스레 나타난 코로나19 때문에 중단되고 만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아이 아빠는 당시 체험행사 때 관내 유관기관장의 한 사람으로 참석했다고 말했다. 떨어져 살던 엄마와 아들과 딸이 새해를 맞아 아빠를 찾아왔었다는 것. 이날의 동선(動線) 속에서 만난 이들 가족은 변화와 거듭나기를 실천으로 보여준 행복한 가족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떼까마귀 해맞이’를 마친 이들의 걸음 소리를 알아챘는지 때마침 박새 한 마리가 소리를 내며 따라나섰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관조(觀照)의 예지(叡智)’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제야 그 이치를 깨달았다. 마음이 깊은 사람은 보고 듣는 것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반대로 보고 듣는 것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은 보고 듣는 것이 분명하면 할수록 도리어 병통이 된다”라고…. 연암은 사려 깊지 못한 삶을 본질과 현상의 접근을 통해 분명하게 말했다. 아울러 그는 일찍이 구이지학(口耳之學=귀로 들은 것을 그대로 남에게 이야기할 뿐 조금도 자기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 학문을 가리키는 말)의 병통(病痛)을 염려했다.

필자는 신축년 새해 첫날 흰 깃의 큰고니, 검은 깃의 떼까마귀, 붉은 빛의 태양을 차례로 맞이했다. 돌아오는 길목에는 몸빛이 희고, 날개 끝 깃이 검고, 정수리가 붉은 한 마리의 학이 길잡이인 양 훨훨 날고 있었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조류생태학 박사·철새홍보관 관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