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버들 마당’
‘왕버들 마당’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11.15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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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햇살이 유난히 따갑던 지난 주말, 태화강 둔치와 십리대밭교를 거쳐 국가정원 야외공연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느티나무 광장’(일명 ‘느티마당’)에서 의연한 자태를 뽐내고 있을 ‘왕버들’을 가까이서 눈여겨보기 위한 걸음이었다.

야외공연장 옆 늙은 나무(老巨樹·노거수) 두 그루는 나들이 나온 시민들에게 운치 있고 넉넉한 그늘이 돼 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좀 더 멋들어져 보이는 한 그루의 밑동 언저리에는, 언제부터인진 잘 알 수 없지만, 새로 달아놓은 나무이름표(팻말)가 넌지시 손짓을 하고 있었다. <왕버들/ 버드나무과/ 꽃은 4월에 잎과 같이 피고 암, 수꽃이 딴 그루에 달리며 열매는 5월에 익는다. △울산광역시>

아하, 그래서 그렇구나. 거리공연가인 지인 A씨가 ‘느티나무 광장’의 이름을 ‘왕버들 광장’으로 바꾸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사실 요즘 SNS에는 그런 그의 목소리에 호응하는 네티즌들이 하나둘 늘기 시작했다. 어떤 목소리였는지 잠시 들어보자. “태화강 국가정원의 중심인 ‘느티나무 광장’의 이름을 백년 이상 이곳을 지켜온 터줏대감 ‘왕버들’의 이름을 따서 ‘왕버들 광장’으로 바꿉시다.” 그런 글을 남긴 지 얼마 안 되어 그는 이름을 ‘왕버들 마당’으로 바꾸어 부를 것을 제안했다. ‘광장’(廣場)보다 순우리말 ‘마당’이 더 낫지 않겠느냐는 지인의 조언을 흔쾌히 받아들인 것.

행동파인 A씨가 15일엔 이런 글을 올렸다. “△바른 이름 찾아주기 캠페인에 참여하기…. 태화강 국가정원 느티나무 광장의 바른 이름 찾아주기 캠페인 및 작은 음악회에 함께하실 분을 모십니다. △일시=11월 20일(금) 오전11시~오후4시. △장소=태화강 국가정원 느티나무 광장…(중략)…△본 행사는 작은 시민운동입니다. 행사에는 누구나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행사 관련 문의=010-△△△△-5758)

알고 보니 그는 그보다 이틀 전인 13일 시 국가정원과에 미리 작성한 행사계획서를 제출하고 승인 나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담당주무관의 친절한 안내와 따뜻한 배려에 힘을 얻는다’면서도 조바심을 감추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오졸 없는 축갱이 짓이란 자괴감이 든다’고도 했다. 자칫 잘못해서 관계자의 자존심이라도 건드릴지 모른다는 걱정에서였을까?

다시 십리대밭교를 거쳐 태화강 둔치로 돌아오는 길목. 이름표와 설명이 큼직한 돌에 새겨진 또 한 그루의 늙은 나무가 시야에 잡혔다. 이름은 ‘처용 팽나무’였고 설명은 제법 길었다.

“이 나무는 울주군 온산읍 처용리에서 300여 년 동안 자생한 아름다운 팽나무입니다. 처용리 일대에 신산업단지 조성공사가 시작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을 울산광역시가 이곳에 옮겨 심었습니다. 이 나무가 실향민에게는 향수를 달래고 시민들에게는 자연을 생각하는 상징이 되어 태화강을 더 푸르게 할 것입니다. 자생지=울주군 온산읍 처용리 285-1번지/ 크기=높이 15m, 둘레 3.2m, 수관 15m/ 이식=2009년 4월 10일.”

두 종류의 나무가 이처럼 다른 대접을 받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짧은 순간인데도 갖가지 상념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참, 2009년이라면 당시 시장이 누구였더라? 그러는 사이 또 하나의 기억이 뇌세포를 자극했다. 그 무렵 태화들 샛강(일명 ‘실개천’)가에 드러누운 늙은 버드나무-‘왕버들’ 여부는 알 길 없지만-를 보기 흉하다 해서 당시 시장 지시로 하룻밤 새 잘라져 파문이 일었던 사실이 되살아 난 것. 잘리지 않고 남아있었다면 지금쯤 어떤 대접을…?

어쨌거나 지금 생각은 온통 ‘왕버들 마당’뿐이다. 시에서 ‘시민여론 수렴 후 결론을 내겠다’ 했다니 A씨의 캠페인 마당에 가서 눈도장이라도 찍을까?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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