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 밝은 등불 되어 높이 뜬 이 밤
보름달 밝은 등불 되어 높이 뜬 이 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12.06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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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위현(李渭賢, 1699~1752)은 아들 이수인(李樹仁, 1739~1822)을 보며 “내 나이 오십여 세, 네 나이 이제 열둘. 꼭 오륙 년은 지나야 네 장가가는 모습 보겠구나. 내가 아직 장성하지 못한 때였기에 서글퍼하며 이 시를 짓는다(先人元朝詩 有吾年五十餘 汝年今十二 恰過五六年 始可見汝娶 蓋以不肖未及成長 故憫然有是詩)”고 했다.

이수인(李樹仁, 1739~1822)은 아들아이 효영(孝永)의 초례(醮禮=전통 양식으로 치르는 결혼식) 초행(醮行=초례를 치르기 위해 신랑이 신부 집으로 가는 과정)에 함께했다. 가는 말 위에서 선친의 유고에 있던 시구가 떠올라 감회에 못 이겨 시를 지었다.

시구는 이렇게 이어진다. “백발의 행색으로 아들아이의 요객(饒客=혼인할 때, 신랑이나 신부를 데리고 가는 가족)이 되니, 온종일 말 달려가도 고단한 줄 모르겠구나 ‘꼭 오륙 년은 지나야’라는 선친 유고의 시어를 지금 떠올리자니 눈물이 옷깃을 적시는구나(白頭行色爲兒饒 終日馳驅不說勞 恰過五年先藁語 至今追憶血沾袍).”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자식은 진미령의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

“내가 난생처음 여자가 되던 날/ 아버지는 나에게 꽃을 안겨주시고/ 어머니는 같은 여자가 되었다고 너무나 좋아하셔/ 그때 나는 사랑을 조금은 알게 되고//

어느 날 남자친구에게 전화 왔네/ 어머니는 빨리 받으라고 하시고/ 아버지는 이유 없이 화를 내시며 밖으로 나가셨어/ 그때 나는 아버지가 정말 미웠어//

내일이면 나는 시집을 간다네/ 어머니는 왠지 나를 바라보셔/ 아버지는 경사 났다면서 너무나 좋아하셔/ 그땐 나는 철이 없이 웃고만 서 있었네//

웨딩마치가 울리고 식장에 들어설 때/ 내 손 꼭 쥔 아버지 가늘게 떨고 있어/ 난생처음 보았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아버지 모습/ 나도 같이 주저앉아 울고 싶었어//

내일이면 나는 쉰이라네/ 딸아이가 벌써 시집을 간다나/ 우리 엄마 살아 계셨더라면 얼마나 기뻐할까/ 그때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데//

그 옛날 엄마 마음을 조금은 알 거 같아/ 자꾸 바라보는 나의 딸아이 모습/ 그래 사랑이란 바로 이런 거란 걸/ 왜 진작 몰랐을까/ 그래 사랑이란 바로 이런 거란 걸/ 그래 사랑이란 바로 이런 거야/ 그래 행복이란 바로 이런 거란 걸”(진미령 ‘내가 난생처음 여자가 되던 날’)

부모에게 무심했던 철없던 자식들은 아버지가 되고, 엄마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부모는 이미 자식 곁에서 떠나 찾을 수 없다.

“…목소리는 생전이나 똑같건만, 체구는 옛날보다 줄어드셨구나.”

홍명원(洪命元, 1573~1623)이 꿈에 선친을 뵙고 지은 시 몽배선군(夢拜先君)이다.

“…오늘 밤 꿈에서 정녕 어머니를 뵈니, 얼굴 모습이며 살쩍이며 머리카락이 생전과 같았다…….” 신국빈(申國賓, 1724∼1799)이 74세가 되는 1797년에, 돌아가신 어머니 꿈을 꾸고 지은 시 기몽(記夢)이다.

필자는 선친(先親)과 현비(顯?) 양주(兩主) 영가(靈駕)를 실로 5년 만에 꿈속에서 만났다. 살아 있는 세월 속에 필자는 눈 내린 수염으로, 주름진 얼굴로, 어두침침한 눈으로, 그 흔적이 변해가고 있다. 꿈속의 부모는 세월의 흐름이 멈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생전의 반포지효(反哺之孝)는 마음뿐이었고, 사후는 풍수지탄(風樹之嘆)으로 살고 있다.

2020년, 벌써 선친의 5주기를 치렀다. 자식이 된 마음이 어찌 홍 씨와 신 씨의 마음보다 덜하며, 딸의 뜨거운 눈시울과 같지 않겠는가? 잔디밭에서 곡괭이질 하는 후투티와 집게질 하는 찌르레기 행동이 곡(哭)으로 겹쳐 이모저모를 보이게 되는 이유이다.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부모께 효도하지 않으면 죽은 뒤에 후회한다). 참회의 눈물은 용천(湧泉)으로 솟는다. 때로는 홍루(紅淚)를 찍은 티슈가 단풍(丹楓)으로 물들여져 이리저리 발끝에 쌓였다. 보름달 밝은 등불 되어 높이 뜬 이 밤, 초경(初更) 꿈속 대문밖에 나서 이제나저제나 오경(五更)까지 기다릴래요.

김성수 철새홍보관 관장·조류생태학 박사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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