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관광 해맞이 ‘떼까마귀의 군무’
생태관광 해맞이 ‘떼까마귀의 군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12.28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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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문연구원이 지난 17일, 우리나라의 2021년 1월 1일자 일출 시각을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가장 이른 곳은 독도가 오전 7시 26분으로 1등이다. 다음으로 울산시 울주군 간절곶과 동구 방어진이 5분 뒤인 오전 7시 31분으로 공동 2등이다.

해맞이는 우리나라 소수의 사람에게 특별한 관심과 의미가 있다. 매일 뜨고 지는 해를 새해 아침에는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수평선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해돋이, 산 정상에서 기다리는 해돋이에서 보듯 사람들은 서로 다른 감성과 감동으로 해를 맞는다. 하지만 해맞이의 목적은 그런 감정보다는 태양의 붉은 색에서 느껴지는 힘찬 에너지와 액땜 그리고 복덕을 기원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어떤 목적의 각오와 결심을 다지는 데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그런 각오와 결심은 사흘이 못 가 시나브로 끝나기가 일쑤이지만….

반면 해맞이를 하지 않는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 한해가 저물도록 힘찬 에너지를 못 느껴 매사에 액만 있고 복은 없는 것은 아닐까?

해맞이는 국가와 민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어제 뜬 그해가 오늘 또 뜨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생각한다. 세월은 계속이 이어지므로 매년 마디를 만든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식의 인식이다. 이러한 인식이 팽배해서인지 직장에서는 한해를 마무리하는 종무식은 물론 새롭게 시작하는 의미의 시무식도 없다고 한다.

2021년 새해 해맞이 행사가 전국적으로 취소됐다고 들린다. 울산에서도 구·군별 해맞이 행사가 모조리 취소됐다. 해맞이를 손꼽아 기다리던 사람들은 아쉬운 나머지 불만을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화는 시대에 따라 생성과 소멸을 되풀이하고, 전승과 단절을 거듭하는 성질을 잘 이해했으면 한다. 구제역 발생(2011년), 인접지역 AI 발생(2017년) 등으로 해맞이 행사가 취소된 사례도 있지 않았던가.

해맞이가 전승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제야(除夜)에 불을 밝히고, 새해에 해를 맞이하는 일종의 의식행위는 지혜를 증장하는 밝음. 즉 빛이 그 중심에 있다. 그런데 어느 시점, 어떤 이유에선지 지혜의 증장이란 목적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길흉이라는 엉뚱한 개념이 붙으면서 그것이 반복되고 있다. 본질이 망각되고 그 자리를 엉뚱하게도 현상(행사)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과 불경에는 해맞이를 해서 복을 받는다는 말씀은 없다. 하지만 꾸준한 노력과 실천의 중요함을 거듭 전하고 있다. ‘빛과 소금’, ‘하늘에는 영광(榮光) 땅에는 평화’, ‘화엄과 반야’는 표현은 짧아도 의미는 크다. 이들 표현은 일종의 메타포(metaphor·은유)로 지혜로운 삶인 빛, 즉 광(光)을 공통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첫날 해맞이에서만 힘찬 에너지와 액땜 그리고 복덕의 기원이 성취된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 하지만 해맞이의 본질을 이해한다면 구태여 새해 해맞이에 고집스럽게 얽매일 필요는 없다. 광명(光明)을 알리는 수탉의 힘찬 울음, 아침 까치의 반가운 울음, 참새의 무리 소리와 같은 대안은 어떻겠는가? 인식만 바꿀 수 있어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 울산의 대표적 해맞이 장소로 간절곶과 대왕암을 꼽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두 곳은 바닷가여서 가장 일찍 뜨는 해돋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가장 일찍 뜨는 해돋이를 대체할 메타포는 없을까?

코로나19와 같은 전혀 새로운 경험은 새로운 일상 즉 새로운 사고와 접근을 요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떼까마귀의 이소(離巢)와 군무(群舞)는 바닷가 해맞이를 대신할 새로운 일상의 마중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2010년부터 떼까마귀의 비상(飛翔)을 해맞이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2020년 새날까지 열한 번의 떼까마귀 이소 시각을 기록할 수 있었다. 울산기상대의 자료를 보면 울산의 새날 일출시각은 매년 오전 7시 32분경이었다. 필자가 일출과 떼까마귀의 이소 시각을 비교해보았더니 떼까마귀는 해뜨기 약 38분 전(11회)에 둥지를 박차고 날아오르곤 했다.

해맞이는 현장성이 중요하다. 그날 구름이 끼면 해를 중천에 떠서야 확인하는 일도 생긴다. ‘떼까마귀의 이소 맞이’는, 과학적 자료를 활용하면, 약 10분의 오차만 있을 뿐 언제든지 경이로운 검은 빛의 파편을 만끽할 수 있게 한다. 매일 해가 뜨기도 전에 잠자리를 박차고 날아오르는 떼까마귀 무리의 날갯짓. 이것이야말로 힘찬 에너지이자 액땜과 복덕을 기원하는 진정한 메타포의 대상이 아니겠는가? 떼까마귀의 군무를 즐기면서 하는 생태관광 해맞이를 한번 연상해 보자.

근심의 해독제는 애써 찾는 해맞이가 아니라 일상의 꾸준한 노력과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의 삶이 두렵고 절망스러운 것은 목적이 없을 때 생기는 현상이다. 사물을 봐도 갖고 싶은 마음이 옅어지면 어느새 불안은 사라지고 행복의 웃음이 활짝 필 것이다.

2021년 새해 해맞이는 ‘거름 지고 장에 간다’는 식의 인식에서 과감히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해오던 해맞이가 받기 위한(‘for get’) 빌기 식 해맞이였다면, 앞으로는 주기 위한(‘for give’) 다짐과 실천의 해맞이가 되기를 기원한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조류생태학박사·철새홍보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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