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 하며 작가와 대화도 나누는 그런 공간이 꿈이죠”
“차 한잔 하며 작가와 대화도 나누는 그런 공간이 꿈이죠”
  • 김정주
  • 승인 2020.12.08 21: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왕생로에 카페·갤러리 차린 김광종 건축사 (신영건축사사무소 대표)

 

 

-왕생로 88…‘Big Table’과 ‘갤러리 Q’

“평범한 시민도 예술가를 가까이에서 만나 문화예술의 분위기에 젖어들 만한 공간을 따로 장만하면 어떨까?” 50대 사업가의 이 소박한 꿈이 현실에 뿌리를 내리면서 예술지향(藝術志向)의 꽃이 소담스레 피어나고 있다.

 

김광종(59) 건축사 겸 경영지도사.
김광종(59) 건축사 겸 경영지도사.

(신영건축사사무소 대표). 3층 건물의 1층 전체를 차담(茶談) 나누는 공간으로 꾸민 것이 약 1년 반 전이라면, 골목주차장 옆 2층 상가건물을 사들여 상설전시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은 불과 두 달 전의 일이다. 남구청에서 그리 멀지않은 왕생로 제2구간 초입(왕생로 88)에 둥지를 튼 카페 ‘Big Table’과 미술전시공간 ‘갤러리 Q(큐)’가 바로 그의 꿈이 영글어 가는 도전의 무대.

찾아간 날은 갤러리 Q에서 네 번째 작품전이 한창이던 지난 4일. 개관한 지 두 달이 채 안된 시점에 네 번째 전시회라면 그런 대로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이날의 주인공 오나경 작가는 관객을 맞이하느라 갤러리와 카페 사이를 분주하게 오갔다. 이종문 전 강북교육장도 작가 손님의 한사람.

첫 전시회는 김창한, 김언영 등 지역화가 16인이 참여한 합동전시회. 그 맥을 이상열 화가의 ‘라다크 전’과 여류화가 3인의 ‘3인3색전’, 그리고 ‘오나경 17번째 그림전’이 차례로 이어갔다.

지난해 7월 30일 카페 ‘Big Table’에서 열린 이시형 박사 초청강연 모습.
지난해 7월 30일 카페 ‘Big Table’에서 열린 이시형 박사 초청강연 모습.

 

-주변상인들의 기획 ‘이시형 박사 초청강연’

사실 김 대표가 카페를 차리기로 결심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갈수록 시들어가는 왕생로에다 생기라도 불어넣고 싶은 생각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던 것. 첫 작업으로 손님의 발길이 주춤해진 한복집을 돌려받아 50평 남짓한 내부를 특유의 디자인 개념으로 새롭게 꾸몄다.

이 소식은 입소문을 타고 주변 상가로 물결처럼 번져 나갔다. 그 뒤로 찾아온 건 ‘놀라운 변화’였다.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지난해 7월 30일, 카페 ‘빅 테이블’에서 국내 의료계의 명사 이시형 박사의 초청특강 자리가 마련된 것도 그 중 하나. 김 대표는 그 공을 불경기 속에서도 왕생로를 꿋꿋이 지켜온 이웃 상인들에게 돌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 이후 왕생로에도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2020년 초부터 달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라는 불청객과 맞닥뜨리고 만 것. 그러고 나서 또 반년이 지났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궁리해낸 것이 ‘갤러리 큐’라는 전시공간.

‘갤러리 큐’에는 책임자가 필요했다. 김 대표는 서울 생활에 젖어있던 장녀 아진 씨(‘갤러리 큐’ 대표)를 불러 내렸다. 그리고 운영을 맡겼다. 숭실대 언론홍보학과를 나온 아진 씨는 전공이 아닌데도 그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네 차례의 전시회도 모두 그녀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김 대표로선 복덩이가 굴러들어온 셈이다.

‘갤러리 Q’란 이름에서 ‘Q’의 의미가 궁금했다. 즉답이 돌아왔다. “영화를 찍을 때 옛날 같으면 ‘(레디) 액션!’이라고 했지요. 제가 ‘큐’를 고른 건 ‘액션’ 외에 ‘퀄리티(quality·품질)’란 뜻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차 댈 곳 마땅찮은 왕생로 ‘방치 수준’

김두겸, 서동욱 양대 전임 구청장이 야심차게 일구어놓은 ‘왕생로’는 ‘왕이 나는 곳’이란 본디 뜻과는 달리 시간을 따라 빛이 바랜 지 제법 오래다. 주변 상인들의 의견을 김 대표가 대변했다. 주차공간이 문제였다.

“왕생로 덕분에 많이 깨끗해졌지만 차 댈 곳이 마땅찮습니다. 공영주차장이 있긴 하지만 외지 손님은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홍보부족 탓인 것 같다고 했다. 인도 한 곳은 차량진입 방지턱이 없어서 그런지 무단주차가 잦고 사고 위험도 크다고 했다.

따로 시간을 내 살폈다. 상황은 김 대표의 말 그대로였다. ‘행복샘교회’ 바로 옆 ‘왕생이공원 지하 공영주차장’은 이면도로변에 자리를 잡아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한 곳. 그런데도 안내표지판은 100m 전방, 눈에 잘 띄지 않는 전봇대에 달아놓은 손바닥만한 것이 전부라는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팔구십을 헤아리는 상가들이 이렇게 다 죽어가는데…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슬그머니 장난기가 발동했다. 속으로 웃었다. ‘청문회라도 열어 전임 구청장들을 다시 소환해야 하는 것 아닌가?’

 

‘갤러리 Q’ 앞에서 나란히 포즈를 취한 오나경 화가(오른쪽)와 김아진 씨.
‘갤러리 Q’ 앞에서 나란히 포즈를 취한 오나경 화가(오른쪽)와 김아진 씨.

 

-몇 안 되는 남구 갤러리, 문 닫는 곳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왕생로에는 문화시설이라곤 눈을 부비고 봐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뭇 다르다. ‘갤러리 큐’가 문을 연 이후의 변화다. 갤러리 책임자 아진 씨는 가족회의를 거쳐 작은 결단을 내렸다. 1일 대관료를 5만원으로 낮춰 받기로 한 것.

김 대표가 말을 받았다. “문화예술 공간이 많은 중구와는 당분간 차별을 두어야겠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사실 남구에는 미술작품 전시공간만 해도 손에 꼽을 정도일 겁니다. CK치과갤러리와 한빛갤러리, 영상갤러리 정도뿐이었는데 그 중 한 곳은 최근에 문을 닫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길어진 코로나 사태 때문이겠지요.”

코로나 사태는 이따금 예기치 못한 결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12월 중순부터 갤러리 큐에서 열기로 한 ‘크리스마스 소품전’이 취소되기에 이른 것. 100명 이상의 집단감염을 불러온 남구 Y요양병원의 동일집단 격리 사태가 결정적이었다. “지역작가 30인이 소품 위주로 출품, 많은 시민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려 했는데.” 늘 조용한 표정의 갤러리 대표 아진 씨의 귀띔이다.

상황이 갑작스레 바뀌긴 했지만 ‘갤러리 큐’는 비교적 선전하고 있다는 게 정확한 평가일 것이다. 갤러리 큐의 선전에는 ‘빅 테이블’도 한몫 하고 있다는 말도 틀리지 않는다. 왕생로에 변화가 감지된다면 그 공은 가장 먼저 김 대표 부녀에게 돌려야 할지도 모른다.

“수지 생각은 아직 안 해봤습니다. ‘그곳에 가면 그림을 늘 볼 수 있고, 차도 한잔 하면서 작가와 얘기도 나누고….’ 시민들에게 그런 인식을 심어드리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김 대표의 맺는말이다.

-학성고 9회-울산대 건축학과 80학번 출신

 

태어난 곳은 부산 기장군 장안이지만 고등학교는 학성고(9)를 나왔다. 이달우 전 ubc 기자가 동기. 5년제인 울산대 건축학과(80학번)를 나와 모교의 겸임교수(1994~1995)를 역임하기도 했다. 약 2년 전 현대창업컨설팅(주)을 설립, 대표직을 겸하고 있다.

건축기사1급, 건축사, 경영지도사 유자격증자다. 울주군 건축심의위원(2017~2019)과 남구청 지적재조사심의위원(2019~2020)을 지냈고, 현재 여성기업전문평가위원(2016~, 울산여성경제인협회), 재래시장시설자문위원(2017~,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최지원 기자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