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우주-영화 ‘프록시마 프로젝트’
엄마라는 우주-영화 ‘프록시마 프로젝트’
  • 이상길
  • 승인 2020.11.26 1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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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록시마 프로젝트’의 한 장면.
영화 ‘프록시마 프로젝트’의 한 장면.

 

스포일러성 글입니다.

아이는 언제부턴가 엄마가 낯설기만 하다. 다른 엄마들은 입지 않는 이상한 옷들을 자주 입더니 놀아주는 시간도 부쩍 줄었다. 어딘가를 가서는 한참 동안 오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그 무렵, 아이는 엄마의 직업이 ‘우주비행사’라는 걸 알게 됐다. 또 조만간 엄마가 아주 멀리 가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일곱 살 때부터 우주비행사를 꿈꿨던 엄마는 운 좋게 유럽우주국에서 추진하는 ‘프록시마 프로젝트’의 대원으로 선발됐고, 이제 막 그 꿈을 이루게 됐던 것. 하지만 일곱 살의 아이가 기뻐하기에는 다소 버거운 현실이었다. 태어났더니 엄마가 우주비행사라니. 해서 아이는 종종 다른 친구들이 노는 걸 멀리서 지켜보곤 했었다. 아마도 그들과 다르다는 느낌이 들어서겠지.

그래도 아이는 내색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프록시마 프로젝트’에 대한 발표가 있던 날도 꿈을 이루게 됐다며 멋지게 인터뷰를 하는 엄마를 향해 박수를 쳤다. 하지만 며칠 뒤 아이는 울면서 엄마에게 “고양이 라이카는 이제 어떡하냐?”고 살짝 트집을 잡는다. 별거 중인 아빠와 같이 살게 되면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아빠 때문에 걱정이 됐던 것. 사실 라이카에 대한 걱정은 자신에 대한 걱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엄마와 함께 아빠 집으로 가면서 아이는 캐리어 안에 들어있는 라이카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걱정 마. 내가 있잖아.” 아이는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다. 참 엄마의 이름은 사라(에바 그린)였고, 아이는 스텔라(젤리 불랑)였다.

마침내 엄마는 지구를 떠나기 전 마쳐야 할 훈련을 위해 러시아 우주센터로 가버리고 남겨진 아이는 비로소 엄마의 빈자리를 실감한다. 아빠가 사는 동네에선 친구가 없었다. 만들 생각도 없었다. 말수가 줄었고 가끔 열이 나고 아팠다.

우주선 발사일이 다가오면서 아이는 아빠와 함께 엄마를 배웅하러 러시아 우주센터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부터 찾는 아이. 그리웠던 엄마 품에서 아이는 다시 아기가 된다. 그날 밤, 아이는 엄마가 교육을 받는 동안 몰래 사라져 버린다. 그럼 엄마가 우주로 안 갈지도 모르니. 그리고 엄마가 자신을 찾아 혼을 내자 화를 내며 이렇게 소리친다. “엄마 가!”

이제 와 하는 이야기지만 사실 아이에게 우주는 ‘하늘나라’였다. 해서 러시아로 오기 전 목욕을 하다 엄마에게 갑자기 “엄마가 나보다 먼저 죽어?”라는 질문을 던졌었고, 아빠와 둘이 있을 때는 우주에서 발생하는 산소결핍이 위험한 건지도 물었었다. 그래서였을 거다. 우주선이 출발하기 전날 밤, 무균실에 갇힌 엄마는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아이와 마지막으로 만났고, 아이는 함께 우주선 보러 가기로 해놓고 못간 걸 아쉬워하며 자리를 뜬다. 그리고 유리창 너머의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엄마 안녕..”

그런데 일찍 잠이든 그날 밤, 아이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누군가 자신을 깨웠는데 그게 엄마였던 것. 몰래 무균실을 탈출해 엄마가 자신을 만나러 왔던 거다. 그러면 안 되는데도. 그리고 아이는 다시 엄마 품에 안겨 숙소를 빠져나온 뒤 같이 보려 했던 우주선을 멀리서 본다. 그렇게 엄마는 약속을 지켰다. 다행이었다. 어쩌면 아이는 엄마가 멀리 가는 것보다 엄마의 마음이 멀리 가는 게 더 겁이 났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우주 같은 존재다. 무(無)였던 아이에게 ‘시간’과 ‘공간’을 선물한다. 다음 날, 아빠와 아이의 배웅 속에 엄마라는 우주는 지구를 벗어나게 되고, 아이는 비로소 엄마를 진심으로 응원하듯 그 모습을 바라본다. 그리고 남겨진 아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엄마가 남긴 편지를 읽는다. 때 마침 창밖으로 무리를 지은 말들이 초원을 힘차게 달리고 아이는 그 중 새끼 하나가 엄마 말이랑 떨어지지 않으려 열심히 달리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본다. 정작 자신은 엄마 없는 시공간이 아직 어색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떠난 하늘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 짓는다. 그렇게 아이는 조금 자랐다. 2020년 10월15일 개봉. 러닝타임 107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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