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라다크 생활과 여행기 집필, 꼭 해낼 겁니다”
“겨울 라다크 생활과 여행기 집필, 꼭 해낼 겁니다”
  • 김정주
  • 승인 2020.11.03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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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라다크와의 열애에 빠진 작가 이상열
이상열 작가.
이상열 작가.

화가·시인 겸업하는 ‘두물머리 작가’

그의 예술적 취향에는 남다른 구석이 있다. 그렇다고 과욕이란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넘치는 재능 탓으로 돌려야 할 것 같다. 지난 9월 두 번째 시집 <세 그루 밀원>을 펴낸 데 이어 10월의 마지막 날부터는 24번째 개인전인 <이상열 라다크 그림전>을 열고 있다. 전(展)을 펴는 날 오후, ‘갤러리 Q’(남구 왕생로 88, ‘Big Table’ 뒤란)에서 그를 만났다.

이상열 작가(56). 영남대 교육대학원에 앞서 홍익대 미대 동양화과를 먼저 졸업하고 지금도 창작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니 ‘화가’, ‘화백’이라 불러도 이상할 건 전혀 없다. 다만 두 번째 시집까지 선보인 뒤끝이고 보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물었고, 이내 답이 돌아왔다. “아무거나 좋습니다.” 자연지형에 빗댄다면 ‘두물머리(兩水里) 작가’인 셈이다. 그래서 가닥을 잡았다. 지면상의 호칭은 ‘작가 이상열’로 하기로…. ‘오프닝’ 시각은 저녁 7시. 지인 약 30명이 방명록에 이름을 남겼다.

전시된 18 작품 모두 ‘라다크의 풍광’

갤러리 안팎에 걸린 전시작품은 열여덟 점. 그 전 개인전 때도 그랬지만, 온통 인도 라다크(Ladakh)의 풍광뿐이다. 그만큼 그의 라다크를 향한 애정의 색깔은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짙다,

어떤 곳인지 뒤져보았다. ‘인도 북부 잠무카슈미르 주 동부지역’이 그의 혼을 빼앗은 라다크다. 히말라야 산맥 서쪽의 라다크 산맥과 카라코람 산맥, 인더스 강 상류지역까지 끌어안은 지역으로 면적이 11만7천㎢나 된다. ‘세계에서 고도가 가장 높은 지역의 하나’, ‘고원과 깊은 골짜기가 많은 곳’으로도 소문나 있다.

“해발 평균이 3천500m이고 세계에서 제일 높은 자동차도로도 이곳에 있지요. 해발 5천800m에는 ‘Top of the World’라는 표지판도 있고요.” 세계적 팝가수 ‘카펜터스’의 히트곡 제목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일까? 그러고 보니 이 작가의 그림전 명칭도 ‘塔(탑) of the World’다. 재치가 돋보인다.

그의 기억 속 라다크의 색감은 아직도 선명하다. “(티베트)불교사원 ‘곰파’는 하나같이 산꼭대기에 세워져 있지요.” 설명이 꼬리를 문다. “산 아래 민가 마을에는 농토라 해야 손바닥 만한 것들뿐인데. 메마른 기후라 벼는 못 심고 보리(쌀보리) 농사를 지으며 살아갑디다. 보리를 볶고 갈고 뭉친 음식이 주식인데, 우리네 미숫가루 맛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라다크는 연평균 강우량이 84㎜밖에 안 되는 무척 건조하고 척박한 지역. 야크 교배종인 ‘쪼’와 양과 당나귀 같은 가축들은 가족이나 다름없는 대접을 받는다.

이상열 작가가 라다크 풍경을 그릴 때 쓰는 나무젓가락으로 만든 붓. 이 작가는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젓가락의 끝을 망치로 쪼아 작품도구로 활용한다.
이상열 작가가 라다크 풍경을 그릴 때 쓰는 나무젓가락으로 만든 붓. 이 작가는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젓가락의 끝을 망치로 쪼아 작품도구로 활용한다.

‘나무젓가락 붓’이 빚어낸 독특한 화풍

이 작가의 화풍(畵風)은 아주 독특한 편. 그림의 소재가 특이해서만은 아니다. 어찌 보면 그림도구인 붓이 독특한 탓이 더 크다. 그의 붓은 ‘나무젓가락 붓’ 즉 목필(木筆)이다. 나무젓가락은 중국집이나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사도구. 앞부분을 망치로 두들기면 거친 모양새로 쪼개지지만 바로 이 녀석이 훌륭한 붓으로 변신한다. 돈 한 푼 안 들이고도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은 그만의 작은 행복이 아닐까.

이 화백은 그림을 그릴 때 먹물을 여러 번 찍어서 덧입히는 적묵법(積墨法)을 구사한다. 수묵화의 농담(濃淡) 기법도 살린다. 사실 그의 작품 활동의 출발점은 문인화(文人畵)였다. 그러나 변화를 시도했다. ‘먹’이 시장에서 좀처럼 먹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찾은 탈출구가 나무젓가락 그림이었는지도 모른다.

“갈지 않고 진한 생먹물을 나무젓가락에 묻혀 찍을 때 가장 잘 어울리는 그림이 나옵디다.” 그의 경험담이다. 먹물은 문방구에 파는 것이 오히려 좋다. 짐승 털로 만든 세필(細筆)은 ‘룽다(Lungda)’와 ‘타르초(Tharchog)’의 색감 표현에 사용하는 정도.

내친김에 용어풀이도 잠시 하고 가자. 이 작가의 작품 속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소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룽다’는 긴 장대에 세로줄로 매단 한 폭의 기다란 깃발이다.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이 바람을 박차고 달리는 말갈기와 비슷하다 해서 ‘풍마(風馬)’라고도 한다. ‘타르초’는 불경이 쓰여 있는 네모난 천을 이어서 만국기처럼 만든 깃발을 말한다. 룽다와 타르초의 차이는 세로깃발과 가로깃발의 차이라 볼 수 있다.
 

△ 지난달 31일 저녁 ‘24회 이상열 라다크 그림전’ 개막행사가 열린 ‘갤러리 Q’에서 포즈를 취한 축하객들.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지키기 위해 ‘촬영시간 10초’ 룰을 따로 정했다는 후문. 사진제공=갤러리 Q
△ 지난달 31일 저녁 ‘24회 이상열 라다크 그림전’ 개막행사가 열린 ‘갤러리 Q’에서 포즈를 취한 축하객들.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지키기 위해 ‘촬영시간 10초’ 룰을 따로 정했다는 후문. 사진제공=갤러리 Q

 

물난리 속에 환경운동가 ‘헬레나’도 만나

이상열 작가를 상심하게 만든 일도 있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라다크 자연현상의 파괴가 그것. “(약 11년 전쯤) 처음 갔을 때는 하늘이 구름 한 점 없고 새파란 옥빛이었는데 재작년 마지막 갔을 때는 구름이 끼어 우중충할 때가 더 많았습니다. 기후변화를 실감했고 ‘라다크다운 하늘’을 볼 수가 없어서 너무 서글펐습니다.”

지난번 여행 때는 놀라운 일이 봇물 터지듯 벌어지기도 했다. 기후변화가 몰고 온 폭우피해 얘기가 그것. “때 아닌 물난리로 사람난리가 난 겁니다. YTN이 현지에 가 있던 한국인 한 분을 전화로 연결해서 생방송을 내보낼 정도였으니까. 뜻밖의 행운을 만나기도 했고요.”

라다크에 물난리가 났을 때 라다크의 중심도시 레(Leh)에는 미국. 이스라엘 등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고, 우리나라 사람도 그 수가 60명을 헤아렸다. 여기서 ‘뜻밖의 행운’이란 라다크를 바깥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세계적 사회·환경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Helena Norberg-Hodge, 74, ‘라다크 프로젝트’ 설립자)를 우연히 만난 일을 말한다. 현지에서 흔한 ‘돌마’란 이름자를 붙여 ‘헬레나 돌마’라고 부를 정도로 그녀에 대한 현지인들의 존경심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는 게 이 작가의 설명.

“우리나라 사람 한 분이 헬레나 여사를 그곳 한국식당에 특별히 모셔놓고 초청강연을 들었는데 ‘라다크인의 지속가능한 삶’에 대해 강연하신 걸로 압니다. 저와의 대화에도 응해 주셨고, 지금도 대단한 영광의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 작가에 따르면 헬레나 여사는 시멘트집이 늘어나는 추세 속에서도 ‘라다크 식 흙집’에 대한 예찬을 빠뜨리지 않는다.

인도-파키스탄 국경 쪽 ‘뚜르뚝’ 마을의 아이들. 무슬림 마을이어서 여자아이들도 히잡을 쓰고 있다.
인도-파키스탄 국경 쪽 ‘뚜르뚝’ 마을의 아이들. 무슬림 마을이어서 여자아이들도 히잡을 쓰고 있다.

 

詩 세계로 이끌어준 스승은 김태수 시인

이상열 작가에게 시(詩) 분야의 스승은 울산 주전초등학교 교감을 역임한 김태수 시인. 이 작가가 추억의 한 자락을 꺼내 보인다. “1998년에 만나뵙고 저의 습작 15편을 보여드리면서 조언을 구했더니 해설서 수준의 풀이에다 덕담까지 해주셔서 큰 용기를 얻었지요. 시의 세계로 입문하는 데 제일 큰 힘이 되어 주신 분입니다.”

공교롭게도 대학시절은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의 통치기간과 겹친다. 그때부터 시에 눈을 떴다. 박노해, 황지우, 김지하의 시는 끼고 살다시피 했고, 자연스레 사회문제에 대한 깨달음도 깊어져만 갔다.

1990년에 시작했다니 그의 습작 기간은 제법 길었던 셈이다. 2005년에 ‘문학저널’을 통해 등단했고 그 해 바로 한국작가회의에 이름을 올렸다. 2008년에 펴낸 첫 시집 <손톱이 아프다> 속에는 애틋한 속이야기도 숨어있었다. “아버지께서 곧 돌아가실 것으로 알고 ‘장남으로서 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죄송한 생각을 시에 담고 싶었지요. 그런데 아버지는 12년을 더 사셨고, 올봄에 돌아가셨답니다.”

인생의 동반자는 열애 끝에 짝을 이룬 11세 연하 진은정 여사(45, 초등학교 교사). 부산교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교원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짬 나는 대로 모교인 교원대와 부산교대에 시간강사로 나가 후배 교육에 매달린다.

이상열 작가에겐 두 가지 꿈이 있다. 10년 넘게 라다크와 맺은 인연을 여행기로 엮어내는 일과 현지에서 1년간 살아보는 일이 그것. “라다크에 머무는 기간은 여름방학 한 달이 거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라다크에서 겨울을 보낸 적이 한 번도 없었고요. 그분들의 진솔한 삶 속으로 들어가려면 1년간이라도 그분들과 같이 부대끼는 길밖에 더 있을까요?”

경북 봉화가 고향. ‘울산민미협’ 회원과 ‘수요시포럼’ 동인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최지원 기자

라다크 중심도시 ‘레’에서 100km 남짓 떨어진 ‘띠무즈감’이란 마을에 걸려 있는 티베트불교 상징물의 하나인 ‘타르초’. 불경을 적어놓은 다섯 가지 색깔의 천은 신앙심의 버팀목 구실을 한다.
라다크 중심도시 ‘레’에서 100km 남짓 떨어진 ‘띠무즈감’이란 마을에 걸려 있는 티베트불교 상징물의 하나인 ‘타르초’. 불경을 적어놓은 다섯 가지 색깔의 천은 신앙심의 버팀목 구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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