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북쪽 사랑 이야기
그리운 북쪽 사랑 이야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12.21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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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정(?庭) 김려(金?, 1766~1821)는 북쪽 함경도 부령 유배지에서 4년간 체류했다. 담정은 낯선 환경과 척박한 인심에 힘겨워했다. 다행히 그를 곁에서 살갑게 시중을 든 배수첩(配修妾=유배객의 시중을 드는 여인) 연희(蓮姬)가 있었다. 그녀는 끼니마다 입에 맞는 음식을 만들고, 철마다 의복을 지었다. 더 나아가 담정 부모님의 기제일에는 제사상을 차리는 등 정성을 다했다. 그뿐만 아니라 연희는 담정과 여러 방면에서 대화의 상대가 되었다. 때로는 담정에게 충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평범한 시중이 아니었다. 이러한 그녀에게 담정은 참사랑을 느꼈다. 담정은 연희의 모범적인 언행들을 정리하여 『연희언행록』이란 책을 만들 정도로 그녀를 존중하고 아꼈다고 전한다. 담정의 유배지는 다시 남쪽 경상도 진해로 옮겨졌다. 담정이 진해에 도착한 이후 연희와의 첫 만남부터 4년간 함께한 북쪽의 생활 모든 순간을 떠올리며 지은 글이 「사유악부(思?樂府)」다.

“너는 무엇을 그리워하는가? 그리운 북쪽 바닷가”(問汝何所思 所思北海湄)로 시작되는 「사유악부(思?樂府)」는 『담정유고(?庭遺藁)』에서 찾을 수 있다. 지면상 자세하게 소개하지 못함을 아쉬움으로 남긴다.

서해 남쪽 끝에 흑산도가 있다. 흑산도 아가씨는 얼굴이 까맣게 탔다. 그 이유는 애타도록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이는 북쪽 서울에 산다. 가수 이미자 선생은 그녀의 마음을 대신해서 이렇게 전했다. “애타도록 보고픈 머나먼, 그 서울을/ 그리다가 검게 타 버린/ 검게 타 버린/ 흑산도 아가씨”(흑산도 아가씨 가사 일부)

필자는 미야꼬 하루미(都はるみ)가 부른 엔카 오사카시구레(大阪しぐれ)를 즐겨 듣는다. 때로는 따라 흥얼거릴 때도 있다. 그 가사에서 남쪽 오사카에 사는 여인이 북쪽 연인을 생각하는 가슴 애절한 사연을 공감할 수 있다. 번역 가사를 소개한다. “혼자서는 살 수 없어/ 살아갈 수 없어서/ 울면서 매달리니/ 네온도 네온도 비에 젖는구나./ 북쪽의 신지는 생각만 날 뿐, 비가 오네/ 꿈도 젖는구나/ 아아 오사카 가을비”(大阪しぐれ 가사 일부)

어느 날, 한 여인이 창문을 통해 오사카에 내리는 늦은 가을비를 바라보고 있다. 추억을 떠올린다. “북쪽의 신지(新地)는 추억뿐이야, 비가 오네요. 꿈도 젖어요. 아아 오사카 가을비.”

대상은 다르지만, 가사에서 아련한 젊은 날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여 동병상련의 감정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더구나 비가 내리는 밤에 듣게 되면 맨 정신으로 버티기엔 무척 힘 드는 게 사실이다.

또 한 사람이 북쪽의 연인을 생각하는 노래가 있다. “당신 잘 있나요?/ 하루하루 날씨가 추워져요/ 입어 주지도 않을 스웨터를/ 추위를 참아내며 짜고 있어요/ 여자의 마음. 미련이겠죠/ 당신 그리워요 북쪽의 집”(北の宿から 가사 일부)라고 그녀가 나직이 불렀다. 특히 ‘여자의 마음 미련과 당신 그리워요. 북쪽의 집’은 절창(絶唱)이다. 여성의 미련은 진실하다고 느껴진다. 그 진실을 소가 닭 쳐다보듯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면, 아마도 그녀는 오뉴월에 서리를 내리게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영어권의 사랑은 직접적이다. “내가 당신을 필요로 한다면, 당신은 내게 와 줄 건가요? 내 고통을 덜어주러 올 건가요? 당신이 날 필요로 한다면, 난 당신에게 가겠어요. 당신의 고통을 덜어주러 바다를 헤엄쳐 가겠어요……”(에밀루 해리스 & 돈 윌리엄스의 ‘만약 내가 당신을 필요로 한다면/Emmylou Harris and Don Williams -If I Needed You’의 가사 일부)’

2020년 10월 25일, 10시경 큰고니 한 마리가 울산 태화강 중류 배리 끝 낙안소의 굴화하수종말처리장 방류구 부근에서 관찰됐다. 2020년 11월 12일, 오전 7시 20분경 사군탄을 찾은 큰고니는 함부로 버린 폐낚싯줄에 걸렸다. 다행히 119소방구조대에 의해 무사히 구조돼 울산야생동물구조센터로 옮겨졌다. 늙은 몸은 재활하는 듯 보였으나, 놀란 가슴에 스스로 먹이를 먹지 않았다.

2020년 12월 11일, 눈부신 면사포를 쓴 그대의 모습이 만장(輓章)을 앞세워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어둠 속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나 그대가 보고 싶을 때는 난 눈을 감아요. 그러면 그대 곁에 있어요. 오직 그대에게 주고 싶은 것은,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이에 있는 이 사랑입니다.”(리오 세기의-그대가 필요할 때 Leo Sayer-When I Need You 가사 일부)

그리운 북쪽 사랑은 사람만이 느끼는 특권은 아니다. 왜 왔던가 울산을, 날아서 돌아가지 못할 태화강을 왜 찾았던가. 동지 지난 사군탄에는 버들이 기지개를 편다. 사군탄에 또 하나의 이름, ‘곡탄(鵠灘·고니여울)’을 보탠다.

김성수 철새홍보관 관장·조류생태학 박사 /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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