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세쿼이아
메타세쿼이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12.13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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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하기 고약한 나무이름에 ‘메타세쿼이아’란 녀석이 있다. 나오는 대로 ‘메타세콰이어’라고 발음했다가도 금세 고쳐 부르곤 하지만 애먹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아직도 이 나무가 낯설게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메타세쿼이아의 존재를 처음 인식한 것은 십여 년 전의 일이다. 수필동호인 몇몇과 더불어 터널 분위기 물씬한 전남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을 낭만에 젖어 빠져나가본 것이 처음이었다. 몇 년 후 두 번째 방문 길에도 그랬지만, 여름철이어서 그런지, 메타세쿼이아 잎의 빛깔은 초록빛 일색이었다.

그 무렵 광주 사는 지인이 들려준 메타세쿼이아 이야기는, 일부 오류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상식사전 한구석을 차지했고, 어느 새 남에게 곧이곧대로 전하는 일에도 익숙해져 갔다. 이야기인즉슨, 메타세쿼이아 한국 재배의 원인제공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미국의 어느 국립공원(Yosemite National Park로 기억된다.)을 처음 둘러보았을 때 그는 군인들이 총검으로 호위하듯 도열해 있는 메타세쿼이아 무리를 보고 단숨에 매료되었고, 끝내 수행원에게 구해다 심으라고 지시한 것이 국내에 뿌리를 내린 계기가 되었다는 것.

그러나 이 철석같은 지론은 최근 들어 무참하게 깨지고 만다. 자타가 인정하는 한 식물전문가가 잘못된 상식을 보기 좋게 뒤집어엎은 것이다. 얼마 전까지 자연보존단체의 중간관리직을 맡기도 했던 그는 박 전 대통령이 국내 재배를 지시한 수종은 메타세쿼이아가 아니라 ‘리기다소나무’였노라 결론을 내리고는 즉석에서 ‘맛보기 특강’을 베풀기까지 했다. (물론 전화통화 강의였지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채 사라지기 전에 인터넷을 뒤졌다. 그의 강의 일부는 사실이었다. 메타세쿼이아가 은행나무와 함께 ‘화석나무’로 불린다는 사실, 그리고 중국 몇몇 곳(후베이성과 쓰촨성)에서 아직도 군락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 인터넷 이삭줍기 결과를 잠시 덧붙이기로 하자. 메타세쿼이아는 백악기~제3기층에 걸쳐 지구상에서 널리 자랐지만, 이젠 화석으로나 만날 수 있는 사라져 버린 나무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1941년에 새로운 학설이 제기된 것이다. 일본 오사카대학의 미키(三木) 교수가 일본 각지의 신생대 지층에서 발견되는 식물화석이 오늘날 북미대륙의 큰키나무 ‘세쿼이아(sequoia)’를 빼닮은 사실에 주목한 것. 그는 세쿼이아와 닮기는 해도 종류가 다르다며 ‘메타세쿼이아(Metasequoia, メタセコイア)’란 새로운 속명(屬名)을 붙여 학회에 보고한다.

어쨌거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메타세쿼이아가 1956년 미국에서 들여온 ‘외래수종’이란 사실이다. 그런데 키대로 자라는 이 외래수종이 울산 전역에서 땅따먹기 하듯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현실을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할지. 사람의 손길이 안 닿아도 혼자서도 잘 자라기 때문일까. 태화강 국가정원에도 울산대공원에도, 북구에도 울주군에도, 없는 곳이 없을 지경이다.

가로수로도 훌륭하다는 일부 전문가의 지론과는 달리 메타세쿼이아가 반발에 부딪히기도 한다. 바늘잎나무(針葉樹)로서는 드물게 갈잎나무(落葉樹)인 탓에 잎이 가을엔 벌겋게 물들었다가 겨울엔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 흉물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 그것. 게다가 키가 35m, 지름이 2m까지 자라면 시야를 가려 가로수로는 부적합하다는 지적도 따라다닌다. 원예전문가 A씨는, 바로 그런 점 때문에 국가정원에 심을 나무는 못 된다고 잘라 말한다.

때와 장소에 따라 호불호(好不好)가 갈리는 메타세쿼이아. ‘땅따먹기의 최강자’로 등극하기 전에 ‘공론화의 바람’이라도 한 번 맞았으면 하는 바람이 고개를 든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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