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
90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04.13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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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 오전 서울국립현충원에서는 해외 안장 애국선열의 유해 봉환식이 열렸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군사 및 외교활동을 적극 후원한 공로로 1995년 독립장을 추서 받은 최진하 지사를 비롯한 애국지사 9位의 유해가 12일 미국(8位)과 일본(1位)에서 봉환돼 13일 추모행사를 마치고 국립대전현충원으로 봉송, 안장됐다.

정부에서는 4·13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90주년을 기념해 서울과 상하이, 충칭, LA에서 기념식을 동시에 개최하고 정부수립 이후 처음으로 무호적 독립유공자 가족관계등록증서를 수여하며 해외안장 애국선열 유해봉환 행사 개최 등 국가를 위한 희생에 정부의 무한책임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올해로 90돌을 맞이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 는 같은 해에 일어났던 3·1절이 그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일본통치에 조직적으로 항거하기 위해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이며, 대한민국헌법 전문은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라고 해 임시정부가 한국독립의 모태가 되고 대한민국 건국의 정신적·사상적 기반이 됨을 명시하고 있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큰 정부기념일이다.

하지만 4월 13일이 어떤 날인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할이 우리조국 독립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수립 이후 1945년 환국할 때까지 독립운동의 중추기관으로서의 역할과 임무를 수행했으며 국내외에서 모여든 독립운동가들이 4월 10~11일 중국 상하이에서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임시헌장 10개조를 채택했으며, 4월 13일 한성임시정부와 통합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선포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수립 초기에 국내외동포를 모두 관할하기 위한 기구로 연락기관인 교통국을 설치하고, 독립활동을 위한 국내외 비밀연락망인 연통제를 조직했으며, 인성학교를 경영해 동포의 자제들을 교육시켰고, 기관지 ‘독립신문’을 발행하여 독립정신을 홍보하고 독립운동 소식을 국내외 각지에 알렸다.

또한 꾸준한 외교활동을 추진,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정식으로 승인받아 국외의 주목을 받았다.

이것은 열강회의에서 식민지의 독립이 승인된 유일한 사례로, 임시정부의 활동에 대한 국제적 인정이었다.

다음으로 1945년 포츠담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은 다시 확인됐다.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을 창설해 1941년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과 독일에 각각 선전포고를 하고, 연합군의 일원으로 미얀마·사이판·필리핀 등지에 군대를 파견했다.

1944년에는 독자적인 군사행동권을 위해 중국과 새로운 군사협정을 체결했다.

1945년에는 국내정진군 총지휘부를 설립해 국내진입작전을 수행했으며 미군의 OSS부대와 합동작전으로 국내에 진입하려는 계획을 진행하던 중 8·15광복을 맞았다.

임시정부의 다양한 독립운동은 마침내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하는 발판이 됐으며 지금의 대한민국도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 건국됐다.

조국을 잃어버리고 구심점을 찾지 못한 일제치하의 국민들의 염원을 모아 조국의 광복이란 결실을 맺게 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을 생각해보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조직의 역할과 힘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그 원천적인 힘이 지금도, 앞으로도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속에서 그 역할을 다할 수 있길 바란다.

아울러, 4월 13일이 '빨간 날’이 아닐지라도 지금의 대한민국 건국의 정신적·사상적 기반이 된 ‘대한민국임정부‘의 존재와 임시정부의 역할이 우리나라 독립에 미친 영향과 그 역사적 의의를 국민모두가 기억하는 날이 오기를 바래본다.

/ 권진숙 울산보훈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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