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거울
세 개의 거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12.13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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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銅爲鑑 可正衣冠 (이동위감 가정의관)/ 以古爲鑑 可知興替 (이고위감 가지흥체)/ 以人爲鑑 可明得失 (이인위감 가명득실)/ 朕嘗保此三鑑 內防己過 (짐상보차삼감 내방기과)/ 今魏徵逝 一鑑亡矣 (금위징서 일감망의)」

이 글은 중국의 당태종이 당시 재상이었던 위징의 무덤에 쓴 비문의 내용 중 일부이다. 직역하면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단정히 할 수 있고/ 옛날을 거울로 삼으면 흥망성쇠를 알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득실을 밝힐 수 있는데/ 내가 허물을 막을 수 있었던 까닭은 이 세 개의 거울 덕분이거늘/ 위징이 세상을 떠났으니 거울 하나를 잃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태종 자신과 나라가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쓴소리를 해준 신하 위징을 잃어 아쉬움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고 장차 나라를 올바로 이끌어 나가고자 하는 결심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위징은 원래 당나라를 건국한 이연의 첫째아들 이건성의 신하였다. 이연이 당나라를 건국할 때 가장 공을 세운 이는 둘째아들 이세민이었으나 첫째아들 이건성이 황태자로 책봉되면서 형제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었다. 위징은 황태자인 이건성에게 이세민을 제거해야 한다며 동생인 이세민을 경계할 것을 자주 간언했다고 한다. 나중에 ‘현무문의 변’이 터져 이세민은 형인 황태자 이건성을 죽여 왕이 되고 형의 신하였던 위징을 자신의 신하로 삼는다.

하루는 다른 신하들이 위징이 과거에 당태종 이세민을 죽이라고 했던 일을 고자질하자 태종은 위징을 불러 “왜 형제들 사이를 이간질 했느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위징은 “그때 태자(이건성)께서 제 말을 들으셨더라면 황태자가 죽고 둘째아들 이세민이 왕이 되는 일은 당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이 상황을 지켜본 신하들은 위징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생각했지만 태종은 위징의 솔직함과 정직함을 높게 평가하여 오히려 그를 재상에 임명했다고 한다.

또한 태종은 성인이 아니더라도 체격이 좋으면 징집하여 병사로 활용하도록 하는 조서를 내렸지만 시간이 지나도 시행이 되지 않아 확인하니 위징이 조서를 시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위징을 불러 질책했다. 그러나 위징은 “징병을 많이 한다고 하여 군대가 강해지지 않으며 군대의 힘은 군인의 수가 아닌 훈련과 지휘의 힘입니다. 연못의 물을 다 빼버리면 당장은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겠지만 이후에는 연못에 물고기가 아예 살지 않게 됩니다. 후일을 위하여 젊은 사람을 징집해서는 안 됩니다”라며 적극 반대했고, 태종은 위징의 간언에 다시 조서를 내렸다고 한다.

이후 중국 역사상 가장 번영했던 시대의 하나로 당나라 태종의 치세를 꼽는데, 이를 일컬어 ‘정관의 치’라고 부른다.

청렴과 공정은 개인과 조직, 나아가 사회와 국가를 건강하게 한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국민연금공단은 청렴하고 공정한 조직이 되기 위해 세 개의 거울을 갖추고 있다.

첫째, 전 직원들에게 매월, 분기별로 청렴과 공정에 관한 교육을 하는 것은 ‘동감(銅鑑)’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고 둘째, 청렴 규정, 개인정보보호 규정, 갑질 근절대책 등을 제정하고 시행하는 것은 ‘고감(古鑑)’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고 셋째, 부조리와 불공정에 대하여 누구나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인감(人鑑)’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연금공단은 이 세 개의 거울을 갈고 닦아 사소한 부조리도 발붙일 수 없는 청렴하고 공정한 조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재영 국민연금공단 남울산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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