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공원, 그리고 울산
조각공원, 그리고 울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12.20 20: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것은 울산에도 있다. 공립 조각공원이다. 엄밀히 말해 그것은 울산문화예술관 소공연장의 서쪽 자투리땅 안에 있다. ‘자투리땅’이라 했지만 넓이로 치면 만만하게 볼 정도는 아니다. 지난 상반기에 전임 관장이 심혈을 기울여 꾸민 야심작이기도 하다,

그는 소공연장의 시야를 가리고 있던 큰키나무들을 과감하게 잘라내고 시원스레 시야부터 틔웠다. 그런 다음 땅을 고르고 고급 잔디를 입혔다. 발판으로 삼을 바닥의 돌은 나름의 의미를 붙여 하트(♡) 모양으로 깔았다. 맨 나중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 예술적 전시공간의 주인공 격인 조각품 다섯 점.

그러나 지금은 눈여겨보는 이가 없다. 과장법을 좀 보태자면, 강아지 한 마리도 얼씬거리는 일이 없다. 새 단장을 마무리한 지 1년도 더 넘었을 옛 ‘쉼터’처럼 ‘개점휴업(開店休業)’이란 표현이 딱 들어맞지 않을까.

전임 관장은 이 조각공원에서 수시로 초대전을 열겠다고 벼른 적이 있다. 하지만 코로나 마스크에 가려져서일까, 이젠 그 말도 허공으로 달아나 버린 지 오래다. 물론 코로나19 탓이 제일 클 것이다. 그러나 호사가 중엔 후임 관장의 무관심도 한 몫 할 거라고 겁 없이 쓴 소리를 내뱉는 이도 있다. 반 년 가까이 소리 소문도 없이 망각 속으로 빠져드는 걸 보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나무랄 처지도 못 되지 싶다.

이따금 조각공원 앞을 지나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작품들은 말이 없었다. 짐짓 말문을 닫은 것일까. 어제도 오늘도 그들은 묵묵부답이었다. 겸연쩍은 구석이 있어서 그랬던 것일까.

하루는 속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개장(開場) 초기와 달라진 게 눈곱만큼이라도 있을까 하는 호기심도 한 몫 거들었다. 숫자는 변함이 없었다. 작품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이제는 고인(故人)이 된 조각가 정기홍 특유의 ‘새싹 이미지’ 작품 앞에서는 고개부터 먼저 숙였다. 제목은 <자연으로부터-우주>(2008년 작). 나더러 곧잘 ‘형’이라고 부르던 그의 넋은 지금도 작가(作家)의 혼(魂)을 불사르려 영원의 공간 속을 끊임없이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작품들에 대한 발품도 차례로 팔았다. 흥미로운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다. 조각가 5인 중 3인이 동일인임을 알게 된 것. 조각가 이인행이 그 중심에 있었다. <도심 속의 꿈-쉼터Ⅲ>(2006년 작), <도심 속의 門-공간>(2002년 작), 그리고 또 한 작품. 나머지 한 점은 제13회 울산미술대전 수상작인 박기준 조각가의 <구조와 개채>(2009년 작)였다.

문득 어느 지인이 비아냥거리듯 하던 말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아마도 몇몇 작품은 남구문화원 뜰에 방치돼 있던 것을 어찌어찌해서 옮겨다 놨을 겁니다.” 엄밀한 계획 아래 옮겨놓은 것이 아니란 말로도 들렸다. 명색이 울산을 대표하는 조각공원이 그 정도밖에 대접을 못 받는단 말인가. 울주군 발리의 민간정원 ‘발리동천’ 속 이채국 조각가의 개인 조각공원보다 못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울산문화예술회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조각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수고만으로도 찬사를 보내야 할지… 아직은 정리된 생각이 없다. 이내 ‘대작’(大作) 소리 들을 만한 지역 작가들의 작품도 적지 않겠다는 생각도 고개를 치켜들었다. 한데, 그런 작품 대부분은 제대로 된 대접은 엄두 밖인 것도 엄연한 울산의 현실이 아니던가. 하다못해 남구 롯데마트 언저리에라도 한 번 가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누군가 총대 메는 모습이 보고 싶다. 신임 관장이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아니면 <새 천년의 소리>(2000년 7월 작)의 작가인 현 울산예총 회장이 그 일을 감당해낼 수 있을까. 고양이 목에 방울 달 사람이 기다려진다.

김정주 논설실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