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3주년 특집]천장 뚫린 울산 집값… 2030 청년들 갈 곳이 없다
[창간13주년 특집]천장 뚫린 울산 집값… 2030 청년들 갈 곳이 없다
  • 김지은 기자
  • 승인 2020.11.11 2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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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나면 오르는 집값에 시름 깊어지는 청년들
새 임대차법 시행 3개월… 전셋값 폭등에 매물 품귀 가속화
하우스푸어 선택·내 집 마련 포기 속출… 대책 마련 청원도
“신규 물량 부족으로 상승세 지속, 2023년께 소폭 꺾일 듯”
울산 중구 복산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에 매물 알림판이 붙어있다. 알림판 대부분이 비어있는 가운데 전세 매물은 단한 건도 없다. 장태준 기자
울산 중구 복산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에 매물 알림판이 붙어있다. 알림판 대부분이 비어있는 가운데 전세 매물은 단한 건도 없다. 장태준 기자

 

지난 3년간 침체기를 겪었던 울산 주택시장은 지난해 말 바닥을 찍고 올해 초 기지개를 피기 시작하더니 최근 들어 훈풍을 넘어 광풍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만한 ‘이상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새 임대차법 등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대책이 역효과를 내며 집값이 역대 최고치를 찍는가 하면, 전세 매물이 자취를 감추면서 집을 구하는 임차인들은 발을 동동 구르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사회초년생인 청년들은 내 집 마련을 위한 ‘영끌’에 나설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고, 심지어 내 집 마련의 꿈과 결혼을 포기하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다. 이에 울산의 주택 시장 현 상황과 제도 변화 여부 등을 점검하고 향후 시장 전망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울산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윤혁(31)·이지혜(29·여) 예비부부는 다음달 초 결혼을 앞두고 지난 7월 중순부터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신혼집을 구하러 나섰다.

중구를 우선지역으로 정하고 예산에 맞는 아파트를 찾던 중 정부의 부동산 대책의 영향으로 전세물량이 서서히 없어지기 시작, 물량 부족으로 매매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매매가격이 부담스러웠던 예비부부는 지역의 범위를 넓히고 가격을 좀 더 올린 후 2, 3차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

부동산 중개인을 비롯한 부동산 어플을 통해 전셋집을 구한지 한 달째, 부동산 시장에 나오는 매물마다 방문을 예약했지만, 일주일 새 2~3천만원 가량을 올리거나 전세를 매매로 전환하는 경우가 대다수.

시간이 갈수록 물량은 줄고, 가격은 뛰는 가운데 당겨오는 결혼 날짜에 조바심이 들었던 이 예비부부는 결국 기존에 생각했던 조건과는 동떨어진 지역, 가격, 평수인 전셋집을 울며겨자먹기로 계약했다.

◇공급부족 심화로 가파르게 오르는 집값

올해 7월 새 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된 이후 전세 대란이 확산된 가운데 직장인, 신혼부부 등 청년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청년들이 주로 찾는 아파트, 빌라의 전세 매물이 자취를 감추면서 불확실한 주거 문제로 불안감을 토로하고 있다.

울산의 주택시장은 2017년부터 지난 3년간 주력산업 부진으로 인해 침체기를 겪었으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외부 투자자 투입 등으로 상승 전환했다. 특히 올해 수년간 정체됐던 분양사업들이 대거 추진되면서 청약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택시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임대차법 등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 대책이 집값을 오히려 자극하면서 아파트값은 걷잡을 수 없이 뛰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울산의 주택종합 매매가격은 지난달까지 13개월 연속 상승세다. 올해 들어 10월 말까지 울산의 누계 주택가격 상승률은 평균 3.85%로 지난해 같은 기간(-3.52%) 대비 두배 가량 상승했다.

전세가격 오름세는 더욱 가파르다. 지난달 울산 주택종합 전세가격은 전월 대비 1.18% 급등했다. 전셋값 변동률은 전국(세종 제외)에서 가장 높다.

울산의 전세가격은 지난 7월 말 임대차 3법 시행 이후 8월부터 10월까지 3개월간 상승폭이 크게 확대됐다. 월별로 보면 8월 0.96%, 9월 1.40%, 10월 1.18% 등으로 3개월간 누계 변동률은 3.54%다. 이는 올해 1~10월까지 전세가격 누계 변동률 7.37%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치다.

임차인 보호를 위해 시행된 새 임대차 법에 따라 전·월세 계약갱신청구권을 활용해 기존 주택에 눌러앉는 수요가 늘면서 전세 품귀가 심화했고, 집주인들이 4년 앞을 내다보고 미리 보증금을 올리면서 전셋값이 크게 올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울산의 아파트 전세 공급 부족 수준을 보여주는 지수도 역대 최고까지 치솟았다.

한국감정원 통계에 따르면 11월 첫째 주 울산의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전주(129.9)보다 4.3p 상승한 134.2로 조사됐다. 이는 한국감정원이 전세수급지수 통계를 발표하기 시작한 2012년 7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울산의 아파트 전세 시장에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부족해 전세난이 우려된다는 의미다.

앞서 KB국민은행의 월간 조사에서도 울산의 전세수급지수는 10월 189.9로 나타나 9년 8개월 만에 최고를 기록하며 전세난 우려를 키웠다.

사진제공=더감동 공인중개사사무소
사진제공=더감동 공인중개사사무소

 

◇새 임대차법 이후 자취를 감춘 전세물량

실제로 울산에는 수년간 울산지역 내 신규 입장 물량이 정체된 가운데 실거주자들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집값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특히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전세물량은 눈에 띄게 사라지면서 임차인들은 집을 구하기 어려워졌다.

정순근 더감동공인중개사무소장은 “가을 이사철 시기가 8~10월로, 9월부터 본격적으로 이사 수요가 몰려오는데 공급자체가 끊기고 임대차법으로 연장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물량이 확 줄어든 것”이라며 “울산의 집값은 지난해 10월께 저점을 찍은 후 수암동 힐스테이트 등에서 입주물량이 없어지면서 v자 반등을 시작했다. 보통 입주물량이 없더라도 시장에 반영되기까지는 시차가 발생하기에 부동산 시장에서는 올해 가을에서 내년 봄께 조금씩 꿈틀거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수요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시기는 내년 봄으로 전망했지만 임대차법 시행으로 시장 움직임 속도를 가속화시켜버리면서 올해 가을부터 명확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울산 문수로 아이파크2차(32~34평 기준)의 경우 지난해 4억~4억5천만원이던 전셋값이 현재는 7억2천만원까지 뛰었다. 매매는 일찌감치 10억원을 넘어서면서 울산에서 처음으로 30평대 아파트가 10억원을 초과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전세물량에 대해선 “무거동 옥현주공아파트를 예로 들면 옥동의 낙수효과를 받는 곳으로 1, 2, 3차 단지를 합치면 3천 세대 가량인데, 지금 물량이 1%도 없다”며 “공급 부족에 전셋값이 한없이 뛰면서 집주인이 더 좋은 조건의 세입자를 찾으려고 계약금 배액배상을 해주면서 계약을 파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주거문제로 고통받는 사회초년생·예비부부

이 같은 전세난에 자신의 조건에 맞는 전셋집을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 수준이 돼버렸다는 게 청년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이지혜씨는 “집을 미리 구하자는 생각에 전세를 어떻게든 구할 수 있었지만 조금만 더 늦었다면 전셋집을 포기하고 월세로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하루하루 달라지는 상황에 전세계약까지의 과정이 힘들었다”면서 “또 요즘 집을 구할 때 대출은 필수인데, 정부에서 시행하는 대출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사회초년생이 매매로 집을 살 수 잇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면서 “울산이 작은 도시도 아니고 전국의 광역시 중 하나인데, 신혼부부 및 청년들에 대한 혜택이나 지원은 체감상 느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계속 오르는 집값 공포에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사는 ‘영끌’에 나서는 경우와 내 집 마련을 포기하는 청년들이 생겨나고 있다.

“대출 상환에 여유 없이 사는 하우스푸어는 남일 인줄 알았다”는 30대 직장인 김지남씨는 “아직 집을 살 여건이 되지 않지만, 자꾸만 치솟는 집값에 지금 아니면 평생 집을 마련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 무리를 해가며 아파트를 계약했다”고 말했다.

직장 생활 4년차인 윤서정(29)씨는 “부족한 일자리,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악화 등으로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은 더 어려워졌다. 특히 자금이 넉넉하지 못한 청년들은 부모 도움 없이 윤택한 삶은커녕 평범한 삶조차 꿈꾸기 어려운 게 지금의 현실”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무주택자 불안감 확산에 국민청원까지 등장

이처럼 집값과 전셋값이 연일 상승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제대로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면서 청년들의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집값, 전셋값이 장기간 동반 상승하면서 정부정책에 반발하는 청원 글이 연일 올라오고 있다. 청원 내용은 임대차법에 대한 피해 및 대책 요구와 집값 급등에 대한 불안감 호소 등이 주를 이룬다.

최근엔 정부의 부동산 대책 부작용을 지적한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으로 결혼을 포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란 청원 글이 젊은 층의 주거 불안감을 대변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자신을 ‘내년 초 결혼을 앞둔 30대 직장인으로, 지금까지 삶을 살아오며 엉뚱한 곳에 한눈판 적 없이 그저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소개한 청원인은 “올 초부터 결혼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이 나라에서는 세금 착실히 내고, 매일 노력하며 살아온 사람이 서울에 전셋집 하나 구하기 힘든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며 “저는 주택난으로 결혼을 거의 포기하기까지 이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번번이 실패하는 것을 수년간 바라만 보며 그래도 적게나마 월급을 모아 어떻게든 집을 사보려 노력했다”며 “그런데 올해 중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해서라도 살 수 있던 서울 제일 끝자락 아파트마저 폭등해 아예 포기 상태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울산과 부산, 대구, 경기 김포 등 비규제지역 집값 급등에 대해 “규제지역으로 지정해달라”는 청원도 줄을 잇고 있다.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방 부동산 규제, 지금 시작하십시오’라는 글이 올라와 있다. 해당 글을 작성한 청원인은 “제가 거주하고 있는 동네는 10월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실거래 신고가를 갱신한다. 정부 주거정책과 반대로 지방의 임차인들은 고통받기 시작했다. 이제 부동산 투기 세력이 비규제지역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이제부터 지방도 핀셋규제의 예외로 삼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

◇“전세난 계속” 2022년 말까지 지속 전망

부동산 전문가들은 울산은 신규 아파트 공급 물량 부족으로 이 같은 전세난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정순근 소장은 “한 해 울산지역 필요 주택 수량은 5천700세대 가량이다. 그러나 2022년 말까지 2천세대 안팎의 분양이 예정돼 있어 전세난이 쉽게 해결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면서 “2023년에는 센트리지 아파트 2천600세대, 자이아파트 2천800세대가 분양이 예정돼 있어 총 5천세대가 넘어가게 돼 지금보다는 상황이 안정화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어 “특히 정부가 청년들에게 서울 신도시 분양 물량을 사전청약으로 조기에 공급하는 등 다른 연령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2030 세대에게 청약 기회를 주면서 청년들 사이에서는 새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상황”이라며 “울산에서도 아파트 청약 중 올해 동구 자이아파트부터 경쟁률이 치열해지기 시작하면서 신축 아파트시장이 과열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물인터넷(IoT) 시스템이 갖춰진 환경도 신축 수요를 늘리는 데 한몫했다. 정부에서 신혼부부 소득기준을 완화하겠다고 하더라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울산의 부동산시장 과열이 이보다 더 가속화된다면 예비부부나 청년들이 ‘부모 도움으로 매매를 구했다’는 말에서 이제는 ‘부모 도움으로 간신히 전세를 구했다’라는 말이 나올 것”이라며 “여건이 안되는 나머지 사람들은 월세로 버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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