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생로 88…‘Big Table’과 ‘갤러리 Q’
“평범한 시민도 예술가를 가까이에서 만나 문화예술의 분위기에 젖어들 만한 공간을 따로 장만하면 어떨까?” 50대 사업가의 이 소박한 꿈이 현실에 뿌리를 내리면서 예술지향(藝術志向)의 꽃이 소담스레 피어나고 있다.
(신영건축사사무소 대표). 3층 건물의 1층 전체를 차담(茶談) 나누는 공간으로 꾸민 것이 약 1년 반 전이라면, 골목주차장 옆 2층 상가건물을 사들여 상설전시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은 불과 두 달 전의 일이다. 남구청에서 그리 멀지않은 왕생로 제2구간 초입(왕생로 88)에 둥지를 튼 카페 ‘Big Table’과 미술전시공간 ‘갤러리 Q(큐)’가 바로 그의 꿈이 영글어 가는 도전의 무대.
찾아간 날은 갤러리 Q에서 네 번째 작품전이 한창이던 지난 4일. 개관한 지 두 달이 채 안된 시점에 네 번째 전시회라면 그런 대로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이날의 주인공 오나경 작가는 관객을 맞이하느라 갤러리와 카페 사이를 분주하게 오갔다. 이종문 전 강북교육장도 작가 손님의 한사람.
첫 전시회는 김창한, 김언영 등 지역화가 16인이 참여한 합동전시회. 그 맥을 이상열 화가의 ‘라다크 전’과 여류화가 3인의 ‘3인3색전’, 그리고 ‘오나경 17번째 그림전’이 차례로 이어갔다.
-주변상인들의 기획 ‘이시형 박사 초청강연’
사실 김 대표가 카페를 차리기로 결심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갈수록 시들어가는 왕생로에다 생기라도 불어넣고 싶은 생각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던 것. 첫 작업으로 손님의 발길이 주춤해진 한복집을 돌려받아 50평 남짓한 내부를 특유의 디자인 개념으로 새롭게 꾸몄다.
이 소식은 입소문을 타고 주변 상가로 물결처럼 번져 나갔다. 그 뒤로 찾아온 건 ‘놀라운 변화’였다.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지난해 7월 30일, 카페 ‘빅 테이블’에서 국내 의료계의 명사 이시형 박사의 초청특강 자리가 마련된 것도 그 중 하나. 김 대표는 그 공을 불경기 속에서도 왕생로를 꿋꿋이 지켜온 이웃 상인들에게 돌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 이후 왕생로에도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2020년 초부터 달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라는 불청객과 맞닥뜨리고 만 것. 그러고 나서 또 반년이 지났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궁리해낸 것이 ‘갤러리 큐’라는 전시공간.
‘갤러리 큐’에는 책임자가 필요했다. 김 대표는 서울 생활에 젖어있던 장녀 아진 씨(‘갤러리 큐’ 대표)를 불러 내렸다. 그리고 운영을 맡겼다. 숭실대 언론홍보학과를 나온 아진 씨는 전공이 아닌데도 그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네 차례의 전시회도 모두 그녀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김 대표로선 복덩이가 굴러들어온 셈이다.
‘갤러리 Q’란 이름에서 ‘Q’의 의미가 궁금했다. 즉답이 돌아왔다. “영화를 찍을 때 옛날 같으면 ‘(레디) 액션!’이라고 했지요. 제가 ‘큐’를 고른 건 ‘액션’ 외에 ‘퀄리티(quality·품질)’란 뜻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차 댈 곳 마땅찮은 왕생로 ‘방치 수준’
김두겸, 서동욱 양대 전임 구청장이 야심차게 일구어놓은 ‘왕생로’는 ‘왕이 나는 곳’이란 본디 뜻과는 달리 시간을 따라 빛이 바랜 지 제법 오래다. 주변 상인들의 의견을 김 대표가 대변했다. 주차공간이 문제였다.
“왕생로 덕분에 많이 깨끗해졌지만 차 댈 곳이 마땅찮습니다. 공영주차장이 있긴 하지만 외지 손님은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홍보부족 탓인 것 같다고 했다. 인도 한 곳은 차량진입 방지턱이 없어서 그런지 무단주차가 잦고 사고 위험도 크다고 했다.
따로 시간을 내 살폈다. 상황은 김 대표의 말 그대로였다. ‘행복샘교회’ 바로 옆 ‘왕생이공원 지하 공영주차장’은 이면도로변에 자리를 잡아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한 곳. 그런데도 안내표지판은 100m 전방, 눈에 잘 띄지 않는 전봇대에 달아놓은 손바닥만한 것이 전부라는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팔구십을 헤아리는 상가들이 이렇게 다 죽어가는데…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슬그머니 장난기가 발동했다. 속으로 웃었다. ‘청문회라도 열어 전임 구청장들을 다시 소환해야 하는 것 아닌가?’
-몇 안 되는 남구 갤러리, 문 닫는 곳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왕생로에는 문화시설이라곤 눈을 부비고 봐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뭇 다르다. ‘갤러리 큐’가 문을 연 이후의 변화다. 갤러리 책임자 아진 씨는 가족회의를 거쳐 작은 결단을 내렸다. 1일 대관료를 5만원으로 낮춰 받기로 한 것.
김 대표가 말을 받았다. “문화예술 공간이 많은 중구와는 당분간 차별을 두어야겠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사실 남구에는 미술작품 전시공간만 해도 손에 꼽을 정도일 겁니다. CK치과갤러리와 한빛갤러리, 영상갤러리 정도뿐이었는데 그 중 한 곳은 최근에 문을 닫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길어진 코로나 사태 때문이겠지요.”
코로나 사태는 이따금 예기치 못한 결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12월 중순부터 갤러리 큐에서 열기로 한 ‘크리스마스 소품전’이 취소되기에 이른 것. 100명 이상의 집단감염을 불러온 남구 Y요양병원의 동일집단 격리 사태가 결정적이었다. “지역작가 30인이 소품 위주로 출품, 많은 시민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려 했는데.” 늘 조용한 표정의 갤러리 대표 아진 씨의 귀띔이다.
상황이 갑작스레 바뀌긴 했지만 ‘갤러리 큐’는 비교적 선전하고 있다는 게 정확한 평가일 것이다. 갤러리 큐의 선전에는 ‘빅 테이블’도 한몫 하고 있다는 말도 틀리지 않는다. 왕생로에 변화가 감지된다면 그 공은 가장 먼저 김 대표 부녀에게 돌려야 할지도 모른다.
“수지 생각은 아직 안 해봤습니다. ‘그곳에 가면 그림을 늘 볼 수 있고, 차도 한잔 하면서 작가와 얘기도 나누고….’ 시민들에게 그런 인식을 심어드리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김 대표의 맺는말이다.
-학성고 9회-울산대 건축학과 80학번 출신
태어난 곳은 부산 기장군 장안이지만 고등학교는 학성고(9)를 나왔다. 이달우 전 ubc 기자가 동기. 5년제인 울산대 건축학과(80학번)를 나와 모교의 겸임교수(1994~1995)를 역임하기도 했다. 약 2년 전 현대창업컨설팅(주)을 설립, 대표직을 겸하고 있다.
건축기사1급, 건축사, 경영지도사 유자격증자다. 울주군 건축심의위원(2017~2019)과 남구청 지적재조사심의위원(2019~2020)을 지냈고, 현재 여성기업전문평가위원(2016~, 울산여성경제인협회), 재래시장시설자문위원(2017~,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최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