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낚싯줄에 걸린 큰고니의 고통
폐낚싯줄에 걸린 큰고니의 고통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11.2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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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0년 11월 12일, 태화강 중류 굴화 사군탄에서 폐낚싯줄에 걸린 큰고니 한 마리를 119소방구조대원들이 구조해서 울산야생동물구조센터로 인도하기까지 있었던 생생한 현장 기록이다. 사례적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일 것이다.

2008년 4월 18일, 울산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가 문을 열었다. 2012년 10월 24일에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이 조류재활시설을 지어 울산시설공단 산하 울산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에 기증했다. 기증 행사에는 필자도 참석했다. 울산대공원 안에 있는 센터는 조난 또는 부상당한 야생동물을 구조·치료한 다음 재활훈련으로 완전히 나으면 이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한다.

2017년 12월 12일, 재두루미 한 마리가 울주군 온양읍의 한 미나리꽝에서 날개를 다친 상태로 발견됐다. 재두루미는 다행히 구조되어 울산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 후 80여 일간의 재활훈련을 거쳐 건강을 되찾았다. 이듬해인 2018년 3월 2일,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당시의 신문기사를 인용한다.

“…3월 2일 오후 3시에 청정지역인 우포늪 우포따오기복원센터 앞 서식지에서 재두루미 한 마리를 방사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방사한 재두루미는 지난해 12월 12일, 울산 울주군 온양읍의 한 미나리꽝에서 날개를 다친 상태로 발견되어 지금까지 울산야생동물구조센터(센터장 고영진)에서 집중치료를 받아왔다. (중략) 울산야생동물구조센터는 ‘완치된 재두루미를 방사할 최적의 장소를 물색하던 중 우포늪에 황새 1쌍이 찾아와 10일 이상 계속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는 언론자료를 확인하고 우포늪에서 방사하기로 결정하게 되었다.’고 전했다.”(2018.03.04. 서울일보.-창녕, 날개 치료 재두루미 우포늪 방사)

2018년 12월 31일, 큰고니 여섯 마리가 울산 태화강 중류 배리끝 낙안소(落雁沼)에서 관찰됐다. 어미 한 마리와 새끼 다섯 마리였는데 일가족이었다. 목이 길고 깃털이 하얀 어미는 목 깃털에 잿빛이 감도는 새끼와 분명하게 구별됐다. 안타깝게도 수컷 고니는 끝까지 관찰되지는 않았다. 고니 가족 중 새끼 한 마리가 먹이터와 잠자리로 이동할 때마다 뒤처지는 행동을 보였다. 큰고니 가족은 49일간 머무르다 2019년 2월 17일 이후 관찰되지 않았다. 필자는 49일간 매일 관찰기록을 남겼다.

2020년 10월 25일, 10시경 큰고니 한 마리가 울산 태화강 중류 배리끝 낙안소의 굴화하수종말처리장 방류구 부근에서 관찰됐다. 그 후 같은 환경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잠자는 것이 관찰됐다. 필자는 19일간의 관찰기록을 남겼다. 필자는 처음 확인한 큰고니를 길 잃은 고니로 생각했다. 간혹 이동 중에 이런 경우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고니는 자연생태계에서 가족단위로 살아간다. 번식지를 떠나 장거리 월동지를 찾을 때도 마찬가지다. 간혹 월동지로 향하던 무리가 갑자기 포식자의 공격 등 긴급 상황을 만나면 흩어졌다가 모이기를 반복한다. 그런 과정에서 다시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낙안소를 찾은 큰고니 한 마리도 그런 경우의 낙오자이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로 생각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 한 장소에서 계속 관찰됐다. 그제야 비로소 2년 전 새끼 다섯 마리를 데리고 찾아온 큰고니 가족의 어미를 떠올렸다. 당시 먹이는 주로 사군탄에서 찾았고, 잠자리는 주로 삼호교 아래 붕어섬 가까운 수중 모래톱이었다. 울산시 환경생태과는 때를 놓치지 않고 ‘큰고니 가족과의 공존 및 이해’를 희망하는 현수막을 굴화 지역과 다운동 지역에 각각 내걸었다. 이번에 관찰된 큰고니 한 마리는 그동안 자식들을 독립시키고 다시 짝을 이루지 못한 새로 판단된다.

2020년 11월 12일, 오전 7시 20분경 사군탄에서 큰고니가 19일째 먹이활동을 하며 틈틈이 깃 고르기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오전 9시 20분경 다시 사군탄을 찾았다. 관찰된 큰고니는 머리를 왼쪽 죽지에 파묻고 쉬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간격을 두고 되풀이되는 행동은 휴식의 몸짓으로 보기에는 어쩐지 어색해 보였다. 확인해보니 함부로 버린 폐낚싯줄에 부리와 날개가 엉켜 꼼짝을 못하고 물 위에 떠 있는 상태였다.

현장을 목격한 시민이 곧바로 울산야생동물구조센터에 신고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센터는 다시 119소방구조대에 신고했고, 큰고니는 제때 도착한 119소방구조대에 의해 무사히 구조됐다. 큰고니는 현장에 대기하고 있던 울산야생동물구조센터 관계자에게 인계되어 부러진 날개를 치료받고 현재 재활훈련 중이라고 한다. 현장에 함께 있었던 필자는 이런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보도자료로 제공했다.

무책임하게 버려진 폐낚싯줄은 물구나무를 서서 먹이활동 하는 고니류에게는 귀중한 목숨을 빼앗는 흉기나 다름없다. 특히 목에 감긴 낚싯줄을 사람들이 제때 발견하지 못하면 고니는 목숨을 잃고 만다. 그날 큰고니 몸에 감긴 폐낚싯줄은 꽤나 길어 한참을 잡아당겨야 했다. 큰고니가 사군탄에서 관찰된 지 19일째였지만 현수막 하나 내걸리지 않은 아쉬움은 생물학자인 필자의 가슴 한 구석에 두고두고 남아 기억될 것이다.

김성수 철새홍보관 관장·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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